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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미술관’ 결국 서울로… 지방은 안중에도 없었다

정부, 후보지 ‘용산·송현동’ 밝혀… 경남 지자체·정치권 강력 반발

“지역엔 시설 확충 등 지원 강화”

기사입력 : 2021-07-07 21:16:21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기증품으로 추진 중인 ‘이건희 미술관’이 결국 서울에 들어선다.

7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이건희 미술관’ 후보지를 서울의 용산과 송현동 2곳으로 예정했다고 발표했다. 미술관 명칭은 ‘(가칭)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약칭 이건희 기증관)’으로 정해졌다.

정부는 지역의 반발을 고려해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지원 강화와 권역별 분포와 수요를 고려한 국립문화시설 확충 및 지역별 특화된 문화 활성화를 위한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문화 향유권의 수도권 집중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유치전을 벌였던 도내 자치단체와 관련단체가 일제히 강력한 유감을 표하고 나섰다.

경남도·진주시·의령군 등 지자체
“지방 외면 좌절… 균형발전 말뿐”

경부울 의원 31명 성명 내고 비판
“유치 결정 원점 재검토하라” 촉구

일부 지역 ‘정부 발표’ 발빠른 대응
국·공립 문화시설 유치 촉구 나서

현대미술관 창원관유치위윈회 회원들이 7일 창원시청 앞에서 이건희 미술관 서울 건립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현대미술관 창원관유치위윈회 회원들이 7일 창원시청 앞에서 이건희 미술관 서울 건립 결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도내 자치단체 강력 반발= 경남도는 입장문을 통해 “이건희 소장품관의 수도권 건립 방침에 유감을 표한다”며 “정부가 유족들의 기증 취지 존중 등을 이유로 서울 건립을 결정하는 것을 지켜보는 지방은 또다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국가의 주요 문화시설은 모두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국립현대미술관(과천, 서울, 덕수궁, 청주 4곳)도 중부권까지만 설치돼 있다”고 강조했다.

조규일 진주시장은 7일 오후 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이번 발표는 지역의 문화균형발전 촉진을 통한 문화분권과 문화 민주주의 구현이라는 시대적 요청과 지방자치단체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단지 현재의 문화환경과 여건만을 고려해 판단한 것”이라며 “심히 유감스럽고 안타깝기 그지없으며, 이런 심정은 지역의 문화균형발전과 기증자의 철학을 소중히 계승하고자 노력하는 모든 분들도 마찬가지다”고 규탄했다.

창원시와 국립현대미술관창원관 유치추진위원회도 유감의 뜻을 표했다.

국립현대미술관창원관 유치추진위원회는 이날 창원시청 정문에서 “문체부의 발표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최우선적 국정과제로 표방해온 현 정부의 자기부정이며, 수도권 집중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는 망국적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오태완 의령군수는 “정부는 애당초 서울을 염두에 두고 답을 정했고, 생색내기로 지방에 유치전을 펼친 것이 아니냐. 이번 발표에 지방은 안중에도 없었고, 배려도 없었다”며 “의령에 이건희 미술관을 무조건 건립해야 한다는 지역이기주의로서 미술관 건립을 주장한 것은 애초부터 아니었지만 정부의 문화분권과 균형발전의 결론은 언제나 서울로 향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도 맹비난= 국민의힘 소속 부산·울산·경남 의원 31명도 이날 성명을 내고 “문체부는 ‘이건희 기증관’의 서울 유치 결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맹비난했다.

의원들은 “‘이건희 컬렉션’을 디딤돌로 ‘제2의 빌바오’로 도약하려던 부산·울산·경남을 비롯한 대한민국 지역 시·도민의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간 폭거”라면서 “당장 국회에서 공론화 과정을 통해 ‘이건희 기증관 유치’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주 전에는 ‘수도권에 두겠다고 발표한 적 없다’던 문체부가 전국 여러 지역이 재정부담을 불사하며 유치 의사를 밝혔는데도, 기어이 국비 1500억원을 서울에 쏟아붓겠다는 것”이라며 “지난 70년 동안 정부가 이루지 못했던 문화균형발전의 절호의 기회를 문체부가 걷어차고 있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일부 지자체는 지역 국립문화시설을 확충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에 발 빠르게 대응해 국·공립 문화시설 유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경남도와 창원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유치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내세웠다.

경남도는 입장문을 통해 “국립현대미술관 남부관 등 국립문화시설 확충 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주길 강력히 요구한다”고 촉구했고, 창원시도 “이건희 컬렉션 착공을 하기 전에 지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을 밝혀야 정부를 믿을 수 있다”고 밝혔다.

진주시도 구 국립진주박물관 부지에 100억원을 투입, 리모델링과 함께 실감콘텐츠 전시를 설치해 특화된 국·공립문화시설을 유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문체부의 지역문화시설 설치방향에 발 빠르게 대응, 2022년 하반기부터 실시되는 순회전시가 지역에 정례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이중섭 작품 기증을 희망했던 통영시는 이건희 미술관이 서울로 결정됨에 따라 이중섭 기획전이나 특별전을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를 위해 시는 이중섭이 기거했던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 건물을 전시가 가능한 공간으로 리모델링할 계획이다.

통영시 관계자는 “이중섭이 살면서 그림을 그렸던 나전칠기기술원 양성소 건물에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며 “가능하다면 장기적으로 전시하는 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상권·조고운·강진태·김명현·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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