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건축물 기행] 시대를 잇는 경남 근대건축 산책

겨울 길목에서 만난 아픈 역사의 흔적

기사입력 : 2024-12-12 08:08:47

근대문화도시 진해에 있는 일제 잔재 ‘적산가옥’
‘철거’·‘보존’ 의견 갈려 사회적 합의 도출 과제

현재는 ‘활용·발전’으로 패러다임 전환
지역 아이덴티티 살리는 도시발전계획 있어야


오늘 이야기할 근대건축은 적산가옥이다. 시간적 범위로는 19세기 개항기부터 6·25전쟁까지이다. 물론 적산가옥은 6·25전쟁 이후에도 우리의 힘으로 보수되고 생활해왔기에 시간적 범위로 보면 현대까지로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건축자산의 보존과 활용 문제는 건축·역사학계의 오랜 과제이고 논의 대상이 되어 왔고, 보존 가치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근대건축의 경우 일제강점기 유산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아직 이뤄져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치욕적 역사이니 철거해야 한다’와 ‘그것 또한 우리의 역사이고 그 역사 또한 현대로 끌어들여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창원시 진해구 근대건축물 ‘보태가’.
창원시 진해구 근대건축물 ‘보태가’.

1995년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경복궁 복원 계획이 나올 시기와 달리 현재의 패러다임은 보존과 활용으로 많이 전환된 것 같다. 국립창원대학교 건축학부 서유석 교수의 건축자산 보존·관리 및 활용방안을 보면 건축자산의 개념 및 시간적 범위 설정, 법적기준, 가치, 선정 기준, 활용 및 사례 등이 연구돼 있으며, 보존 및 활용의 가치적 기준으로 역사적, 경관적, 예술적, 사회문화적 가치로 분류하여 가치 기준을 제시하였고, 점, 선, 면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 중심의 개발 방향을 제시했다.

가치 기준 분류의 설정을 토대로 해 근대건축에 대한 개발 주체, 자금 투입 및 사용 방식의 가치 기준 변화는 필요하다.

기존의 건축자산, 특히 문화재는 복원, 보존 위주의 개념을 갖고 있었는데, 건축공간이란 활용되지 않으면 죽은 공간인 것이다.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자산은 원형보존하고, 근대건축 등 그외는 부분적 보존의 기준을 설정하고 활용 위주의 관점으로 개념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2013년 창원시 근대건조물 4호로 지정된 ‘흑백다방’ ./배종열 건축사/
2013년 창원시 근대건조물 4호로 지정된 ‘흑백다방’ ./배종열 건축사/

그러나 현재 근대문화재 관련 방향은 공공의 사용이 우선된 단편적 활용방안이 주라고 보인다.

주로 지역 활성화의 중심지, 교육, 전시장, 문화공간, 볼거리 등 관광자원으로의 활용이 우선되어 있다. 이 방식의 활용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활용주체 및 자금투입 방식, 용도의 다양화가 수용되지 않는 단편적 활용은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시간적, 재정적 한계를 분명히 가질 것이다.

지역의 아이덴티티를 살리는 도시발전계획이 있어야 될 것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외부인이 많이 찾지 않아도 자생이 가능한 근대건축자산의 활용을 통해 그냥 우리가 잘 활용하고 있고, 그 모습이 좋아서 관광객이 찾아오면 더 좋은 것 아닐까 한다.

화천동 근대상가주택.
화천동 근대상가주택.

송학동 근대상가주택.
송학동 근대상가주택.
황해당인판사.
황해당인판사.

이 자산은 지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사람들의 공간적 지주이며,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다. 적극적으로 활용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건축자산을 위해서는 정책적, 법률적 변화가 우선 필요하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법률적인 변화인데, 용도 변경, 증축 등 건축 행위를 위한 건축선, 피난시설, 내화구조, 각 설비 규정 등과 소방 등에 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하며, 대신 최소한의 인정될 수 있는 대비 방안이 마련되어야 잘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경제의 발달과 문화적 수준의 상승에 따라 문화재를 느끼는 사회적 가치관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많은 예산이 수반되는 역사문화관광지로의 근대건축자산 개발보다는 지역문화가 함유된 실제 주민의 생활이 가능한 자생적으로 살아있는 공간으로의 활용이 역사적 의식이 없는 개발자본에서 우리의 건축자산이 보존되는 방법일 것이다.

진해구민의 관심과 노력, 민관의 협력으로 보존되고 잘 활용되고 있는 창원시 진해구의 근대역사문화공간은 19세기 중반 서구 도시경관의 개념이 도입된 군사도시로서 방사상 거리, 여좌천, 하수관거 등 도시의 뼈대를 이루는 기반시설이 당시 모습대로 남아 있어 면적 공간단위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북원로터리에서 중원로터리까지의 근대문화역사길은 관람시간 포함해 도보로 2시간 정도의 아름다운 가로이고, 예쁜 카페와 시간이 만든 맛집, 중앙시장이 있는 정감 있는 장소다.

