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획 한 획 붓끝의 여정이 예술로 피어나는 곳
[예술가의 작업실] (21) 김종원 서예가·현대미술가
‘소암 현중화 서예전’ 관람 계기
현중화 스승 밑에서 지도 받아
고향 창원 다호리에 작업실 꾸려
다호리서 출토된 유물 ‘붓’ 영감
2009년부터 ‘문자문명전’ 열어
글씨·그림 하나인 ‘서화동체’ 추구
글을 현대미술로 확장한 시작점
“새로운 전통 만들어가기 위해
기존의 것 연구·분석은 필수
‘변화’ 본질로 작업 이어갈 것”
다천(茶泉) 김종원(70) 서예가의 작업실에는 창원 다호리 평지가 내려다보인다. 다호리는 그의 집안이 400년을 대대로 살아온 세거지다. 까마득한 과거부터 새끼줄을 꼬듯이 전통을 이어온 그 토지는 불변하지만, 그 위로 살아온 이들과 형태는 쉴 새 없이 바뀌어 간다. 김종원 작가는 그것과 같다. 서예라는 가장 전통적인 예술 위에서 과거의 허물을 벗어내며 매번 변태(變態)한다. 부동을 모르는 예술 세계를 가진 그는 또한 현대미술가로 불린다.

김종원 작가가 창원 의창구 동읍 다호리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붓을 살피고 있다.
◇서예와 붓, 운명적 만남
-소암 현중화 선생의 사진과 작품이 모셔져 있다. 과거 서예를 시작할 때 사사했던 분으로 안다.
△스승님이 나와의 관계에서 보여줬던 부분, 그 정신에 대한 경외의 의미로 마련해 놓은 것이다. 스승님은 맑은 사람이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속성을 알고, 그 속성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알지만 그 세속적인 욕심을 드러내지 않고 일찍이 벗어난 분이었다. 작품에도 그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맑고 자유로운,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그런 글씨다. 과거 제주도에서 스승님에게 글을 배웠는데, 제주를 나오면서 작품을 하나 달라고 해서 지금까지 근 45년을 가지고 있다.

김종원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에 모신 소암 현중화 선생의 사진. /전강용 기자/
-원래 제주에 계신 분인데,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됐는지.
△고등학교 1학년 때 경남신문인지, 신문의 문화면에 ‘소암 현중화 서예전’을 한다고 해서 전시가 열리는 마산 희다방으로 갔다. 거기서 스승님을 만나 작품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됐고 이후 우편으로 내 글씨를 주고받으며 통신으로 공부했다. 그러면서 정식으로 서예를 배우고 싶어 제주대학에 진학해 스승님이 계시는 제주까지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서예를 하신 지 50년이 다 되어 간다. 이번에 작업실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옮긴 지 2년 정도 됐다. 원래는 김선경 원장과의 인연으로 반림동에 위치한 외과의원 건물에 작업실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항상 남의 집에 있을 순 없으니까. 마침 도립미술관장 직을 그만두게 됐고, 내가 가진 작품이나 자료들을 망라한 모든 흔적을 한 장소에 정리할 필요도 느끼면서 내 ‘마지막 작업실’로 이곳을 짓게 됐다.
-자택과도 인접하고, 작업실이 위치한 다호리라는 지역은 작가님에게 의미가 깊다.
△다호리는 400년이 넘게 집안 대대로 살아온 세거지다. 마산에 학교를 나오고 대학을 스승님을 따라 제주로 가고, 이후 서울도 갔었지만,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1988년 겨울에 다호리에서 가야 이전 삼한(三韓)의 붓이 출토됐을 때는 운명을 느꼈다. 한반도 문자문명의 시원이 확인된 것이다.
-다호리 붓을 주제로 창원에서 17년째 문자문명전을 열고 있다.
△붓이 출토되고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됐을 때, 나는 꿈까지 꿨다. 저 물건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있는가. 붓은 문자 그 자체가 문명화였다는 증명이다. 문자를 통해 인간이 문명화가 됐으니 문자로 인간의 정신적인 것과 사물적인 것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의 근원을 유물의 의미성에 붙여, 문명사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 어떨까. 20년이 지나 다호리 특별전이 열린 그다음 해인 2009년부터 그런 생각에서 출발한 문자문명전을 시작하게 됐다.

