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년농부다] (8) 의령서 애호박 농사 짓는 최지용씨
‘애호하는 마음’ 심고 ‘대박 농사’ 꿈 일굽니다
6년 전 부모 농사일 물려받아 농부로 정착
3억 대출받아 농장 규모 2배로 늘렸지만
2년간 ‘적자 농사’로 아르바이트까지 병행
농사 노하우 쌓이면서 작년 4억여원 매출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해야 하는 게 농사
밤엔 펍 열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목표
청년 정착 가능한 ‘문화 인프라’ 지원됐으면”
스물일곱 청년은 애호박에 인생을 걸었다. 청년 창업농 대출에 마이너스 통장까지 끌어와 하우스 규모를 대폭 확장했다. 그때는 몰랐다. 패기와 열정만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2년 동안 농사는 적자였다. 쿠팡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며 고난의 시간을 버텨 온 청년은 이제 연 4억5000만원 규모의 매출을 내는 농부가 됐다. 물론 그에게 아직 갚아야 할 대출금은 남아 있지만, 그것도 투자 아니겠냐며 웃으며 적금까지 넣는 여유도 생겼다. 낮엔 농부, 밤엔 펍 사장이 된 미래를 그리며 꿈을 적립해 가고 있는 최지용(32) 농부를 의령에서 만났다.

지난 21일 의령군에 위치한 애호박 하우스에서 청년농부 최지용(31)씨가 올해 첫 애호박을 수확해 옮기고 있다.
◇농사에서 비전을 보다= 진주에서 요식업을 꿈꾸던 최지용 씨가 낯선 땅 의령에 온 건 6년 전이다. 은퇴 후 귀농을 결심한 부모님을 잠시 돕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년 후 부모님이 떠나신 텃밭 위엔 그 혼자 남았다. 애호박 농사에서 비전을 보고 전업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애호박이 시세 등락 폭이 적고 시설 대비 고수익 작물인 것 같아서 괜찮더라고요. 또 의령군에서 청년 농부에 대한 지원이 엄청 많았고요. 창업하는 느낌으로 한번 농사를 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부모님 하우스를 인수받아 정착하게 됐습니다. 부모님이요? 원래 일 하시러 돌아가셨어요. 지금은 제가 바쁠 때 도와주시러 가끔 오시죠.(웃음)”
그가 정착한 의령군 화정면은 애호박을 짓기에 좋은 기후와 토양을 갖춰 주변에 도움을 줄 좋은 선배 농부들도 많았다. 자신감이 생긴 그는 부모님께 인수받은 하우스 6동 재배에 그치지 않고, 농사 규모를 더 확장할 결심을 했다.

청년농부 최지용씨가 올해 처음으로 수확한 애호박을 선별하고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3억원을 투자해 하우스 15동을 더 임대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저리의 청년 창업농 대출이란 제도가 있었고, 농사만 더 열심히 지으면 될 줄 알았다. 농사의 기술 부족과 날씨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건 패기와 무지였다. 첫 2년 동안은 적자만 나고 빚이 늘었다. 농업인 생활안정 대출에 쿠팡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생활고를 버텨야 했던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고개를 저었다.
“부푼 꿈만 안고 열심히만 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농사는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너무 열심히 약을 치거나 과하게 하면 안 되고 적시적소에 관리하는 방법들이 다 있더라고요. 의욕만 넘쳐서 실패를 하면서 배우고, 주변 어르신들께 많이 배우고 깨달음을 얻었어요. 1, 2년 차에 고생하고 3년 차부터는 제 생활할 만큼 수익이 나오더라고요. 작년부터 농사 노하우도 좀 생기고 시세도 좋아져서 빚도 좀 갚으면서 생활도 하고 있어요.”
고생 끝에 작년엔 역대 최대인 4억5000만원 규모의 매출 수익을 냈다. 괄목할 만한 성과지만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의 하우스 규모로 농사 짓는 선배 농부들은 그보다 2배 규모의 매출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애호박 농사는 진짜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에요. 날씨와 병해충 문제도 있어서 올해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몸으로 익힌 노하우로 더 농사를 잘 짓고 싶어요.

붉은 수정액이 뿌려진 애호박 암꽃. 암술에 수정액이 뿌려진 것을 확인하기 위해 붉은색 액체를 사용한다.

인큐베이터 비닐을 씌운 애호박은 곧은 원통형 모양으로 자라게 된다.

