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칼럼] 뇌 썩음(brain rot): 스마트폰 되기- 이선애(수필가)

“보호자 전화번호를 적어주세요.”
서류를 보니 보호자 연락처가 비어 있습니다. 몇 개의 숫자를 적고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해 보았습니다. 헉~~~ 하나가 틀렸습니다.
2011년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실시한 기억 관련 실험에서 어려운 질문을 받자, 참가자 대부분이 본능적으로 인터넷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구글로 대표되는 인터넷이나 컴퓨터에 나의 기억이 일부 저장된다고 생각하면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구글 효과’로 알려졌습니다. 과학자들은 ‘분산 기억(transactive memory)’으로 설명합니다. 다른 사람과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부담을 더는 개념입니다. 사람들은 가족의 연락처를 스마트폰과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며 뇌의 사고 기능을 점점 퇴화시킵니다. 스마트 기기를 믿고 의지했던 제 뇌는 어떤 상태일까요?
지난해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을 선정했습니다.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SNS, 유튜브 등에 몰입하다가 기억력과 집중력이 부족해지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열면 세계 여러 곳에서 제작된 멋진 영상이 쏟아집니다. 몇 개를 클릭하고 나니 서너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비슷한 추천 영상이 소개됩니다.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를 알아주고 가르쳐주는 멋진 스마트폰입니다.
스마트폰 속의 수많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인간이 생각할 시간을 줄이고 있습니다. 뇌에 담긴 정보는 그 사람의 행동과 사고를 결정짓는 열쇠입니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상상해 본 일 있나요?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보여줍니다. 이 세계의 주민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시험관에서 삶의 형태가 결정됩니다. 생각이 사라진 존재입니다. 이와 반대되는 인물은 야만인 ‘존’입니다. 그는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성장하여 미개하고 더러운 생활을 하였지만, 금서인 ‘셰익스피어’를 읽었습니다. 그는 세계를 통제하는 지배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합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문학도 원해요. 진정한 위험에 처해 보는 것도 원하지요. 내가 원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선도 원하지만, 죄도 원하지요.” 이 말에 세계의 지배자가 대답합니다.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군. 늙고 추하고 생식불능이 되는 권리는 말할 필요도 없고, 성병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없거나 이들이 들끓을 권리, 매일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를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고문을 당할 권리도 원한다는 말인가?” “예, 난 그런 권리를 원해요.” 헉슬리는 이 소설을 통해 과학과 기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부정적인 세계를 보여주며 비판합니다. 또 가장 인간다울 방안도 제시합니다. ‘셰익스피어’를 읽은 인간 존은 기계문명이 만든 세상에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청소년과 성인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하루를 시작하고, 대화를 나누고, 잠도 같이 잡니다. ‘뇌를 썩히기’ 더없이 좋은 계절입니다. 그늘진 화단을 보니 지난 계절에 무성했던 풀들이 말라 있습니다. 그 아래 흙 속에는 벌레들이 숨을 죽이며 동면에서 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가물가물 쏟아지는 잠 속에서 죽은 듯 보이나 죽지 않은 상태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견딥니다. 소동파(蘇東坡)는 “책이 많다는 것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만물이 거기 다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봄도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이선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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