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ON- 옥영숙의 내돈내산 시인의 한끼] (12) 진주 설야비빔밥과 전통찻집 죽향

진주의 맛, 맛의 진주

기사입력 : 2025-01-30 21:58:04

산해진미 음식문화 발달한 진주서
‘진주 토박이’ 박우담 시인과 한 끼

나물·육회 정갈하게 얹인 비빔밥
24시간 숙성해 구운 석쇠구이 맛봐
시원하고 칼칼한 소고기뭇국 별미

다도명인 부부 운영하는 찻집서
웅숭깊은 맛 자아내는 대추차
하동서 덖은 발효차 마시며 시담


천년고도 진주는 역사와 문화가 집약된 도시이다. 예로부터 가무와 술이 곁들여진 연회 잔치가 많이 베풀어졌던 고장이다. 특히 높은 관리들의 왕래가 많아서 교방음식은 맛과 멋을 겸비했다. 진주전통 한정식은 궁중에서 전래된 진주 특유의 상차림과 맛으로 조선양반문화의 풍류가 만들어낸 전통음식이다. 양반과 기생이 만들어낸 풍류, 음식문화는 진주의 문화와 역사가 빚어낸 조선조 최고의 접대식이다. 그중에서 진주비빔밥은 명성과 역사적인 의미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고루 갖춘 진주의 대표 향토음식이다. 맛과 영양이 뛰어난 비빔밥은 밥에 각종 나물을 넣고 장을 넣어서 비벼 먹는 전통 한국요리로 궁중에서는 골동반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즐겨 먹었고 태종 때는 한양의 정승들이 천리 길을 마다 않고 진주까지 왔다는 기록이 있다.

싱싱한 소고기를 참기름과 소금, 마늘, 깨로 조물조물해서 만든 육회비빔밥.
싱싱한 소고기를 참기름과 소금, 마늘, 깨로 조물조물해서 만든 육회비빔밥.

◇시우담문학회를 이끄는 박우담 시인과 설야를 읊다= 천년의 역사가 흐르는 남강의 도시, 아름다운 풍경과 천년의 맛과 향기를 간직한 진주에서 박우담 시인과 점심 약속을 하였다.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를 벗어난 적 없는 토박이 시인과 함께하는 한 끼다.

박우담 시인은 2004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하였다. 진주지역 문화예술 활동을 활발하게 이끌고 있는 시인은 ‘구름트렁크’, ‘시간의 노숙자’, ‘설탕의 아이들’, ‘계절의 문양’, ‘초원의 별’ 시집을 펴냈다. 시전문지 ‘시와 환상’ 주간을 지냈고 현재는 계간 ‘시와 편견’ 편집인이다. 이형기시인기념사업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제1회 시사사작품상과 제2회 형평지역문학상, 이병주경남문인상 등을 수상했다. 매주 목요일 문학에 뜻을 둔 시인들과 모여서 시공부를 하고 있는 ‘시우담문학회’ 대표로 요즘 ‘디카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 시집 ‘초원의 별’에서 “시간의 개울에서 수줍음이 많고 어리숙한 아이를 만났다. 아이의 속삭임을 귀담아들었다. 이따금 연보 없는 빗방울이 쏟아졌다. 나는 후줄근한 아이를 생각하며 낯선 별을 헤매고 있다”라고 시인의 말을 한다. 시를 쓰는 것은 사물에 말 걸기라는 시인은 자기 성찰, 마음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문학 안에서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고 학문적 대화로 영감을 주는 문우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갔다.

◇칠보화반 ‘설야 비빔밥’= 지역마다 특화된 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진주는 경남의 교통 중심지로 지역 문화가 집중된 곳이다. 지리산과 남해 바다가 인접해서 청정 농산물과 신선한 수산물로 인해 산해진미의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다.

문헌에 의하면 삼국시대 효채(淆菜)밥, 지금의 비빔밥이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부녀자들이 민·관·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밥을 지어 나르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밥에 각종 나물을 얹어 비벼 먹기도 했다. 진주비빔밥을 꽃밥 또는 칠보화반이라 한 것은 황금색 둥근 놋그릇에 여러 가지 계절나물이 어우러져 일곱 가지 색상의 아름다운 꽃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비빔밥이 화려했으면 화반이라 했겠는가.

진주비빔밥은 밥을 짓는 특별함이 있다. 비빔밥에 사용할 쌀밥은 사골이나 양지를 장시간 곤 육수에 밥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비빔밥에 나오는 국은 소고기 살코기와 선지, 간, 허파, 천엽 등 내장을 푹 곤 국물에 무와 콩나물, 대파를 곁들인 특유의 얼큰한 맛을 내는 선짓국이다.

