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지역 문인 ‘글 무대’… 명맥 이어가는 문예지 3개뿐

[수요문화기획] 도내 문예지의 현주소

기사입력 : 2024-07-03 08:06:02

■ 도내 문예지의 역사
1928년 진주서 발행된 ‘신시단’이 최초
‘영문’·‘시와생명’ 등 출간됐다 사라져
2022년 ‘화중련’ 폐간되며 현재 3개 남아

■ 문예지 사라지는 까닭
비인기 분야 문학잡지 독자 관심 덜해
원고료 등 제작비에 출판비까지 부담 커
일부 지원받지만 대부분 사비로 충당

■ 문예지 존재의 이유
문학잡지는 지역문인 발표 무대이자
걸출한 문인 많은 경남 문단의 자존심
지역문학 발전 위해 계간지 있어야


문예지에 대한 기사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얼마 전 한 시인과의 대화 뒤였다. 대화 주제는 때가 되면 신문사로 오는 지역 문예지에 대한 것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투로 시인께 물었다. “선생님, 요즘엔 문예지가 도통 안 보이네요. 사라지는 걸까요?” 시인은 대수로운 것이라고 경고하려는 듯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죠. 문학이 사라지고 있죠.”

대중이 인식하기에 문예지란 ‘문예작품을 싣는 잡지’에 그치지만, 문인들에겐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작품을 발표하는 지면이다. 시인은 부연했다. “문학은 말이죠. 지면이 없으면 의미가 없어요. 발표를 해야 읽든지 하죠. 발표를 해야 문학이 되는 겁니다.”

듣고 보니 쉬이 넘길 일이 아니었다. 문예지가, 아니 문학이 사라지고 있다.

경남문학관에 소장 중인 도내 발간 문예지들. 화중련과 시와생명은 창간호와 폐간호. 서정과현실 작은문학은 창간호와 최근 발행본. 열린아동문학은 문학관 소장 중인 것 중 가장 오래된 것과 최근본. 열린아동문학은 최근 2024여름 101호가 발간됐다.
경남문학관에 소장 중인 도내 발간 문예지들. 화중련과 시와생명은 창간호와 폐간호. 서정과현실·작은문학은 창간호와 최근 발행본. 열린아동문학은 문학관 소장 중인 것 중 가장 오래된 것과 최근본. 열린아동문학은 최근 2024여름 101호가 발간됐다.
경남문학관에 소장 중인 도내 발간 문예지들. 화중련과 시와생명은 창간호와 폐간호. 서정과현실 작은문학은 창간호와 최근 발행본. 열린아동문학은 문학관 소장 중인 것 중 가장 오래된 것과 최근본. 열린아동문학은 최근 2024여름 101호가 발간됐다.
경남문학관에 소장 중인 도내 발간 문예지들. 화중련과 시와생명은 창간호와 폐간호. 서정과현실·작은문학은 창간호와 최근 발행본. 열린아동문학은 문학관 소장 중인 것 중 가장 오래된 것과 최근본. 열린아동문학은 최근 2024여름 101호가 발간됐다.

◇도내 발간되는 순수 문예지는= 문예지는 한마디로 ‘문학 잡지’다. 도내 각 장르별·지역별로 문인들이 속해 있는 협회 등 단체에서 내는 회지는 경남문학, 진해문학, 경남시조, 경남아동문학 등이 있다. 또 마음 맞는 이들이 모여 만드는 동인지는 남강문학, 붓꽃문학, 프리즘, 마루문학 등이 있다. 이들도 문예지의 범주에 속하지만, 여기서는 순수 문예지만 논하기로 한다.

경남은 역사적으로 동인지나 회지는 유수했으나 문예지가 성행한 편은 아니었다. 1995년 발간된 경남문학사에 따르면 경남에서 발간된 최초의 문예잡지는 1928년 8월 진주에서 발행된 ‘신시단’으로 기록된다.

이후 발간 연도 순으로 1950년대 ‘영문’, 1970년대 ‘문예정신’, 1996년 발간된 ‘작은문학’이 뒤를 따른다. 이어 1998년 겨울에 나온 ‘시와생명’, 2003년 창간한 ‘서정과현실’, 2004년 창간 ‘화중련’, 2011년 ‘시와환상’ 등으로 이어졌다.

경남문학관 소장 도내 발간 문예지 ‘화중련’.
경남문학관 소장 도내 발간 문예지 ‘화중련’.
경남문학관 소장 도내 발간 문예지 ‘화중련’.
경남문학관 소장 도내 발간 문예지 ‘화중련’.

지난 2022년 ‘화중련’ 폐간으로, 현재 도내 발간되는 순수 문예지는 3개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우걸 시조시인이 발행인으로 있는 ‘서정과현실’, 오하룡 시인이 발행하는 ‘작은문학’, 그리고 서울에서 시작해 부산을 거쳐 현재는 경남에서 발행하고 있는 아동문학지 ‘열린아동문학’이 있다.

