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칼럼] 텃밭 농사의 즐거움- 손남숙(시인)

기사입력 : 2025-02-20 19:28:34

호미는 텃밭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연장이다. 풀을 매고 씨앗과 모종을 심고 뿌리를 캐는 데는 호미가 맞춤하다. 옴폭옴폭 흙을 파면 기분도 좋아진다. 삐뚜름한 이랑과 고랑이 반듯해지는 과정을 보노라면 크나큰 심정적 만족을 준다. 봄부터 겨울까지 배추, 무, 시금치, 갓, 상추, 케일, 당근, 루꼴라 등 다양한 채소를 심어본다. 채소가 쑥쑥 자라면 때맞추어 풀도 잘 자란다. 이때 냉큼 손에 들리는 것이 호미다.

호미가 무시로 사용하는 연장이라면 삽과 삽괭이, 곡괭이, 쇠스랑은 흙을 뒤집고 거름 만들 때 꼭 필요하다. 또 바랭이같이 뿌리가 사납고 질긴 풀은 호미로는 감당할 수가 없다. 풀은 살아남으려는 전략이 뛰어나 부추 옆에 사는 풀은 영락없이 부추 꼴을 하고, 쪽파 옆에 사는 풀은 쪽파처럼 길쭉하게 자란다. 많은 씨를 맺고 퍼뜨리기에 뽑아도 돌아서면 비죽하게 올라오는 게 풀이다. 땡볕 아래 김매기를 해본 사람이라면 밭고랑에 나부죽이 엎디어있는 바랭이만 보면 어휴, 고개부터 흔들고 말 것이다.

사람은 풀을 지긋지긋해하지만 텃밭을 제 집으로 삼은 동물은 작물과 잡초를 가리지 않는다. 꽃이 피면 벌과 나비가 날아들고 흙을 파면 지렁이, 달팽이가 나온다. 후투티는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텃밭을 찾아온다. 고양이도 거름더미를 기웃거리는 단골손님이다. 박새와 딱새는 해마다 텃밭 주변에 둥지를 튼다. 새들이 나의 텃밭에서 새끼에게 줄 먹이를 물고 가는 걸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텃밭을 일구는 사이 나는 헛된 욕심과 쓸데없는 말을 줄이게 되었다. 열심히 호미질을 하다 보면 날선 감정은 수굿해지고 마음 한 자락이 시원하게 열리는 것을 느낀다. 풀을 뽑고 돌을 골라내는 사이 딱딱하게 굳은 것들도 뭉근하게 풀어지는 듯하다.

처마 밑엔 여러 개의 물통을 갖다놓고 빗물을 받는다. 모아 놓은 빗물은 가물 때 요긴하게 사용한다. 물통 속에는 개구리가 살고 길목마다 거미줄이 빽빽하지만 걷거나 치우지 않는다. 고춧대에 진딧물이 오르고 달팽이가 배춧잎을 뜯어먹어도 내버려둔다. 약을 치지 않아선지 온갖 물것들이 왱왱대고 더러 뱀이 출몰해 놀라기도 하지만 생태먹이사슬이 잘 작동하는 것 같아서 고맙기만 하다. 흙과 바람, 물과 햇빛이 서로 맞닿아 작물이 성장하고 나는 그것을 먹으며 살아간다. 말하자면 텃밭의 수확물은 내 노동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 각종 연장들과 곤충, 조류, 양서파충류, 환형동물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텃밭은 매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음악, 매번 읽어도 새로운 문장 같고, 하루가 다르게 변주되는 풍경이며 고되게도 하고 즐겁게도 하는 인생 스승과 같다.

곧 경칩이다. 호미 들고 밭에 갈 준비를 한다. 겨우내 엎드려있던 쪽파, 상추, 시금치에 물기가 돌 즈음이면 땅속 개구리도 뛰어오를 것이다. 작년에 갈무리해둔 씨앗을 꺼내고 심을 날짜를 달력에 표시한다. 나는 흙 만지는 일이 좋다. 아주 작고 작은 종자가 어느 날 싹을 내밀고, 꽃을 피워 뿌리와 열매가 되는 과정은 언제 보아도 놀랍고 신기하다. 올여름 날씨는 괜찮을까? 폭염에 푸성귀가 녹지는 않을까? 기후위기시대에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지만 때마다 심고 돌봐야 할 생명이 있다는 것도 복이다. 땅을 일구어 수확하는 기쁨을 이렇게도 열심히 자랑하는 나는 텃밭농사꾼이다.

손남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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