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석루] 사춘기 자녀를 두었나요?- 송혜숙(KT 경남지사장)

무뚝뚝한 엄마를 닮아 우리 집 딸은 한 시크한다. 중고등학교 때는 눈앞에서 방문이 그냥 닫혀버리는 경험을 무수히 했더랬다. 밥을 먹을 때도 짜증이 섞인 투로 대충 먹거나 본인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무조건 문을 잠그고, 성적표나 친구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아 당시 생활의 전반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바쁜 회사생활을 핑계로 학교에 제대로 찾아가 보지도 못하고 기껏해야 과외로 엄마의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순간을 외면하던 당시를 지금 반성하지만 어쨌든 딸과 나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던 듯하다. 근데 어느 순간 내 아이가 달라졌다. 물론 스무 살이 넘어서 생긴 변화다. 내가 퇴근해 집에 가면 딸은 허그와 가방 들어주기로 맞아준다. 자기 전에는 안마를 해주고, 설거지와 음식물 쓰레기까지 버려준다. 어느새 친구 얘기도 해주고, 비밀이나 고민까지 나누게 된 것이다. 무엇이 딸을 변하게 했을까? 사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대학 편입 준비한다고 딸만 셋 있는 이모집에서 몇 개월 생활하면서 언니들의 생활을 눈으로 모방했는지도 모르겠다. 룸메와의 마찰로 인간관계의 이면들에 상처받으면서 가족의 따뜻함을 재조명했는지도 모르겠다. 워킹홀리데이로 캐나다 1년을 넘게 살면서 경제생활과 집안일을 병행하며 엄마를 맘속으로 다시 찾았는지 모르겠다. 무엇이 원인인지 모르겠지만, 막연한 추측들을 종합해보니 역시 철이 들면서 자연스레 부모를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얼마 전 직장 동료가 중1 딸이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늘 아빠 바라기로 아빠 팔베개로만 자던 녀석이 아빠가 본인을 쳐다봤다고, 눈 마주쳤다고 삐져서 며칠간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흔히 말하는 마상을 심하게 입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또한 다 지나갈 것이라 본다. 철이 들어서 지난날 했던 철없던 행동들에 대한 반성이 그걸 묵묵히 수긍해준 아빠에 대한 감사로 나타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어쩌면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어린 시절에도 지금의 딸 모습이 있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부모가 기다려준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녀가 성숙하기를 기다려줬으면 한다.
송혜숙(KT 경남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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