경남문학관 소장 도내 발간 문예지 ‘열린아동문학’.
경남문학관 소장 도내 발간 문예지 ‘열린아동문학’.
경남문학관 소장 도내 발간 문예지 ‘열린아동문학’.
경남문학관 소장 도내 발간 문예지 ‘열린아동문학’.
도내 발간 문예지 ‘열린아동문학’은 올해여름이 101호에 달함.
도내 발간 문예지 ‘열린아동문학’은 올해여름이 101호에 달함.

1998년 고 유경환 아동문학가가 창간했던 ‘열린아동문학’은 시인 타계 이후 배익천 아동문학가가 그 유지를 받들며 2009년 속간, 2018년부터 고성에서 제작하고 있다.

◇사라지는 문예지의 사정= 문예지가 왜 사라지는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영역이다. 각자 취향껏 책을 사보는 것도 기대하기도 힘든 시대에 출판사 혹은 발행인의 주관이 들어간 책이 인기를 끌기는 쉽지 않다.

반면에 제작비는 꽤 든다. 도내 두 문예지 기준으로 작품을 청탁하는 원고료는 편당 5만원 정도. 올해 상반기에 발행된 서정과현실을 기준으로 단순 추산해보더라도, 약 50인의 문인이 대부분 2편 이상의 작품을 실었으므로 원고료만 500만원이란 소리가 된다. 게다가 교정, 편집 등 출판 비용까지 포함하면 제작비는 더 늘어난다.

속된 말로 돈벌이가 되지 않는 문예지를 끌고 나갈 수 있는 곳들이 대체로 유명 출판사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현재 발행되고 있는 문예지 ‘서정과 현실’이 경남문학관 책꽂이에 꽂혀 있는 모습.
현재 발행되고 있는 문예지 ‘서정과 현실’이 경남문학관 책꽂이에 꽂혀 있는 모습.
현재 발행되고 있는 문예지 ‘서정과 현실’이 경남문학관 책꽂이에 꽂혀 있는 모습.
현재 발행되고 있는 문예지 ‘서정과 현실’이 경남문학관 책꽂이에 꽂혀 있는 모습.

서정과현실 발행인인 이우걸 시조시인은 모든 제작비를 오롯이 사비로 충당하기는 힘든 까닭에 고료를 적게 지급하기도, 스스로의 인맥에 적극 기대기도 하면서 잡지를 유지하고 있다. 오랜 시간 시조에 정진하며 지역 시조단의 원로로 자리매김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우걸 시조시인은 “편집진으로 있는 동료 시조시인들과 오랜 기간 함께 수학해온 제자들이 십시일반 도와주어 버티고 있다”면서도 “이 작업을 언제까지 할 수 있겠나”고 토로했다.

근래 경남문예진흥원으로부터 일부 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부담은 그에게 있다.

현재 발행되고 있는 문예지 ‘작은 문학’이 경남문학관 책꽂이에 꽂혀 있는 모습.
현재 발행되고 있는 문예지 ‘작은 문학’이 경남문학관 책꽂이에 꽂혀 있는 모습.
현재 발행되고 있는 문예지 ‘작은 문학’이 경남문학관 책꽂이에 꽂혀 있는 모습.
현재 발행되고 있는 문예지 ‘작은 문학’이 경남문학관 책꽂이에 꽂혀 있는 모습.

열린아동문학은 발행인 배익천 작가의 오랜 지기이자 부산 방파제 횟집을 운영하는 홍종관 대표의 후원으로, 작은문학은 발행인인 오하룡 시인이 출판사(도서출판 경남)를 운영하는 까닭에 사정이 덜한 편이나 그들 역시도 부담이 없다곤 할 수 없다.

오 시인은 “작은문학이 처음엔 계간지로 시작했다가 51호부턴 반연간지로 바꾼 것도 경제적 이유”라고 했다. 시와생명 역시 오래 버티지 못했던 이유로 경제적 사정을 꼽았다.

경남문학관 소장 도내 발간 문예지 ‘시와생명’.
경남문학관 소장 도내 발간 문예지 ‘시와생명’.

◇문예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이들은 왜 그렇게 애써가며 문예지를 발간하고 있는 걸까. 문예지를 발행했거나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은 전통 있는 경남 문단의 자존심이자 지역 문학의 발전을 위해 문예지가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우걸 시조시인은 “계간지 규모의 시 문예지가 없는 곳은 전국에 경남뿐이다. 광주에 시와사람, 대구에 시와반시, 부산에 시와사상이 있고, 심지어 제주에도 있다. 경남이 어떤 곳인가. 김상옥, 김춘수, 박재삼, 이은상 등 유명한 시인들이 나고 자란 대표 시향(詩鄕)에서 문예지가 없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오하룡 시인은 “인구 300만이 넘는 경남도를 대표하는 문학지가 없어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왔다”면서 “문학은 발표 지면이 없으면 사문화된다. 지역에 문인들이 많은데 발표 무대가 있어야 문단이 활성화되고 저변이 확대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익천 동화작가도 아동문학의 발전에 의미를 둔다.

