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건축물 기행] 남해화전어린이도서관
동심을 읽다
남해 계단식 다랑이 논에서 착안
아이들 꿈 펼치는 공간으로 설계
서가·놀이데크·열람실 등 갖춰
책 읽는 시대 넘어 지식 공유·소통
도서관이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도서를 모아둔 건물이며, 자료의 집적과 도서의 보관 장소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도서관의 주요 기능은 자료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변화하였다. 최근 지식 정보화시대에 도서관의 공공적 성격은 사회적 요구의 다양화에 따라 그 기능과 역할도 점차 다양하게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서관의 여러 분류 중 작은도서관은 생활밀착형 지역도서관으로 지역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 핵심이며, 접근의 용이성을 갖춰 지역사회에 정보를 교류하고 생성하는 소규모 문화공간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또한 불확정적이며 급변하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필요로 하는 공간이 변화할 수도 있기 때문에 공간 구성에 상당한 유용성이 필요하다.

남해화전어린이도서관 2층에 있는 어린이자료공간. 아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으며 소통하고 있다./노경/
◇설계 의도= 어린이도서관이 위치한 대지는 남해군청, 남해화전도서관, 남해초등학교 등 공공시설들이 인접해 있어 원도심의 골목길을 대지 내로 연계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높낮이가 다른 대상지를 계단식으로 남해의 다랑이논을 개념화한 공간을 만들어 뛰어다니는 도서관을 만들면 좋겠다 한 것이 출발점이다. 책을 통해서만 지식을 얻던 시대는 지나갔으며 도서관이 책을 읽는 공간에 머물던 시대 또한 지나갔다. 이제 도서관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지식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편안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좌석이 늘어져 있고, 시끌벅적하면서도 책은 읽기는 좋은, 그런 명랑한 도서관이 되었으면 했다.

남해화전어린이도서관 전경.
남해화전어린이도서관의 또 다른 특징은 로비가 작고 초라하다. 대신 열람실은 1층과 2층을 하나로 연결하여 층고가 높고 빛이 들어오는 메인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프로그램들이 개개의 실의 개념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에서 높낮이를 달리하며, 영역성을 갖고 유기적으로 오르락내리락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대상지의 기존에 존재했던 다양한 레벨 덕분이다.
내부공간의 구성뿐만 아니라 1층의 진입마당에서 수직적으로 연계된 독서마당과 독서테라스와의 관계를 통해서 내부의 독서 행위가 외부공간으로, 3층의 다목적공간과 이어지며 다양한 문화 이벤트가 일어나기를 바랐다.
시끌벅적 뛰어다니는 도서관 개념으로 지어진 남해화전어린이도서관은 1년여의 시공 과정을 거쳐 종이가 아닌 진짜 건축물의 모습으로 서게 되었다. 언제든 남해화전어린이도서관을 가보면, 열람실 구석구석 편안한 모습으로 엄마아빠와 늘어져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우리를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겠지만, 아이들이 기분 좋게 책을 읽으며 오르락내리락 뛰어다니는 광경보다 건축가에게 더 큰 보상은 없을 것이다.

1층 어린이자료공간

1층 속닥속닥공간
◇설계·시공 과정= 공공건축물은 설계공모를 통해 선정된 후 공공건축 자문위원회, 주민공청회, 민원인 등 수많은 협의 과정 후 최종적으로 설계에 반영된 설계안으로 적산 내역을 산정한다. 건물에 사용되는 철근, 타일 등 재료 물량을 산출한 내역서를 토대로 공사비를 책정한 후 발주처와 협의를 시작한다. 결론적으로 공모 당시 예정공사비로 최종 내역과 비교한다. 남해화전어린이도서관 경우 대지의 이형적인 모양과 3층의 분절된 볼륨을 가진 공모안이 민원인의 사생활 침해 문제로 수십 번의 협의 끝에 단순한 볼륨의 건물로 변경되었다. 주위의 집들로 향해 있던 창들도 없애달라는 요구사항도 결국 따라야 했다.
물론 3층의 볼륨의 변화는 분절된 건물에 따른 골조량과 재료비가 높게 산정되는 증액의 사유가 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아무리 처음부터 설계를 단순하게 푼다 하더라도 요구에 맞춰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을 전부 하다 보면 공사비는 쉽게 예산을 초과한다. 이때부터 비용을 줄이기 위한 건축가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하다 못해 사소한 재료 하나하나 더 싼 제품은 없는지 찾기 위해 수백 통의 전화와 견적서를 주고받는다.
보통은 구조 사이즈를 줄일 수 없으니 마감을 걷어낸다. 대개의 경우 공공사업의 예산은 유사한 용도의 일반적인 사업을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매년 강화되는 설계 기준과 사업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건축가에게 주어지는 예산은 항상 빠듯하다. 현실은 그런데 지자체는 지역민들의 민원도 들어주어야 하고 성과도 만들어야 하니 최소의 공사비와 최소의 설계비로 최단기간 안에 끝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공공건축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졌다. 필자는 여러 관점에서 해외와 국내 공공건축 수준 차이를 몸소 느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좋은 공공건축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발주처였다. 남해에서 공공건축 시스템이 명예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컸던 담당자였고, 그러나 가격입찰이라는 방식으로 시공사는 선정되었고 실적의 평판이나 품질과는 상관없으므로 시공의 순서, 하도급 업체에 따라 만듦새도 천차만별임에,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설계안 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설계자의 사명감과 담당자의 의지 하나로 헤쳐 나가기에는 여러모로 부딪혀야 할 것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메인공간인 어린이자료열람실의 계단식 서가는 현장에서 생긴 변수로 단의 높이가 정확히 나오질 않아 복도공간의 유효폭의 확보가 어려웠고 결국 복도에 경사를 만들어 완만하고 자연스러운 동선이 되도록 협의하여 충분한 복도공간과 본래의 설계 의도를 지키려 부단히 노력했다. 수직 책장과 수평 책장의 질서를 정리하면서 느슨하게 창가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유지했다.

중정.
가장 긴 협의 중의 하나를 들자면 놀이데크 볼륨의 곡면 천장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본래 디테일은 벽돌 천장 마감이었다. 벽돌을 천장에 매달아 마감하기 위해 디테일 도면은 완성된 상황이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시공사는 골조 단계에서부터 도면대로 시공할 의지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시공 중에도 몇 달 동안 가장 많이 나왔던 이야기는 놀이데크 상부다. 결국 시공 순서상 벽돌로 마감이 안 되는 상황으로 흘러갔고 미장으로 끝나고 말았다. 못하겠다는 시공사를 붙잡고 여러 차례 설득했지만 비용적인 측면과 시공사의 능력으로 불가능하다는 회신이다. 결국 옷을 입지 않은 날것만 남아 가장 마음이 아픈 공간이다.
공공건축은 긴 시간에 걸친 과정의 연속체라는 사실을, 설계와 시공의 과정만 아니라 설계가 시작되기 전과 공사가 끝난 후에 더 길게 이어지는 시간 속에 건축가의 미완의 프로젝트이다. 당선작의 이미지는 붙잡고 싶은 신기루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많은 건축가들이 좋은 공공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과몰입의 상태로, 책임감을 갖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건축가 역할의 중요성과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는 개입”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이용 정보= 남해화전어린이도서관은 남해화전도서관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9시~오후 6시 운영하고 있다. 오전 9시 30분~11시 30분, 오후 1시 30분~5시 30분 운영되고 있는 무료 키즈 놀이방 시설이 있다.
아에아건축사사무소(윤성영·김샛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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