애호박에 인큐베이터 비닐을 씌우는 모습.
◇농부의 삶을 즐기다= 그는 농사 일을 즐긴다. 무엇보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농촌의 정이 있어요. 일하다가 쉬고 싶을 때 동네에 놀러 가면 커피 한잔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가 있죠. 또 농사는 하루 할 일이 딱 정해져 있기 때문에 틈틈이 내 시간을 쓸 수도 있죠. 제일 좋은 건 해가 지면 끝이니까 야근이 없다는 거예요. 저는 퇴근 후에 게임을 하거나 운동을 좋아해서 풋살, 탁구 같은 걸 많이 해요. 인근 진주에 놀러 가기도 하고요. 물론 대출 상환일이 가까워지거나 시세가 폭락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건 다른 일 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웃음)”
다만 그는 주변에 귀농하겠다는 청년들에게 농사를 적극 추천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짓거나 자본이 많은 친구들에게는 정말 좋은 일인데, 아무런 기반이나 준비 없이 시작하기엔 농사가 정말 어려운 일 같아요. 농사를 짓고 싶다면 정말 많이 공부하고 고민해야 해요. 사실 저도 지금 매일 살얼음판 걷는 듯한 느낌으로 농사를 짓고 있거든요.”

청년농부 최지용씨가 애호박 암꽃을 찾아 인공 수정을 시키고 있다.
◇농사짓는 펍 사장님 꿈꿔= 농부 생활 6년 차, 그는 여전히 매달 대출금을 갚고 있지만 그 이상의 적금도 넣고 있다. 대출도 적금도 모두 꿈을 위한 투자다.
“우선 통장 잔고 0원에서 시작하는 게 제 단기적인 목표예요. 제가 크게 돈을 쓰는 편도 아니고, 이제 농사로 제 생활은 유지되니까 대출금만 갚으면 좀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러면서 또 동시에 거액의 적금도 넣고 있어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그가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낮엔 애호박 농사 짓고, 밤엔 펍을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원래 제가 농사 짓기 전에 요식업계에서 일했거든요. 또 의령에 청년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기도 하고요. 제가 시골에 살다 보니까 이곳에 청년들이 더 잘 정착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문화 인프라나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청년이장 제도 같은 정책들도 생겨서 이 동네에 청년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의령군 청년농부 지원 혜택〉
‘청년귀농인 창업’ 5000만원 지원
주택 개량 등 주거 정착도 도와
의령군은 청년들의 귀농·귀촌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시행 중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업은 청년귀농인 창업 지원사업이다. 농촌지역 고령화에 대응한 농업전문인력 조기양성 지원을 목적으로 농업기계 구입, 하우스 설치, 저장가공시설 등 농업·축산기반 및 시설 확충지원 등에 최대 5000만원(자부담 2500만원)을 지원한다. 전입 5년 이내인 사람 중 귀농교육을 20시간 이상 이수한 만 40세 미만의 청년귀농인 농업경영체를 대상으로 한다. 또 ‘귀농인 창업 및 주택마련 지원사업’을 통해 농업창업자금(3억원)과 주택구입 및 신축과 증개축 자금(7500만원)에 대한 융자를 지원하며, 안정적인청년 농업인 정착을 위한 ‘청년·신규 귀농인의 현장실습 지원사업’도 시행한다. 귀농 청년인들의 안정적인 주거 정착을 도모하는 ‘귀농·귀촌인 빈집개량 지원 사업’과 ‘귀농·귀촌인 건축 설계비 지원 사업’, ‘농촌주택 개량사업’ 등도 있다.
의령군의 인구증가를 위한 청년정착 지원사업도 눈길을 끈다. 청년 이사비용 지원사업(50만원), 운전면허 취득비용 지원사업(50만원 이내), 청년 생애 최초 중고차 구입비 지원사업(150만원), 청년 반값 임대주택 수리비 지원사업(위무임대기간 주변 시세 반값으로 임대 지원), 청년부부 웨딩촬영 지원사업(30만원), 청년 자원봉사활동 지원사업, 청년 시험응시료 지원사업(어학 및 자격시험 응시료 연 최대 20만원) 등 세심한 지원사업 목록을 갖추고 있다. 이 밖에 다양한 청년 농업인을 위한 차세대농업인 성공모델 육성 지원사업, 청년농업인 조직 영농정착 지원사업, 청년 후계농 맞춤형 지원사업, 청년농업인 커뮤니티 지원사업 등도 시행하고 있다.
글= 조고운 기자·사진= 이솔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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