배 작가는 “열심히 만들다 보니 많은 아동문학가들이 우리 잡지에 글을 싣고 싶어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지면은 한정되고 글을 쓰는 사람은 많으니 한 번 실린 사람은 아무리 잘 써도 2~3년은 지나야 기회가 생긴다고 봐야 한다. 아동문학가들이 글을 실으려고 노력함으로써 자기 실력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문예지를 지키는 사람들 인터뷰〉

“좋은 글 실어 지역독자·지역문인 모두가 원하는 잡지 만들 것”

혹자는 그들을 두고 ‘자기 만족’이라고 그 수고를 깎아내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이 추구해온 가치들이 경남의 문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우걸 시조시인, 오하룡 시인, 배익천 동화작가에 문예지를 발간하는 이유를 물었다.

‘서정과 현실’ 발행인 이우걸 시조시인.
‘서정과 현실’ 발행인 이우걸 시조시인.

-문예지를 시작했던 이유가 있다면.

△이우걸: 시조 발전을 위해서였다. 시조만 싣는다면 시조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두 개를 동시에 해야 서로 간 참고하며 격이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해 시·시조를 모두 싣는 문예지를 만들었다. 이름이 서정과 현실이다. 현실 비판과 서정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한국 시 발전에 기여하고자 했다.

△오하룡: 오래전부터 우리 지역에 알찬 문학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염원이 늘 있었고 실천했다. 문학은 중요하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작은’ 문학이라 이름을 지었다. 판형도 일반적인 책보다 작은데, 문학을 대중과 더 친근하게 하겠다는 바람이었다. 그러므로 장르 또한 구분하지 않았다.

△배익천: 유경환 선생이 돌아가시면서 어떻게 하다 보니 열린아동문학을 맡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예전 부산MBC에 있으면서 어린이문예라는 어린이 잡지를 만들기도 했고 여러 잡지에 관여도 했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 좋은 잡지를 만들어보자 싶어 50년지기 글동무들과 함께 정성 들여 만들고 있다.

‘작은문학’ 발행인 오하룡 시인.
‘작은문학’ 발행인 오하룡 시인.

-운영 철학과 방식이 궁금한데.

△이우걸: 영남지역 문인들을 위한 발표 지면으로서 지역 인재 발굴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해 대구, 경상, 부산을 중심으로 그외 지역 문인들과의 비중을 5대 5로 할애하려고 한다. 글이 안 좋으면 과감히 싣지 않는다. 질 높은 문예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크기 때문이다. A급 잡지에 실려야 A급 문인이 되는 것이다. 문인들이 나서서 글을 싣고 싶은 잡지가 되고 싶다.

△오하룡: 지역 문학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 독자들이 원하는 책을 만드는 데 의미를 뒀다. 문예지가 가치 있으므로 지켜나가야 한다는 건 발행인의 생각이지, 독자 입장에서는 읽을 만한 글이냐 아니냐를 따질 뿐이므로 경남권으로 원고를 국한하지 않는다. 보통 문예지들이 신작을 발표한다면 우리는 지나간 것들 중 놓친 것들, 다시 읽었으면 싶은 것들을 되새기는 작업에도 솔선하고자 했다.

△배익천: 책 목차에도 썼지만 우리는 ‘이름보다 작품을 우선하여 싣는 잡지’이다. 내가 아는 사람, 문단에서 오래된 사람, 이름 있는 사람을 싣는 게 아니고 정말로 현대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발굴해서 싣고 있다.

‘열린아동문학’ 편집인 배익천 동화작가
‘열린아동문학’ 편집인 배익천 동화작가.

-문예지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나.

△이우걸: 문예지 자체가 비평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도내 시조시인협회 회원만 약 200명이다. 부산에 350명, 울산 50명, 대구 100명 정도다. 그중에 가려서 원고를 싣는 것 자체가 작품을, 문인을 비평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거다.

△오하룡: 전국적으로 창비나 문학사상 등 비중 있는 문학지들에서 신인상 등 방식을 통해 등단의 역할을 해오고 있는 것처럼 신인 발굴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여러 지역에서 문예지라고 하는 잡지들이 등단 장사를 하며 자질이 떨어지는 원고로 채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배익천: 제대로 된 글로 좋은 잡지를 만드는 것은 아동문학가들이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북돋아주는 일이다. 이를 위해 상 다운 상을 꿈꾸며 2011년부턴 열린아동문학상을 운영 중이다. 우리 청탁서를 받으면 생애 최고의 작품을 쓰겠다 같은 각오를 다지게 하는 역할이고 싶다.

글·사진= 김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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