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건축물 기행] 도시에 활기 ‘공원 건축’
역사가 있는 역사… 공감을 잇는 공간
옛 진주역 부지에 ‘철도문화공원’
철길 산책로·역사 전시공간 활용
100년 된 차량정비고·전차대 등
역사·문화 추억 공간으로 꾸며
촉석문 앞 ‘진주대첩 역사공원’
보상·설계·시공 등 17년 만에 완공
계단식 건축물 ‘진주성 호국마루’
휴식·전시공간, 토성 복원 등 눈길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낡은 건물을 허물어 새 건축물을 짓거나 도시 외곽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옛날 동네(구도시)와 새 동네(신도시)의 구분이 생겼다. 새 동네에 사람이 몰리고 옛 동네는 인구가 줄어 활기를 잃는 이른바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다. 천년 넘게 경남서부지역의 중심도시 역할을 해온 진주도 예외가 아니다. 구도심 지역에 공원을 조성하여 도시 활성화를 시도하는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옛 진주역을 새 단장해 조성한 철도문화공원./유근종 사진가/
◇진주 철도문화공원(설계:소솔건축사사무소)
옛 진주역은 1925년에 진주와 마산 사이를 잇는 경남선의 종착역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1968년 순천과 철길이 연결되면서 경전선이 되었고, 이후 2012년 10월 새로운 진주역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철도교통의 중심 역할을 해온 장소이다. 이후 진주시의 노력으로 2023년 철도문화공원으로 새 단장을 했다.
최초 건설 당시에는 첨단의 교통수단이었지만 백년 가깝게 시간이 지나자 주변의 도시 발전은 상대적으로 더뎌졌다. 역 부지 면적은 2만5000㎡에 가깝다. 900m가 넘는 기다란 모양을 하고 남북으로 걸쳐 있어 동서의 도시 단절을 불러왔다. 서쪽 지역은 상대적으로 더욱 낙후되어 있었다. 공원이 들어서고 전시·문화행사가 열리면서 사람들이 제법 왕래하기 시작하니 서쪽 동네에 작은 커피점과 가게들이 들어서 지금은 제법 활기가 도는 분위기다.
철도문화공원은 기존 철도시설을 정비하여 적극 활용하고 있다. 철길이었던 선형을 산책로로 활용하고 일부 철로는 남겨두어 여기가 철길이었음을 땅이 기억할 수 있게 했다. 옛 역사 건물은 6·25전쟁 때 소실되었던 것을 1956년 지금의 위치에 다시 지은 건축물이다. ‘일호광장 진주역’이라는 이름으로 전시공간으로 쓰고 있다. 입구 홀은 옛 대합실의 느낌을 재현하고 있으며 기차와 관련된 역사와 문화를 추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X세대 이상이라면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릴 만한 장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차량정비고 내부
차량정비고는 1925년 건축되어 100년 가까운 세월을 이기며 서 있다. 너비 약 11.7m, 길이 약 40m에 이르며 가운데 기둥이 없는 큰 공간을 가지고 있다. 지붕은 넓은 공간을 버텨 낼 수 있게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목조트러스로 만들어졌다. 지은 지 백년에 이른다고 하니 목재 하나하나, 벽돌 하나하나에 시간의 힘이 느껴진다. 외벽 벽돌에 난 군데군데 상처들은 6·25전쟁 때 총탄자국이라고 한다.
안과 밖은 모두 붉은 벽돌로 마감되어 있다. 특히 서측 외부공간 억새밭과의 조화가 아름답다. 지붕마감은 이번 리모델링 과정에서 새로운 금속지붕으로 덮었다. 내부 바닥에는 기차하부를 점검하기 위해 바닥 아래로 꺼진 트렌치(도랑)가 있는데 강화유리로 투명하게 덮어 옛날의 쓰임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1년 남짓 동안 진주건축문화제,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 외에도 다양한 문화행사를 치르는 등 공원 내 핵심 전시실 역할을 하고 있다. 건축과 공간이 건강하니 어떠한 프로그램의 전시를 해도 잘 어울린다.
차량정비고는 1938년에 준공한 옛 배영초등학교 본관동과 함께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된 우리의 소중한 근대 건축물이다. 옛 배영초등학교 본관동도 현재 ‘진주학생문화나눔터 다움’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전차대는 기차의 방향을 바꾸는 장치로, 원형의 모양이며 지면 아래로 1.5m 정도 꺼져 있다. 오늘날의 기차는 양방향으로 달릴 수 있지만 예전 기차는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1968년까지는 진주가 종점이었기에 방향전환장치가 필수였을 것이다. 지금은 연결다리로 전차대를 건널 수 있게 했으며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완전한 원형공간을 느껴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너른 터는 한 세기 가까이 담장으로 둘러쳐져 도시와 분리되어 있었다. 공원 남쪽으로 얕은 습지가 있는데 이곳은 맹꽁이 생태공원이다. 맹꽁이는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오히려 안전한 서식지로 자리 잡은 듯하다. 이제 사람의 발길이 쉽게 닿는 공간으로 변하였지만 부디 함께 잘 어울려 살았으면 좋겠다.

