[금요 에세이] 노마디즘의 굴레- 신서영(수필가)

설을 앞두고 많은 눈이 내렸다. 도로의 결빙으로 차들의 사고도 잦았다. 계절만 겨울이 아니고 정치, 경제, 심지어 인심까지 얼어붙었다. TV를 켜기도 겁이 난다. 정치권의 난투극을 보노라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국민들의 혈세를 지출하면서 싸움하라고 뽑아 놓은 사람들 같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몇 해 동안 서로의 왕래가 끊겼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서로를 불신하게 되고 정든 이웃과 가까운 친지들도 세상을 달리 하였다. 건강한 사람들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불안에 떨며 외출을 자제하였다. 그래서인지 설을 지내는 풍습도 많이 달라졌다.
형제들이 다 모여서 서로 절하고 덕담을 하며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것이 설날이었다면 이제는 차례를 지내는 것도 생략하고 가족끼리 모여서 간단한 음식을 만들거나 연휴를 즐기기 위해 국내외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 설날을 맞으며 예전의 설 풍습을 생각해 본다.
조상들에게 온 정성을 다해서 차례 상을 차리고, 명절 옷 한 벌 장만하기 힘들었지만 어려운 이웃을 챙기며 서로 베푸는 온정이 있었다.
새벽같이 깨끗한 새 옷으로 단장을 하고 큰집으로 차례를 지내러 가던 모습들. 차례를 지내고 덕담으로 세배를 마친 뒤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장작을 가마니에 둘둘 묶어 가운데 놓고 좀 두꺼운 긴 나무 널빤지를 걸쳐 놓고 널뛰기를 하였다.
평소에 서먹한 사이라도 서로 어울리면 마음속 앙금을 풀고 가까워질 수 있었다. 찬바람에 토끼털로 된 귀마개를 하고 꽁꽁 얼어붙은 연못에서 신나게 팽이치기를 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잊혀 가는 추억이 되었다. 정월 대보름날에는 대나무와 짚으로 엮은 달집을 만들어서 태우며 높이 뜬 달을 보며 한 해의 평안을 기원하였다. 그런 어릴 적의 추억들을 생각하면 때로는 삭막해지는 가슴속을 따스하게 달궈주기도 한다.
불과 이삼십 년 사이에 경제생활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였고 빈부의 격차가 심한 물질 만능시대가 되었다. 인심은 메마르고 각박해져서 본인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이기심으로 인한 사건들이 연일 보도가 되고 있다.
질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이라는 책에서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를 ‘노마드의 세계’라고 표현하였다.
기존의 가치나 철학을 부정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 예술 분야에서의 아방가르드(실험주의) 정신을 기초로 한 노마디즘도 좋지만 모든 것은 과하면 불상사가 생긴다. 조상에게 물려받은 정서는 어느 선까지는 지켜 가야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아름다운 것은 지키고 잘못된 것은 새롭게 고치는 것이 진정한 노마디즘의 정신이 아닐까. 세상은 우리의 세대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후손들이 있지 않은가. 진실과 근본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서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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