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돌아왔다, 귀향시대] (2) 의령에 살어리랏다

고향의 자연서 찾은 ‘나만의 무기’를 ‘새로운 기회’로

기사입력 : 2024-10-14 21:26:08

소멸위기 의령서 찾은 ‘가능성’

고향 지킴이 사명 느껴 5년 전 귀향
어머니와 연잎 농사 지으며 차 개발
젊은 감각으로 판로 개척·사업 확장


청년들과 함께 키워가는 꿈

지난해 청년단체 ‘홍의별곡’ 설립해
유휴자원 활용 주거·일자리 제공
정착 청년 모인 창업지구 조성 목표


청년 정착 도와줄 ‘의령 정책패키지’

이사비 지원 등 7개 분야 11개 사업 외
전국 최초 ‘중고차 구입비 지원사업’
칠곡면 일대 청년마을 만들기 추진도


인구소멸이 화두가 된 시대. 경남은 18개 시·군 중 13개 지역이 소멸위험지역에 들어섰다. 이 안에서도 의령군은 올해 9월 기준 인구가 2만5168명에 불과해 도내에서 사람이 가장 적은 곳이기도 하다. 인구소멸 중심에는 청년들이 있다. 이들은 고향에서 나고 자라며 자연스레 자신이 사는 곳에 ‘먹이’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생존본능처럼 떠날 채비를 한다. 떠난 청년들은 가능성을 엿본 도시에서 적당한 먹이를 찾아, 적당한 둥지를 틀고 살아간다. 이 적당한 삶이 적어도 고향에서의 삶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에 돌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고향을 다시 찾는 청년들이 있다. 명절에 잠깐 부모님 얼굴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닌, 고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장점과 특기를 지역의 특성과 결합할 수 있다면 기회는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하는 귀향청년 안시내(29)씨를 의령군 칠곡면에서 만났다.

안시내 홍의별곡 대표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다도 수업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안시내 홍의별곡 대표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다도 수업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자연 좋아하던 청년, 지역소멸 마주하며 귀향 결심= 의령에서 나고 자란 시내씨가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 건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외교관이 되고 싶었지만, 지역에는 관련 학과가 개설된 대학이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곧장 진주로 유학을 떠난 그는 훗날 나라를 대표해 외교 업무를 수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공부에 몰두했다. 그러나 꿈에 한 걸음 다가간 것도 잠시, 대학에서 경험한 다양한 대외활동을 통해 소멸위기에 처한 소도시를 마주하면서 그의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언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경남의 여러 지역을 취재하고, 마을재생사업이 진행 중인 일본의 작은 마을 연수를 다니면서 느낀 건 소멸위기에 처한 도시가 많다는 거였어요. 이 과정에서 저의 고향인 의령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외교관을 준비하면서도 ‘흙’을 기반으로 한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어렸을 때 자연에서 얻은 위로와 에너지가 정말 좋았거든요.”

그렇게 시내씨는 고향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과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자연이란 소재로 새로운 꿈에 도전하기 위해 5년 전 의령으로 돌아왔다. 마침 어머니가 연잎 농사를 지으며 차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서 일을 시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어머니 아래서 연잎 농사를 배우고 차를 만드는 기술을 익히던 그는 생산과 제조에 멈춰 있는 사업을 확장하고 싶은 생각이 컸다. 한국법제차 명인인 어머니의 실력과 자신의 젊은 감각이 합쳐지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모님 세대 사업 방식은 제품을 만들어서 지역에 유통하는 게 전부였거든요. 어머니가 만든 차가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생각해서 저는 판로를 개척하는 데 주력했어요. 그 결과, 서울과 부산의 백화점에도 저희 제품을 유통할 수 있었어요. 이뿐만 아니라 차 만드는 체험과 계절에 맞는 차를 꾸준히 개발하면서 지역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어요. 덕분에 매출이 10배 넘게 올랐죠.”

안시내 홍의별곡 대표가 청소년들에게 다도를 설명하고 있다.
안시내 홍의별곡 대표가 청소년들에게 다도를 설명하고 있다.

◇치열한 삶 안에서 느끼는 자연의 여유= 6차산업화에 성공한 시내씨는 지역에서 자신과 같은 목표를 가진 청년들과 외지인들에게 농업 관련 체험을 제공하는 청년활동을 이어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행정안전부에서 공모하는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에 대표로 선정되면서 ‘홍의별곡’이라는 사업체를 꾸리게 됐다. 홍의별곡을 ‘붉은 의지를 스스로의 개성으로 노래하는 청년단체’라고 소개하는 시내씨는 홍의별곡이 가진 의미처럼 다양한 개성을 가진 청년들에게 주거와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의령에는 주거나 일자리 측면에서 이용할 수 있는 자원들이 넘쳐나거든요. 저 혼자 이 자원을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뜻이 있는 청년들이 의령의 수많은 유휴 자원을 이용해 꿈을 펼쳤으면 좋겠어요. 홍의별곡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에 정착하고 싶은 청년들이 의령에 많이 모여 이곳에 창업지구를 만드는 겁니다.”