김 작가가 작업 중인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허물을 벗듯 새롭게 변하는 세계
-다호리 붓의 출토가 작업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지와 텍스트가 하나인 작가님의 대표적인 ‘서화동체(書畵同體)’도 그것에서 이어졌는지.
△작업이 전통 서예에서 현대미술로 나아가는 시작점이 됐다. 특히 언어 이전의 문자, 언어 이후의 문자에 대해서 연구를 이어갔다. 언어(소리) 이전의 고대 문자는 풀어 표현할 수 없는 영성의 축약이다. 즉, 내 서(書)는 시와 그림과 글씨가 하나인 문자 이전, 원형 물질로서의 서다. 그리고 서 행위는 대상으로 삼는 문자가 가진 성령을 이미지로 드러내는 것이다. 내가 이상으로 삼고 있는 미학이 있기에 매번 논리를 개발하며 작품을 만들고 있다.
-현재 작업하고 있는 두 작품이 보인다. 주술적인 형상이라 부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이번 작품은 원시적인 상황에서 인간들이 자연을 보고 어떠한 경외감을 가졌을까에 대한 이제 내 나름대로 추적이다. 원시에 집중하는 것은, 원시라는 것은 본질이니 인간에게 있어 최초의 문제, 최초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단서가 된다. 노자나 장자, 주역, 초사를 통해 추적하는데 초사에는 신화적인 내용이 많다. 어떤 주술 세계, 무당들의 세계 무의 세계 그런 것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고대적인 상황이 머릿속으로 몰입하게 된다. 말미암아 떠오른 것들은 문자성을 가진 형상이 된다.
-연구가 작품으로 직결되는 것인데, 많은 고서가 작업실 전체를 둘러싼 이유가 그것인가.
△대부분 후대 유학자들의 문집이다. 많은 공부가 된다. 대대로 이어진 것들과 새로 가져온 것들도 있다. 특히 과거에 살았던 인물들의 정신성에 대한 경외와 존경의 의미가 있다. 나는 전통을 중요시한다. 새로운 전통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전통을 알아야 한다. 이는 서예에서도 적용된다. 전통을 알아야 하며, 그것을 지켜가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이 시대를 말할 수 있는 장르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야 한다.

김종원 작가가 서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작가님이 바라는 서예란 어떤 모습인지.
△서예는 획의 예술이다. 획은 무언가를 갈라놓는 것이다. 이것과 저것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동체였다. 인간이 뭔가를 얘기할 적에 말로 다 하지 못할 것은 어떤 행위를 통해 드러낸다. 부처가 연꽃을 들 듯이(염화시중·拈華示衆), 행위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 더 본질에 가깝다. 그리고 본질에 가까운 하나의 상을 잡아내는 것이 획이다. 청나라 석도라는 화가가 ‘일획(一화)론’을 얘기한다. 한 획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이렇듯 서 자체는 초현대미술로 갈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작가님 자체가 획의 반복 같다. 매 작품 다른 모습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언제나 분석의 연속이다. 분석하다 보면 새로운 시각이 생긴다. 예컨대 70년대에 처음 논어, 맹자를 읽을 때의 과거의 시각과 지금의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깨달음이라는 것인데, 어떤 깨달음이 오면 옛것은 껍데기가 된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그런데 다르면서도 알고 보면 같은 것이다. 결국에는 그 중심에 내가 있기에. 학문이나 예술의 세계에 뜻을 뒀다면 누구나 그렇듯이 나 또한 이 변화라는 것을 본질로 두고 연구와 작업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글= 어태희 기자·사진= 전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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