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며] 사기 범죄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김정민(사회부장)

‘저희 자녀 ○○결혼합니다’ ‘訃告-○○별세하셨기에 알립니다’…. 가족이나 지인을 사칭해 금전을 편취하는 ‘메신저 피싱’이 최근 극성을 부리고 있다. 피싱 사기 뿐만 아니라 전세 사기, 통신금융 사기, 보험 사기, 가상자산 사기, 투자리딩방 사기, 연애빙자 사기, 중고거래 사기, 사설 불법스포츠 사기 등 각종 유형의 사기들도 판을 치고 있다. 수법도 악랄하게 진화하고 있다. 사기 범죄는 2019년 30만 건을 넘어선 이후 지난해에는 40만 건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체 범죄의 30%에 해당할 정도다. ‘사기공화국’이란 자조적 농담이, 슬픈 현실이 된 지도 오래다.
사기 범죄는 ‘경제적 살인’으로 비유될 만큼 민생을 파괴하는 중대 범죄다. 그 피해가 재물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없는 살림에 먹을 것, 입을 것들을 아끼며 폐지로 한 푼 두 푼 모은 어르신의 생계비나 장사를 위한 종잣돈, 전세 보증금과 같이, 앞으로의 인생을 위해 모은 피 같은 돈을 사기 당한 피해자들은 망연자실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계속 탓하게 되고, 자괴감과 박탈감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면서 일상 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고통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범죄 발생과 피해 금액이 늘고 있는 데는 국민 법 감정과 간극을 보이는 형량, 쉽지 않은 피해 구제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형법상 사기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기죄 1심 선고에서 약 30%는 집행유예와 벌금형이고, 유기징역형을 받더라도 사기 금액이 1억원 미만일 때 6개월~1년 6개월, 1억에서 5억원 미만은 1년~4년형을 받는 경우가 태반이다. 피해자별로 사기죄가 성립돼 1인당 5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으로 무기징역까지 처벌 가능하지만 ‘피해자별 금액이 5억원 이상’이라는 기준 탓에 다수의 피해자에게 수십억원의 사기를 저질러도 특경법 적용이 드물어 가벼운 처벌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기 범죄는 처음부터 금전 획득이 목적이라 범죄 직후 이미 탕진하거나 가상 자산 또는 해외 계좌를 통해 자금을 빼돌리면서 구제받을 가능성도 낮다. 이런 탓에 사기 범죄의 재범률은 다른 범죄보다 월등히 높은 40%를 넘어서고 있다. 사기 피해액 회수가 터무니없이 적고 돌려받을 확률도 낮으니 신고를 주저하게 되고, 붙잡혀도 처벌이 무섭지 않으니 돈을 돌려주면서 합의하려 하지 않으며, 가벼운 형량에 감옥에 가더라도 제대로 속여 막대한 부를 얻거나, 감옥을 나와서도 다시 남의 돈을 탐하는 범죄가 되풀이되고 있다. 공권력이 범죄 억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피해자들이 법을 더 원망한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에 사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신속한 계좌 동결, 피해금액 회수 강제, 그리고 사기죄의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 사기범의 신상을 공개하는 강경 대응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9년 미국 맨해튼 연방법원의 데니 친 판사가 650억달러 규모의 폰지 사기를 저지른 버나드 메이도프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에게 징역 150년형을 선고하면서 밝힌 “사악한 범죄가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선 분명한 메시지가 전달돼야 한다”는 말처럼.
김정민(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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