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년농부다] (7) 거창서 사과 농사 짓는 형진영씨

사과는 나의 동반자… ‘1만평 대농 꿈’ 맛있게 익어갑니다

기사입력 : 2024-09-24 20:39:43

10년 전 부친 사고로 우연히 농부의 길로
공부하고 각종 인증 취득하며 자리 잡아

6000평이던 과수원 8000평으로 늘리고
스마트팜·6차 산업 등 지속가능성 고민

“자연이 빚어낸 사과와 함께 성장하는 중
건강하고 맛있는 거창 사과 맥 이어갈 것”



농사는 하늘의 뜻이고 땅의 일이다. 농부는 그 사이에서 땀으로 나무를 키우고 시간으로 열매를 키운다. 청년농부 형진영(38) 씨는 10년 동안 거창군 주상면에서 햇살과 바람으로 사과를 빚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의 사과 밭은 총 2만6214㎡(8000평) 남짓, 그 넓은 땅에서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00여 그루의 나무와 마주한다. “나무는 사람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을 믿고, “거창의 모든 농가의 사과가 건강하고 맛있길 꿈꾼다”는 그를 만났다.

지난 23일 거창군 주상면에 위치한 과수원에서 청년농부 형진영(38)씨가 사과로 가득 채운 바구니를 들고 웃고 있다.
지난 23일 거창군 주상면에 위치한 과수원에서 청년농부 형진영(38)씨가 사과로 가득 채운 바구니를 들고 웃고 있다.

◇운명처럼 우연히 농부가 되다

농사의 시작은 우연이었다. 2013년 5월,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그에게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사과 농사를 짓던 아버지의 사고, 그리고 수확기를 앞둔 6000평의 사과 밭이 순식간에 그에게 들이닥쳤다. 그 길로 그는 직장 대신 농장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농부가 되겠다는 엄청난 큰 각오를 한 건 아니었어요. 당시 상황이 너무 절박했기 때문에 그냥 무조건 해야겠구나 생각했던 거죠. 당시 부모님께서도 잠시 도와주고 가려니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옆에서 아버지를 도와드린 적이 있어서 할 수 있겠지 했는데, 직접 해보니 농사가 정말 녹록지 않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겨우 물어 물어 첫해 농사를 끝냈는데, 근데 그 농사가 너무 잘됐어요.(웃음)”

처음엔 그저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땅을 일구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그 땅에 더 깊이 뿌리를 내렸다. 그는 주변 선배 농부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한국 농업벤처대학교를 이수하고, 각종 인증을 취득하며 사과 질을 점차 높여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그의 농장 ‘애플뱅크’ 사과는 공판장에서 최상급으로 취급된다.

"사실은 예전부터 아버지 농사일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을 만드신다는 게 되게 뿌듯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직접 해보니 힘들긴 해도 사과가 하루하루 커가는 걸 보면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로 볼 수 있을 때 이게 뿌듯하고, 또 행복함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해발고도가 높고 일조량이 풍부한 지대에 자리 잡은 형진영씨의 과수원.
해발고도가 높고 일조량이 풍부한 지대에 자리 잡은 형진영씨의 과수원.

◇하늘과 땅, 땀이 빚어내는 사과

우리나라 사과 5대 주산지 중 하나인 거창은 해발고도가 높고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큰 지역이다. 낮의 태양은 나무의 잎을 통해 과실에 영양을 밀어 넣고, 밤의 서늘함은 과실을 단단하게 조여내 맛 좋은 사과를 만들어 낸다. 그는 이런 거창 사과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크다.

“거창은 사과 농사에 너무 좋은 날씨거든요. 그래서 거창 사과는 다 맛이 좋죠. 그런데 앞으로 걱정되는 게 기후변화예요. 제가 어렸을 땐 거창에도 눈이 많이 왔었는데 지금은 많이 안 오거든요. 기온이 너무 높아졌다는 걸 정말 피부로 느끼고 있어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거창사과 많이 알아주시니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농사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비가 너무 많이 오거나, 햇살이 조금만 부족해도 좋은 사과를 수확하기 힘들다. 작년에도 그랬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방제를 제때 못 했다. 탄저병이 와서 농장의 5분의 1밖에 수확을 못 한 그는 자식을 잃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아버지께서 늘 입버릇처럼 ‘농사는 80%가 하늘이 짓는 거고 나머지 20%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거든요. 날씨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말에 크게 수긍한 그는 이제 매일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할 뿐이라고 했다.

그의 땀과 노력은 달달한 맛이 일품인 사과로 빚어진다.

“사람들이 사과를 먹을 때 눈으로 먼저 먹잖아요. 예쁘고 색이 고운 사과를 보면 맛있어 보이기도 하고요. 근데 저는 당도에 중점을 많이 둬요. 햇볕을 골고루 받을 수 있게 노력하고 추가로 당도를 높일 수 있는 약이나 비료 같은 것도 주고요."