농가경영과 함께 자신이 대표로 있는 사업체까지 운영하는 게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시내씨의 치열한 삶 곳곳에는 자연의 여유가 묻어 있다. 집을 나서서 발에 닿는 모든 곳이 산책길이며, 사람이 향하는 모든 시선의 끝에는 자연경관이 자리하고 있다. 대도시에서 유행하는 문화생활이나 먹거리가 유입될 리 없기에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건 덤이다.

“하루가 너무 바쁘고 끝나지 않아요. 특히 연잎 수확 시기와 홍의별곡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시기가 겹칠 때면 새벽까지 의자에 앉아 있는 경우도 많죠. 그런데 아무리 바빠도 제가 좋아하는 여가생활을 못하는 날은 없어요. 일을 하다가도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는 사무실 문만 열고 나가면 근사한 자연 카페가 있거든요.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는 한적하게 정자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요. 그리고 대도시에 있을 때는 유행에 따라 소비를 하게 돼서 지출이 컸는데, 의령에서는 그럴 일이 없어서 돈을 절약할 수 있어요.(웃음)”

의령군 칠곡면 홍의별곡(왼쪽)전경
의령군 칠곡면 홍의별곡(왼쪽)전경

◇청년 유입 위해선 ‘가능성’ 제시해야=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이란 소재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시내씨는 지역에서 청년을 유입시키기 위해서는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자체가 지역의 특성과 유휴 공간 활용 방안을 연구해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청년들이 지역의 자원과 자신의 특기를 결합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령은 관광자원이나 일자리 측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많다고 봐요. 저만 해도 유휴 공간을 활용해 사용하고 있는 사무실, 스튜디오만 5개가 넘거든요. 지자체에서는 지역의 특성과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홍보해 젊은 감각과 다양한 특기를 가진 청년들에게 일자리 측면에서 지역에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부분들이 선제적으로 추진된다면 지역소멸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될 거라고 봅니다.”

귀향을 망설이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도시는 주거 공간이나 직업적인 면에서 허들이 높기도 하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시골에서의 삶이 쉽다는 건 아니에요. 주변에 동료가 많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해나가야 하는 부분이 많아요. 저도 귀향 초기에 외로움을 많이 느꼈거든요. 하지만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꿈을 펼치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명확히 정해졌다면 의령은 기회와 자원들이 아주 충분한 곳이거든요.”

안시내 홍의별곡 대표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시내 홍의별곡 대표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의령군 청년정책= 의령군은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삶 전반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의령 청년 희망프로젝트사업인 ‘청년정책 패키지’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청년정책 패키지사업으로는 △청년 시험응시료 지원사업 △청년 소상공인 창업지원사업 △청년 반값 임대주택 수리비 지원사업 △청년 이사비용 지원사업 △청년동아리 지원사업 △청년 자원봉사활동 지원사업 △청년 웨딩촬영비 지원사업 등 총 7개 분야 11개 지원사업이 있다.

2025년 신규사업으로 청년부부 결혼장려금 지원사업을 시행할 예정으로, 지난 9월 신규사업 추진에 필요한 최종 절차인 사회보장제도 신설 협의를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마무리했다.

또한, 신혼부부와 청년들의 주택 마련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신혼부부 주택자금 대출이자 지원사업, 전세보증금 보증료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청년들의 정책 수요를 세심하게 살펴 청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을 발굴 및 추진하고 있다.

군은 교통환경이 열악한 지역 특성을 반영해 전국 최초로 시행한 청년 중고차 구입비 지원사업과 지역정착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청년 중고차 구입비 지원사업은 1500만원 이하의 중고차를 구입하고 지역 내에 취·등록세를 납부한 만 18세 이상 49세 이하의 의령 청년에 의령사랑상품권으로 150만원을 지원해 주는 사업으로 올해 상반기까지 40명의 청년이 혜택을 받았으며, 하반기 15명을 추가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행정안전부가가 실시한 ‘2023년 청년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에 최종 선정되어 현재 청년들의 지역정착을 위한 지속 가능한 기반 조성을 위해 칠곡면 일대를 청년이 찾아오는 청년마을로 만들고자 힘쓰고 있다.

이 공모사업은 전국의 청년단체 161개소가 지원해 서류·현장·발표 심사를 거쳐 최종 8개 시군 12개소가 선정됐는데 경남도내서 의령군이 유일하다. 최종 선정된 의령군 청년단체 홍의별곡은 2025년까지 3개년에 걸쳐 사업비 6억원을 지원받아 청년들이 국악을 흥미롭게 재해석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현재 운영하고 있다.

의령군 소멸위기대응추진단 담당자는 “의령은 의병 정신의 상징인 충익사, 독립운동가 안희제 선생과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 생가 등 천혜의 자원을 가진 역사·전통·자연이 살아 숨 쉬는 도시”라며 “2025년 3월 31일까지 사각사각 청년하우스에서 단기 지역살이 체험 신청자를 모집하고 있으니 체험을 통해 의령이 살기 좋은 도시라는 걸 많은 분들이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영현 기자 kimgij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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