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칼럼] 진정한 가치의 나눔- 배소희(수필가·시인)

기사입력 : 2025-02-06 19:40:56

우리의 경험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저 잊힌다. 하지만 기록된 것은 오랜 시간 간직하게 된다. 기록은 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림이나 음악 등 생각을 명시화하는 것은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 미술관에서 ㅂ 화백의 유작전을 보았다. ‘선의 흔적’이라는 전시회 그림도 좋았지만 작가가 남긴 작업 노트의 전시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원본 작업 노트와 낡은 수첩, 물감과 붓 등 그의 유품들이 삶의 깊은 흔적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화가의 흔적을 다시 보고 싶어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소개하며 미술관을 여러 번 찾아갔다. 천천히 작업 노트와 낡은 수첩 등을 읽어 내려가면서 그의 고뇌와 깊은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 전시장에 걸린 그림이나 설치 미술을 보면 더 잘 이해되었다.

작업 노트에는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고 그의 미술에 대한 생각을 구축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드로잉 한 흔적들과 생각과 아이디어가 가득 적힌 작업 노트를 보면서, 그가 남긴 성취를 더욱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설치 작품은 그가 남긴 작업 노트의 기록과 사진을 보고 관계자가 최대한 원형을 살려 전시한 것이라 했다. 그림 속에 표현 된 “나무, 구름, 나비는 서사적 내용을 암시하는 은유물”이라고 적힌 작업 노트에서 그의 깊은 사유를 생각하며 발걸음이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화가이자 시인의 감성을 지닌 성실한 기록자였다.

그림이든 글이든 음악이든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것은 자신의 삶이자 흔적이었다. 자칫 사라지기 쉬운 당시의 기억과 감정을 기록하는 것은 흔적이 되며 우리 모두가 나눌 수 있는 지혜가 되는 것 같다.

지속적으로 축적해 온 작업 노트는 그의 내면 속에 있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타인과 나누는 작업이었다. 그의 작업 노트를 통해 우리는 마음의 흔적을 헤아릴 수 있었으며 그의 예술세계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빈센트 반 고흐의 예술이 지금까지 빛나고 있는 것은 고흐의 동생 테오의 아내 요한나 덕분이라고 한다. 고흐가 죽은 뒤 6개월 후에 남편 테오마저 죽었다. 요한나는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700여 통의 편지를 읽고 정리하여 ‘반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녀는 형제가 주고받은 편지를 네덜란드어로 출판했고, 회고전을 열면서 고흐의 그림을 알렸다. 그녀는 빈센트와 남편을 기리는 일을 하면서 빠짐없이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기록으로 남겼기에 이름을 세상에 남길 수 있고 역사적 사료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두 화가를 통해서 기록의 중요성을 알았다. 물론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작업 노트 기록은 많이 알려졌지만, 이번에 내 마음에 다가온 두 화가에 관한 마음의 흔적은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그들이 이루어 낸 성취에는 기록이 있었다. 과거의 기억이 기록이 되고 흔적으로 남아서 현재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진정한 가치의 나눔이 되는 것이 아닐까.

배소희(수필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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