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며] 아는 얼굴- 조고운(디지털뉴스부장)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속 가족 얼굴을 비공개로 바꿨다. 지역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10대 딥페이크(Deepfake) 성범죄 뉴스를 접한 뒤였다. 도무지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의 범위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선택지는 자발적 소통 중단뿐이었다. 그 후 며칠간 뉴스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SNS 채널에서 자신의 얼굴을 삭제한다는 소식이 잇따랐다.
5초, 딥페이크 앱에서 내 얼굴 사진으로 또 다른 나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이다. 앱 프로그램에 4~5장의 얼굴 사진만 첨부하면 거의 완벽하게 얼굴 표정을 따라한다.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이는 분명히 내 얼굴이지만 내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원하는 모습에 더 가깝게 만들 수도 있고,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게도 한다. 영상 속의 내 모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의 구분이 모호해질수록 흥미로워지면서도 오싹한 기분이 든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눈으로 보는 것을 믿는 습성이 있다. 우리 뇌가 다른 어떤 감각보다 시각 정보를 우선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는 사람의 얼굴에 대해서는 신뢰도가 더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딥페이크 범죄는 여느 범죄보다 쉽게 당한다. 자신도 모르게 성범죄에 노출되거나, 유명한 가짜뉴스의 주인공이 되거나, 사기 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세상이 됐다.
무엇보다도 그 가해와 피해가 속삭이듯 숨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피해자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피해를 당하고, 어쩌면 피해 사실조차도 평생 모르고 살 수도 있다. 또 그 피해 사실을 알아도 토로할 곳이 없거나,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짜라는 이유로 피해자가 침묵해야하거나, 가짜라는 이유로 가해자가 이해받기도 한다. AI시대에 살고 있다곤 하지만 우리는 ‘가짜 나’의 모습이 희롱당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우리 사회는 ‘가짜 나’를 가해하는 범죄를 막을 법적 제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1020세대에서 딥페이크 영상이 장난처럼 소비되고 있다고 한다. 클릭 한 번으로 한 사람을 희롱하는 영상을 만들고, 그것을 소비하는 행위를 유희로 치부하는 사회는 공포다. 같은 반 친구들의 얼굴을, 같은 공동체에 속한 지인들의 얼굴을 성적 조롱의 대상으로 삼고도 ‘가짜인데 뭐 어때’ 라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아이들의 미래는 암담하다.
딥페이크는 단순히 얼굴을 다른 곳에 붙이는 일이 아니라, 그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발전된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그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기술을 악용해 여성을 착취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그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 사회는 불온하다. 또 범죄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자신의 얼굴을 노출시키는 일이 두려워지거나, 불특정 다수를 의심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회 역시 불행하다. 차별적이고 왜곡된 성인식, 폭력적인 권력관계와 같은 사회 문화를 바꾸지 않는 사회에서는 딥페이크 범죄를 넘어선 또 다른 범죄가 언제 어디서라도 발생할 수 있다.
‘아는 얼굴’은 아는 만큼의 책임이 있는 관계다. 그러므로 아는 사람의 얼굴이 모니터에서 피해를 당할 때, 즐거움보다는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인간성’이다. 최첨단 AI시대를 맞이할 우리의 아이들이 보다 인간적인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조고운(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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