놀라운 것은 이 글을 쓰기 위해 사전답사를 해보니 건물들이 대부분 사용되고 있고,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살아있는 공간인 것이다. 진해의 근대건축은 시민들의 노력으로 미래의 시간과 융합해 유니크한 공간으로 추후 도시의 아이덴티티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보태가
보민의원·태화여관 자리… 20여 년간 공가 방치
도시재생사업 거쳐 청년창업·업무공간 활용

흑백다방
추상화가 유택렬과 지역 예술가 교유·활동 무대
건물 보수·리모델링해 시민문화공간으로 변신

소개할 주요 건물은 보태가와 흑백다방이다.

창원시 진해구 근대건축물 ‘보태가’.
창원시 진해구 근대건축물 ‘보태가’.

보태가는 경남대학교 박진석 교수와 구경희 건축사가 도시재생 앵커시설로 낯선 근대건축물로 재탄생시킨 건축물로 2019년 봄에 시민참여설계가 시작되었다. 낙후된 진해도심 재생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낡은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해 청년창업자와 지역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거점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경남대학교 건축학부의 교수와 학생들은 지역주민과 함께 실측부터 공간기획까지 5개월 동안 땀을 흘렸고, 2020년 11월에 준공했다.

진해 충무동 최초의 외과병원인 보민의원과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태화여관이 있었던 자리에 서 있는 건축물의 장소성을 근거로 시민공모를 거쳐 보태가(寶太家)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1940년대 준공되었던 보태가는 진해 구도심이 쇠퇴하면서 1990년에 병원이 문을 닫았고, 이후 실내골프장으로 활용되었지만 2000년대 초반에 폐업하면서 이후 20여년 동안 공가로 방치돼 있었다.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보태가는 청년창업공간, 제과제빵 스튜디오, 전시공간, 업무공간을 품고 공공건축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창원시 진해구 근대건축물 ‘보태가’ 내부.
창원시 진해구 근대건축물 ‘보태가’ 내부.

보태가의 리노베이션은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진행됐다.

간판건축의 외관의 원형을 복원하고, 혼용된 건축구법을 발견하고 기록한다. 보태가의 백색 스터코 벽체와 영국식 이중오르내리기 창호 (double hung sash window), 서구식 현관입구(porch) 등 서구식 건축양식 언어들의 재료와 구법을 발견하고 기록했다. 일본 주요 도시들의 간판건축물은 다양한 재료와 창호를 도입해 화려함이 강조된 상업건축이라면 보태가는 모더니즘과 신고전주의 양식의 언어를 사용하며 단순한 백색 입면과 서구식 창호를 가지며 다소 절제된 입면을 가진 것이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적 이벤트 운영도 가능한 공간 조성이다. 보태가는 1층의 조적구조, 2층의 목구조로 조성된 ‘목골조적구조’다. 1층의 공간은 제과제빵 스튜디오와 다목적 강의실 2개로 운영된다. 2층 공간의 경우 부식된 다다미방 바닥과 벽체를 철거하고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입주할 수 있는 개방형 업무공간으로 설계했다. 현재 보태가에는 영상, 출판 등 창작형 청년 스타트업 3개가 입주해 미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3년 창원시 근대건조물 4호로 지정된 ‘흑백다방’ ./배종열 건축사/
2013년 창원시 근대건조물 4호로 지정된 ‘흑백다방’ ./배종열 건축사/

흑백다방은 광복 후 진해 문화예술인들의 문화활동 근거지로서 역할을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현재도 그 연장선상에서 지역예술인들의 활동무대로서 장소성의 의미를 가지며, 원래 구조와 공간, 외관을 유지하고 있다.

경남의 대표적인 추상미술가 유택렬이 운영한 ‘흑백다방’과 그곳을 중심으로 교유했던 장소이고, 전신인 칼멘다방 시절부터 이들 예술가의 활동 무대이자 사랑방이었으며, 만남의 장소이자 문화공간으로서 독보적인 역할을 수행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유택렬이 있었다.

흑백다방은 2013년 창원시에서 ‘근대건조물 보존 및 활용 조례’를 제정하면서 보존과 관리가 필요한 ‘창원시 근대건조물 4호 흑백다방’으로 지정됐다. 2018년에는 대대적인 건물 보수와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2019년 1층은 카페와 전시 공간, 2층은 유택렬미술관, 3층은 유택렬 화백의 작업실을 복원해 수장고로 모습을 바꾸었다.

유택렬과 동료 예술가들의 다채로운 활동으로 그 시대의 정신과 예술가적 태도를 오늘의 시각으로 다시 들여다볼 수 있으며, 우리 삶과 일상에 더욱 가까웠던 그 시절, 그 예술의 모든 순간을 느낄 수 있는 시민문화공간이다.

시 건축사사무소 배종열 건축사
시 건축사사무소 배종열 건축사

시 건축사사무소 배종열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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