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며] 12월에는 관계를 생각한다- 조고운(디지털뉴스부장)

기사입력 : 2024-12-02 19:36:51

“올해 가기 전에 얼굴 한번 봐야지.” 이 한마디로 크고 작은 약속을 만들어 내는 연말이다. 수많은 만남 중에는 진심으로 그리웠던 사람과의 반가운 재회도 있고, 모임 자체가 목적인 회합도 있으며, 어쩔 수 없는 의무감에 참석하는 불편한 자리도 있을 것이다.

연말이 되면 우리는 자연스레 올해 만났던 여러 얼굴들을 떠올리게 된다. 달력을 12월로 넘기며 떠오르는 사람들 가운데는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다시 마주칠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 그리고 다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아마 그들에게도 필자 또한 비슷한 얼굴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관계란 이렇듯 서로의 마음속에서 다양한 얼굴로 자리 잡는 일일지 모르겠다.

올해를 마무리하면서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는 피로감 때문이다. 관계는 우리의 삶에 에너지를 주는 중요한 요소지만, 동시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피로감을 동반하게 된다.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타인과 서로서로 오해하는 것도, 그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도 다 피로감이다.

옥스퍼드대 진화생물학 교수 로빈 던바는 책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친구가 필요한가’에서 한 사람이 제대로 사귈 수 있는 친구의 수를 최대 150명이라고 정의한다. 던바는 인간관계를 ‘우정의 원’이라는 동심원 그래프로 설명하는데, ‘기대어 울 수 있는 절친’의 범위는 최대 5명까지고, ‘죽는다면 진짜로 슬플 것 같은 친한 친구’의 범위는 15명까지로 정의했다. 50명까지는 파티에 부를 만한 ‘좋은 친구’이고, 150명까지는 결혼식 하객으로 초청할 만한 친구다. 또 던바는 사람은 친구라 정의할 수 있는 150명까지를 도와줄 때는 보상을 바라지 않지만, 150명 이외의 사람들에겐 베푼 호의를 돌려받길 기대한다고 한다. 던바의 이론은 우리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감정적, 시간적 자원이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 숫자의 범위는 어떻게 측정해야 하는 것일까. 나무의사로 유명한 우종우 작가는 책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에서 나무들이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일정한 간격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이를 ‘그리움의 간격’이라 명명했다. 그는 나무들이 너무 가까이 있으면 서로의 성장을 방해하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바람과 햇빛을 적절히 나눌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관계가 너무 가깝거나 불편하면 숨이 막힌다. 그렇다고 너무 멀어지면 그리움조차 희미해진다. 나의 세계를 유지하면서 적절한 거리를 둔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심리적 간격과도 관련이 있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각자의 공간을 인정해야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말은 이런 간격을 재조정하기에 좋은 시기다. 소중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다가서는 용기와 불필요한 관계를 내려놓는 결단이 모두 필요하다. 관계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필요와 나의 감정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지나치게 상대에게 의존하거나 방치하는 관계, 선을 넘거나 상처 주는 관계는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올 연말에는 그리움이 남은 인연에겐 한 걸음 다가서고, 의무감만 남은 인연에겐 잠시 거리를 둬 보기로 결심한다. 그러다 보면 가까움과 그리움 사이에서 나의 진정한 관계들이 성장해 있지 않을까.

조고운(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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