눈 내린 들판의 하얀 쌀밥을 상징하는 설야는 진주시 동부로 169번길 12. 윙스타워 1층에 있다. 일요일은 휴무다. 원래 진주시청 근처에서 영업하다가 이곳 신축빌딩으로 이전하였다. 정혜숙 고흥댁이 진주 토박이 의경을 만나 결혼하면서 진주댁이 되었다. 설야를 운영한 시간은 12년 남짓 이곳 혁신도시로 이주한 것은 6년째다.

설야는 진주비빔밥과 석쇠구이, 육회가 이곳의 간판 메뉴다. 육회와 선짓국이 진주비빔밥의 특징인데 설야에는 선짓국 대신 쇠고기 맑은 국이 올라온다. 나이 드신 분은 선짓국을 선호하지만 MZ 세대가 갖는 선짓국에 대한 호불호가 있어서 대중적인 입맛을 고려한 영업 전략으로 쇠고기뭇국이다.

콩나물 대신 숙주나물을 다짐해서 만든 진주비빔밥. 진주의 시화인 석류꽃처럼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콩나물 대신 숙주나물을 다짐해서 만든 진주비빔밥. 진주의 시화인 석류꽃처럼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설야의 비빔밥은 놋그릇에 담긴다. 콩나물 대신 숙주나물을 다짐해서 진주의 시화인 석류꽃처럼 표현한다. 나물과 육회가 정갈하게 얹어 나와 아름답다. 고명으로 오르는 육고기를 육회나 익힘을 선택할 수 있다. 주문 때 요청하면 익혀서도 나온다. 동그란 호박전, 지리멸치, 김치, 오이 초절임, 밑반찬이 식감을 자극한다. 비빔밥과 함께 나온 소고기뭇국은 시원하고 칼칼한 맛을 낸다. 놋그릇에 담겨있어 다 먹을 때까지 따뜻함을 유지한다. 비빔밥을 먹을 때 고추장 비율을 맞추기가 어려운데 비빔밥 속에 재료랑 양념이 같이 들어있다. 모든 음식이 과하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놋그릇에 담긴 구수한 숭늉도 제공된다.

진주 교방음식은 주안상 위주로 차려지는 음식이라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다. 양념을 최소화하여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설야도 나물을 작게 썰어 예쁘게 담아낸다.

석쇠구이는 한우 떡갈비로 찰지다. 다진 고기를 조리하는 우리 음식으로는 떡갈비가 대표적이다. 떡갈비는 소고기의 갈빗살을 곱게 다져 치대가며 양념하고 24시간 숙성하여 석쇠에 구워 나온다. 석쇠구이는 쫄깃하면서 육즙이 풍부해 담백하고 찰지다. 비빔밥에 곁들여 먹기 좋은 달큼한 갈빗살을 한입 크게 먹어본다. 육즙이 툭툭 터지는 것이 부드럽고 촉촉하다. 시장기를 채우는 바쁜 젓가락이다.

한우 떡갈비인 석쇠구이. 쫄깃하면서 육즙이 풍부해 담백하고 찰지다.
한우 떡갈비인 석쇠구이. 쫄깃하면서 육즙이 풍부해 담백하고 찰지다.

육회는 당일 도축된 신선한 육회문화로 진주가 과거에 누렸던 풍요의 상징이다. 아침마다 고기의 지방을 제거한 싱싱한 소고기를 참기름과 소금, 마늘, 깨로 조물조물해서 채 썬 배와 함께 낸다. 배는 소화를 촉진하고 아삭한 식감으로 부드러운 육회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부드럽고 고소한 고기 본연을 맛을 지키기 위해 후추는 넣지 않는다. 육회는 단백질이 풍부하여 체력 회복과 빈혈 예방에 도움이 된다.

우리 조상들은 삼국시대부터 소고기를 즐겼고 조선시대에는 ‘소 한 마리에서 백 가지 맛이 나온다(一頭百味)’고 할 만큼 뛰어난 미각을 지녔다고 한다. 성질이 온순하고 인내심과 영리함을 지닌 한우처럼 든든한 박우담 시인이다. 고품격 단백질과 영양소를 제공하듯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시인과 맛있는 한 끼를 나눴다.

◇전통찻집 죽향 차문화원= 겨울 햇살의 작은 온기를 보듬고 찾아간 전통찻집 죽향이다. 진주시 남강로 659번길 10-1. 다도명인 김형점과 김종규 부부가 운영한다.

1997년 8월 8일에 문을 열고 지금까지 전통찻집으로 다도 수업, 다구 판매 등 차와 관련된 차문화복합공간을 지켜가고 있다. 처음 문을 연 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쉰 날 없다고 한다. 대중적 공간으로 차를 알고 즐기는 사람들과 동행하는 생활의 동반자를 지향하는 곳이다.