맹꽁이생태공원
공원을 조성하면서 작은 카페와 화장실을 증축했다. 카페 이름은 ‘메텔’이다. 기차와 관련된 추억의 이름이라 참 재미있는 작명이다. 카페 메텔은 탄소중립을 지향하는 진주의 목조건축 방향성을 잘 읽을 수 있는 건축물이다. 공학용 목재를 기둥과 보로 사용한 가구식 구조(가늘고 긴 재료를 조립하여 만든 구조)다. 가벼운 목구조의 지붕과 투명한 공간처리가 가을 배경의 나무들과의 조화가 멋스럽다. 이 같은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올해 열린 ‘2024 대한민국 목조건축 대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머지않아 항공우주과학관과 진주박물관이 차량정비고 북측 부지에 신축할 예정이라고 하니 앞으로 공원의 변화할 모습이 기대된다.
◇진주대첩 역사공원(설계:이로재건축사사무소)
진주대첩 역사공원의 시작은 2007년부터다.
부지는 진주성 촉석문 앞의 땅으로 이름하여 ‘진주장어골목’으로 유명했던 장어구이집이 밀집한 지역이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식당들이 밀집해 있었다. 이 건물과 토지들을 보상하고 매장유산을 조사하고 국가유산 현상변경, 설계·시공하는데 17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땅으로서 매장유산 조사 때 통일신라시대 배수로, 고려시대 토성, 조선시대 석성 등이 나왔다고 한다. 이 매장유산의 처리와 전시 계획을 세우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주성은 어떤 곳인가. 우리나라 3대 누각 중에 하나인 촉석루가 있는 진주성은 임진왜란 두 번의 큰 전투가 있었고 한 번은 승리의 영광을, 또 한 번은 패배의 커다란 아픔을 안겨준 역사적인 장소다. 그 앞에 만드는 공원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단순한 공원을 넘어 역사적인 뜻을 되새기고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장소다.

진주대첩 역사공원
그렇게 만들어진 건축물이 진주성 호국마루다. 승효상 건축사는 건축물에 역사적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였다고 한다. 옛 지도들을 분석하여 시대별 길들을 찾아내고 연결해주었다. 그리고 땅 속에 묻혀 있던 진주정신의 역사적 진실을 땅 위로 드러내기 위해 ‘일어서는 땅’이라는 개념으로 계단식 건축물인 ‘진주성 호국마루’를 설계하였다고 한다. 호국마루 위에서는 진주성 내부와 남강, 구도심이 조망가능하고 그 아래 공간은 전시실, 휴게공간, 화장실, 매표소 등 공원사용에 필요한 편의시설을 설치했다. 지하에는 149대 규모의 주차장도 갖추었다. 야외 행사, 공연, 휴식 등이 가능한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 가능하다.

호국마루.
진주성 쪽으로는 15개의 기둥으로 열주를 만들고 보행공간을 형성하여 진주성에 들어가기 전 전이공간 역할을 한다. 아무것도 없던 장소에 새것의 열주가 나타나 옛것의 진주성과 시각적 충돌이 일어난다. 신축 건물의 숙명이다. 하지만 콘크리트에도 시간의 때가 묻고 나무들이 조금 더 자라서 그늘에 이끼가 끼면 편안한 풍경이 되리라 생각한다. 전시실에 들어가니 조선시대 진주성 일대가 모형으로 만들어져 전시되고 있다. 오늘날의 성곽과 도로, 강 모양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은 사라진 ‘대사지’(진주성의 해자)의 위치와 모양도 흥미롭다.
외부 공원에는 그 옛날 배수로와 토성, 석성을 복원하거나 재현해 역사공원의 모습을 갖췄다. 보행로와 잔디밭 주변에 백합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큰 나무들을 심어 성 안쪽의 수목 크기와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보인다. 몇 년 시간이 지나 더 크게 자라면 더욱 잘 어울릴 듯싶다.
진주대첩 역사공원은 시민의 휴식공간, 더불어 진주성과 촉석루, 진주박물관의 초입으로서의 역할이 막중하다. ‘차 없는 거리’의 구도심과 중앙시장, 논개시장과 연계할 수 있는 플랫폼 시설로서의 역할도 기대된다.
도시공원의 목적은 단순히 휴식을 위한 녹지를 조성하는 것을 넘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시설과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소개한 두 도시공원은 이와 같은 점에서 모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도원A&C건축사사무소 유재만 건축사

도원A&C건축사사무소 유재만 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