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돌아왔다, 귀향시대] (6) 합천에 살어리랏다
돌고 돌아 고향서 찾은 적성… 농사꾼으로 ‘달콤한 결실’
가야산 자락 아래 위치한 합천 가야면의 한 과수원. 산과 들, 지저귀는 새소리만이 가득한 이곳은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권광현(44)씨의 일터다. 어느덧 10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 농부 광현씨는 자신의 고향인 합천에서 억대 매출을 자랑하는 안정적인 길을 걷고 있다.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과 여유 속에서 농사짓는 삶이 억만장자 부럽지 않다는 그는, 사실 지금의 과수원을 운영하기 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합천을 떠난 적이 있다. 시골에서 농사짓기 싫다는 이유 하나였다. 농부는 절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에게 어떤 바람이 불었던 것일까. 지난 4일 가야산이 품고 있는 라엘농장에서 귀향청년 광현씨를 만났다.
꿈 찾아 방황하던 20대
농사로 항상 바쁜 부모님 보며 성장
힘든 농사일 싫어 시작한 타향살이
불안한 생활에 2년도 채 안돼 포기
정착 꿈꾸며 고향으로
축사 임대해 소 키웠으나 적자 쌓여
매형 과수원 사들여 새로운 도전
노력한 만큼 결실 나와 보람 느껴
다양한 판로 개척하는 게 목표
청년 위한 지역 정책들
군, 일자리·주거·복지 등 사업 추진
영농리더 육성·체험형 인턴 등 마련
청년 정책참여 ‘합청넷’ 운영도

권광현 라엘농장 대표가 합천군 가야면의 사과 저온창고에서 수확한 사과를 들어보이고 있다./김승권 기자/
농부의 아들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광현씨는 귀여움 받고, 투정 부릴 새 없이 일찍이 철이 들어야만 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평생 벼농사를 지으셨던 부모님은 4남매를 키우기 위해 쉼 없이 고단한 삶을 살았다. 농사에 전념하지 않으면 자식들을 굶기고,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킬 수 없을 거라는 걱정에 부모님의 손길은 항상 논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등교 준비와 학교 준비물을 챙기는 건 스스로의 몫이었고, 농번기 때는 혼자 밥을 차려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자립심보다는 보살핌이 필요했던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다.
“농사를 짓느라 바쁘셨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다 보니까 어릴 때부터 스스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어요. 사소한 것까지 말하면, 등교하기 전 아침에 옷을 입는 것부터 가방 싸기, 준비물 챙기는 것 등 웬만한 건 알아서 했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혼자서 밥을 차려 먹기도 했으니 말 다했죠. 지나고 보니 그때의 그런 환경이 농사짓는 데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웃음)”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립심을 키워야 했던 상황이 지금 농사의 자양분이 됐다며 웃어 보이기도 하지만, 당시 부지런함이 미덕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 속에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책임감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힘들게 농사짓는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리려 견뎌내려 했다. 무엇보다 힘든 건 방과 후 친구들과 목적지가 다른 것이었다. 한데 모여 구슬치기와 축구를 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기에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농부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래 친구들의 평범한 일상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방과 후 친구들과 같이 놀고 싶어도 부모님을 도와드려야 해서 항상 저는 집으로 가야 했거든요. 특히 힘들었던 건 가정학습을 하는 날이었어요. 가정학습을 하면 보통 친구들은 오전 일찍부터 만나서 노는데, 저는 하루종일 농사일을 도와야 했어요. 이런 게 너무 싫기도 했고, 힘들게 일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저는 절대 농부가 되지 않을 거라고 다짐에 다짐을 했었죠.”