다도명인 김형점과 김종규 부부가 운영하는 전통찻집 ‘죽향’의 차 시음공간.
다도명인 김형점과 김종규 부부가 운영하는 전통찻집 ‘죽향’의 차 시음공간.

죽향차문화원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차의 열 가지 덕목을 기재한 입간판이 서있다. 차를 마시면 우울함이 흩어지고 졸음을 없애주고 생기를 길러준다고 적혀있다. 계단을 오르면 왼쪽은 찻집이고 오른쪽은 다구를 파는 공간이자 다실로 3층은 죽향차문화원으로 차와 다식체험, 차와 다기 특강을 운영한다. 목조건물의 운치가 계단에서 간판으로 이어지고 세월의 힘이 느껴지는 편안함과 정겨움이 묻어있다.

찻집 문을 열자 진한 약차의 향기가 난다. 이른 아침이라 넓은 공간에 원하는 자리 어느 곳이나 앉을 수 있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실내 분위기다. 도심 속 현대식 건물에 실내는 전통한옥의 멋으로 꾸며져 고즈넉하고 아늑하다. 열린 주방에서 대추차 감잎차 들깨차 다양한 전통음료가 손님맞이 준비를 끝내고 대기 중이다.

차와 함께 차려진 구절판 다식. 도라지정, 코코넛 가루를 묻힌 무화과, 호두를 넣은 곶감, 양갱으로 구성돼 있다.
차와 함께 차려진 구절판 다식. 도라지정, 코코넛 가루를 묻힌 무화과, 호두를 넣은 곶감, 양갱으로 구성돼 있다.
대추차
대추차

우리는 대추차를 주문한다. 도라지정과와 코코넛 가루를 묻힌 무화과와 호두를 넣은 곶감, 양갱이 다식으로 차려졌다. 눈으로 만나는 화려하고 정갈한 고급스러운 다식에 먼저 탄복하였다. 대추차는 풍부한 잣과 대추가 웅숭깊은 맛을 자아내는 약차다. 대추 수프에 가까울 만큼의 한 끼의 식사와 같은 포만감이다. 단맛이 덜하고 중간중간 잣이 씹히는 식감은 고소하고 건강한 맛이다. 갑작스레 만들어내는 차가 아닌 오랜 시간 달여 만든 정성이 느껴진다.

겨울철에 잘 어울리는 향긋한 맛을 가진 진피보이차.
겨울철에 잘 어울리는 향긋한 맛을 가진 진피보이차.

시음 공간 건너편 다실로 자리를 옮겼다. 다실은 다양한 다기와 잔이 전시되고 판매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다실에서 진피보이차를 마신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 잘 어울리는 향긋하고 맛있는 보이차다. 숙성기간이 길수록 깊은 맛을 내는 보이차는 아침저녁으로 마시면 몸도 따뜻해져 감기 예방에 도움이 된다. 차담이 길어지고 멋스런 재미를 위해 가리개용으로 두 쪽 병풍을 세우고 향로에 쑥향을 피운다. 차담을 나눌 때 눈으로 즐기는 재미라고 한다. 연기가 춤추는 무희 같다. 연기가 아래로 흐르다가 춤추듯 승천한다. 멋스럽다 못해 호사스럽고 그러나 품격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차를 바꿔 죽향미인 발효차를 마신다. 죽향미인은 하동에서 직접 덖음 가공을 해온다고 한다. 죽향의 이름을 걸고 발효시킨 차이니 몸에 좋은 차라며 계속 우려 마시길 권하였다. 차를 내어주시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김종규님이다.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의 조화 속에 삶의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것이 문화다. 죽향차문화원에는 명절용으로 구절판 다식체험학습이 있다. 손수 만든 다식으로 설 명절에 손님맞이하면 이보다 더한 아름다움과 귀품이 있을까. 귤 정과, 검은깨, 곶감, 무화과, 대추 등으로 아름다움의 깊이를 더한 다식을 만든다. 멋스러움의 극치다. 전통다식의 화려한 색상과 정성이 특별하다.

죽향은 우리나라 고유의 음차 풍속을 계승해가는 차와 사람과 예술이 만나는 공간, 진주에서 차의 정신을 지켜가는 가장 오래된 찻집이라 소개한다. 차에 진심인 사람이 대접받는 기분으로 찾는 죽향이다.

체육교사로 정년퇴임한 박우담 시인은 시를 고시공부하듯이 도서관에서 견뎌냈다. 등단시인 2만명 시대에 늘 고민하고 의식 있는 시를 쓰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낯설고 뜨거운 언어로 신선하게 반전을 요하는 좋은 문우다. 시담을 나누고 차담을 나눈 정월이다. 올 정월이 참 따뜻하다.

옥영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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