지난 23일 거창군 주상면에 위치한 과수원에서 청년농부 형진영(38)씨가 직접 수확한 사과를 내보이며 웃고 있다.
지난 23일 거창군 주상면에 위치한 과수원에서 청년농부 형진영(38)씨가 직접 수확한 사과를 내보이며 웃고 있다.

◇청년농부로 산다는 것

20대에 농사일을 시작한 그에게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때로는 힘이 들고 버거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 농부가 된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럽다. “처음에 저도 친구들이랑 노는 것도 좋아하니까 젊을 땐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그런데 뒤돌아보니까 만약에 그때 재밌게 그렇게 놀았다면 내가 이렇게 행복한 일을 하고 있을 수 있었을까 싶어요. 농사일은 그 시기에 꼭 해줘야 하는 일들이 있고, 이런 일들 하나하나가 나중에 결과로 연결되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분들은 되게 모두 부지런하시거든요. 이런 삶이 농부의 숙명인 거 같아요.”

다만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 “서울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고 나니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그게 좀 미안해요. 그래도 아이들이 농장에 놀러오는 걸 좋아하고, 일이 없을 때는 최대한 아기들이랑 놀아주려고 많이 노력하죠.”

◇사과와 동반하는 삶

“사과는 저의 두 번째 동반자예요. 집에 가면 가족이 첫 번째 동반자고, 농장에 나오면 사과가 두 번째 동반자죠. 사과는 항상 제가 돌봐야 하고, 함께 성장하는 존재예요. 나와 함께 잘 자라주는 사과가 고맙고, 앞으로도 잘 자라길 바라고 있어요.” 그렇기에 그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고민과 계획도 세우고 있다. 우선 땅을 조금씩 넓혀, 나무를 더 심을 계획이다. 처음에 2만9800㎡(6000평)로 시작했던 과수원은 10년 만에 2만6446㎡(8000평)로 늘었고, 향후 목표는 만 평이다.

보다 안정적인 재배 환경도 모색 중이다. “사람들이 힘들지 않고 농사짓는 세상을 꿈꿔요. 농촌의 일손 부족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고 기후변화에도 대응해야 하니까 내년부터 스마트팜을 도입해볼 생각이에요.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위해 사과로 만들 수 있는 6차 산업도 고민 중이고요.” 그는 더 나아가 ‘거창 사과’의 명맥이 길게 이어지길 바란다. “거창 사과를 재배하시는 분들이 당장 앞만 보지 말고,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 같은 것들을 지켜서 건강하고 맛있는 사과를 재배하면 좋겠어요. 그래서 거창 사과라고 말하면 어떤 집에서 구매해도 맛있는 지역이 되면 좋겠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거창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그의 일이 단순히 땅을 일구고 열매를 수확하는 일이 아닌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자연을 이해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군 청년농부 지원 혜택

거창군은 청년 농부의 안정적인 영농정착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시행 중이다.

우선 지역 청년 농업인 유입을 위한 ‘청년농업인 영농정착 지원 사업’을 시행한다. 독립경영 3년 이하의 18~40세 청년을 대상으로 하며, 영농경력에 따라 1년차 월 110만원, 2년차 월 100만원, 3년차 월 90만원을 차등 지원한다.

초기 소득이 불안정한 청년 창업농을 대상으로 하는 ‘청년농업인 취농직불제 지원사업’도 있다. 최대 12개월간 취농직불 지원금 월 100만원 바우처를 지급한다.


영농경력 따라 정착금 차등 지급
후계농 농지 임대료 80% 지원

지역의 청년 후계농을 위해 임대료 지원 혜택도 있다. 농지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후계농을 대상으로 농지 임대료 지원을 통해 경영부담 완화 및 안정적 영농정착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은행 사업을 통해 농지 임대차 계약 시 임대료의 80%를 지원한다.

이 밖에 ‘청년농업인 커뮤니티 활성화 지원사업’을 통해 청년 농업인들의 정보교류와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한 협업체계 구축 및 농촌공동체 활성화 증진을 독려한다. 또 유능한 청년 농업인 양성을 위한 ‘양성청년4-H 과제교육 지원사업’과 청년농업인 단체 활동을 지원하는 ‘4H 영농과제 지원사업’도 시행한다.

이 밖에 농촌 거주 출산(예정) 여성 농업인을 위한 농가도우미 비용 지원사업, 여성농업인 출산바우처 지원사업도 있다.

군은 특히 지난해 정보수집 편의성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별도의 ‘거창군 귀농귀촌지원센터 홈페이지’를 구축해 정보를 실시간 전달하고 있다.

글= 조고운 기자·사진= 이솔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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