권광현 라엘농장 대표가 합천군 가야면의 사과 과수원 옆 선별및 포장 작업실에서 사과 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농부가 싫었고, 농사가 싫었다. 자연스럽게 농업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던 합천도 떠나고 싶어졌다. 그렇게 광현씨는 스무 살이 되던 해 고향을 떠나 호텔경영학을 배우기 위해 대구의 모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다. 딱히 관심 있는 분야는 아니었지만, 막연하게 고향을 뜨고 싶은 마음과 대구에 같이 가자는 친구의 권유에 의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계획 없는 선택에는 부작용이 따랐다. 학과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그는 결국 1학년 1학기 만에 휴학을 하고, 입대를 결정한다. 입대 후 자신의 미래를 그리기 위함이었다.
“군대는 남자들의 도피처라고도 하잖아요. 당시 친구들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대학에 진학했는데 도통 저랑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어차피 가야 하는 군대 일찍 가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으려고 했어요. 결국 군대에서 제가 뭘 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지만 말이죠.
제대 후에도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방황하던 그는 전기설비업체를 운영하는 지인의 권유로 곧장 서울로 떠나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 치고는 벌이가 꽤 괜찮았다. 일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던 그는 전기설비 쪽 일이 비전이 있다고 생각해 평생직업으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이 시기 대구의 한 지인으로부터 같이 음식 장사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다. 평소 장사를 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그의 마음이 크게 요동쳤다. 그리고 대구로 내려갔다. 거슬러 올라가면 사실 그에게 ‘대구’라는 지역과 누군가의 ‘권유’는 결말이 썩 좋지 못한 조합이었다. 가슴에 품고 있던 그의 작은 꿈은 결국 2년이 채 안 돼 막을 내리게 된다.
“무슨 이유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당시 대구 경기는 IMF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만큼 좋지 않았어요. 장사를 시작해 6개월까지는 나름 괜찮았는데 그 이후부터 계속 적자였죠. 그때 나이가 20대 중반이었는데, 다른 친구들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걸 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컸어요. 계속 대구와 서울을 오가면서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보니까 많이 지치기도 했고요. 이때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권광현 라엘농장 대표가 합천군 가야면 사과 선별,포장 작업실에서 사과 배송 작업을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안정적인 직장을 생각하다 보니 떠오른 게 고향 합천이었다. 마침 첫째 누나의 매형이 합천에 내려와 소를 키워보지 않겠냐고 제안도 했었다. 가족의 회유와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결국 그는 귀향을 결심한다. 그러나 첫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그럴듯한 축사와 소를 사들이려면 최소 2억원이 필요했다. 대구에서 장사한다고 모았던 돈을 다 까먹은 탓에 수중에 가진 돈으로는 축사는커녕 소 몇 마리도 사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소를 키우면 돈이 된다는 말에 축사 짓는 비용과 소 입식 비용을 알아봤는데, 제가 가진 돈으로는 턱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저렴하게 나온 축사를 임대해서 암송아지 7마리로 시작을 했죠. 송아지를 입식한다고 바로 수익이 나지 않으니까 사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버텼어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돌아왔지만, 되레 더 힘든 것 같아 후회를 엄청 했었죠.”
귀향 후 녹록지 않은 현실에 좌절할 때도 많았지만, 버티다 보니 자신의 축사도 짓고, 한때 소 100마리를 입식할 정도로 축사가 번창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곡물 수입 가격이 오르면서 사료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 집보다 축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정도로 정성 들여 소를 키웠지만,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적자만 쌓여 가는 날이 반복됐다.
“계속해서 오르는 사료값 앞에서 너무 무기력하더라고요. 농부라는 직업은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노력을 해도 사료값까지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억울하기도 했죠. 소를 줄이는 것밖에 답이 없더라고요.”
축사를 접겠다는 마음으로 소를 팔기 시작한 그에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처음 소를 키워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매형이 자신이 운영하던 사과 과수원을 내놓고 경북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그는 축사와 키우던 소를 모두 정리하고, 매형의 과수원을 사들였다. 사과 과수원 역시 새로운 도전이었기에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그는 비로소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듯했다.

권광현 라엘농장 대표가 고향인 합천으로 돌아와 사과 농사를 지으며 겪은 귀향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소를 키울 때는 사료값이 오른다거나 아무리 정성 들여 키워도 등급이 낮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아 노력 대비 결과가 아쉬울 때가 많았거든요. 사과도 물론 날씨나 병해충 영향을 받긴 하지만, 제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만큼 이런 변수들을 줄일 수 있더라고요. 특히 다양한 재배방법을 익혀서 과수원에 접목했을 때 사과 품질이 좋아지는 걸 보면 그때의 보람이 엄청 크기도 하고요. 누구보다 성실함만큼은 자신 있는데, 그래서인지 노력한 만큼 결과로 나타나는 사과 농사가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그토록 농부가 되기를 거부했었지만, 이제는 농부라는 직업이 적성에 맞다고 하는 그를 보면 어쩌면 농사는 그에게 천직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간의 방황은 어린 시절 투정 부릴 새 없이 철이 들고, 또래와 같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지 못한 아쉬움을 채우기 위한 일탈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돌고 돌아 억대 매출을 달성한 사과 농장의 대표가 된 그에게 또 다른 목표가 있는지 물었다.
“농사를 잘 짓는 것만큼 중요한 게 판로를 넓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농사를 지어 품질 좋은 상품을 공판장에 내놓아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품질과 맛이 좋음에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 너무 불행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농업법인을 설립해서 불필요한 중간유통을 없애고, 농부들이 땀 흘려 생산한 상품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판로를 개척하는 게 목표예요.”

권광현 라엘농장 대표가 고향인 합천으로 돌아와 사과 농사를 지으며 겪은 귀향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합천군 청년정책= 합천군은 지역 청년들의 안정적인 정착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일자리, 주거, 복지, 참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청년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사업으로는 청년들의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체험형 청년인턴사업 △청년·여성 창업지원사업 △청년 농업인 영농리더 육성지원 △청년농 육성 축사 신축 이자 지원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산림체류형 청년창업센터를 건립해 합천의 풍부한 산림자원을 활용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을 대상으로 융복합형 교육과 창업 지원을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청년과 신혼부부의 주거 안정을 위해 △신혼부부 주거자금 대출이자 지원사업 △청년 월세 지원사업을 시행 중이다. 합천읍 소재지에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맞춤형 주거 공간으로 ‘청년·신혼부부 행복주택’과 ‘청년 공공임대주택’을 조성해 총 60호를 공급할 예정이며, 청년의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결혼축하금 △출산장려금 △다자녀 지원금도 제공하고 있다.
특히 군은 청년들이 능동적으로 지역 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합천군 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합청넷)를 조직해 운영 중이다. 합청넷은 지역 청년들의 정책 참여를 확대하고,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4개군 청년정책 거버넌스 교류회 개최 △합청넷 인문학 캠프 △청년정책 토론회 등 다양한 활동을 추진해 단순 의견 수렴에 그치지 않고 청년 스스로 정책을 제안하고 실행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김용배 합천군 미래성장활력과장은 “청년들에게 안정된 생활 기반과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청년들이 고향에서의 삶을 긍정적으로 설계하고, 지역 발전의 주체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영현 기자 kimgija@kn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