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돌아왔다, 귀향시대] (3) 산청에 살어리랏다
고향엔 기회의 열매가 주렁주렁… 뭘 따야 할지 고민이에요
지리산 정기를 품은 산청군은 예로부터 산과 물, 사람이 맑다고 해 삼청(三淸)의 고을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산청 인구는 9월 기준 3만3373명으로, 도내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적은 군이 됐다. 지방 소멸의 시대, 산청도 인구 감소의 위기를 피할 수 없지만 먹거리가 풍요로운 고장으로 되돌아오는 청년들이 있어 희망을 품고 있다.
딸기 재배 7년차 농부 이종혁씨
농민단체 활동하다 고향 돌아와
가정 꾸리고 논밭 규모도 늘려
농사 분투기 등 담은 책 출간도
“청년들 모임하며 고민 등 공유
고향서 정신적 풍요로움 느껴”

산청군 신안면 외고리에서 이종혁씨가 딸기 비닐하우스를 가꾸고 있다./성승건 기자/
◇농부가 된 이종혁씨= 선선한 가을날, 산청에 귀향한 지 7년째 된 농부 이종혁(39)씨를 그의 딸기 농장 앞에서 만났다. 이씨는 신안면 외고리에서 하우스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10월 말이면 보통 수확하는 시기이지만, 올해는 기상 이상 탓에 생육이 더디다며 마음을 졸였다. 그럼에도 근심보다는 밝은 표정으로 “일 년 열세 달을 일해야 딸기가 나온다”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와의 얘기는 지난 2020년 5월 2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에서 만난 농촌 총각과 처녀가 트랙터를 타고 입장해 마을 정자나무 아래서 결혼식을 올린 게 화제가 됐다. 그 주인공이 바로 이종혁씨와 아내인 정푸른(35)씨다. 부부는 전문가들이 꾸며주는 고급스러운 결혼식보다 조금 어설퍼도 자신들이 준비한 잔치 느낌의 결혼식을 원했다. 당시 트랙터 운전대는 신부가 몰았고, 남편은 옆자리에서 도와가며 함께 입장하는 모습이 명장면으로 남았다. 이씨는 “결혼식을 앞두고 조금 색다르게 해보고 싶어서 트랙터 입장을 떠올리게 됐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며 “아내가 저와 같이 지내면서 조금씩 트랙터 운전을 배웠다. 사람들 앞에서 바가지를 뒤집으면 천이 내려오게끔 해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이종혁·정푸른씨가 지난 2020년 5월 신안면 원산마을에서 결혼식을 하며 트랙터로 입장하고 있다./부부 제공/
그는 아내와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를 통해 처음 만났다. 지금은 슬하에 두 딸이 있다.
“첫째 딸 이름은 이서로(3세), 둘째 딸 이름은 이도와(9개월)예요. 두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성별과 상관없이 ‘서로 도와’라며 미리 이름을 지어줬지요.”
이씨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농민 부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강과 산을 다니며 자랐다고 회상했다. 군대를 다녀와선 농사를 짓겠다며 농업대학에 들어갔지만, 졸업 후 농업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고 농민단체에 들어가 활동했다. 2014년부터 4년여간 서울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정책 담당으로 일한 뒤 고향 산청으로 돌아와 딸기와 벼를 주 작물로 키우는 농민이 됐다. 현재 농사 규모는 딸기(품종명 장희)가 하우스 9동에 5950㎡, 논은 3만3057㎡ 정도다.
“학교와 동네 사람들, 산에 가고, 강에서 수영하고…. 어렸을 때 기억이 지금까지 일을 하는 데 어떤 작용을 하고 있어요. 고향에 대한 애향심이 계속 있었죠.”
이씨가 산청 농정 발전에 기여한 바는 또 있다. 지난해 자신의 딸기농사 분투기를 담은 책 ‘딸기밭에서 열세 달’을 선보였다. 이 책은 산청에 귀농해 6년째 딸기 농사를 지은 뒤 2022년 5월부터 2023년 5월까지 1년간 농사 이야기를 담았다. 책은 ‘땅과 농사를 향한 순정으로 써 내려간 농민의 기록’이라 소개하고 있다.
이씨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에 농사 짓는 일지처럼 글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개인 출판하시는 분을 통해 우연찮은 기회에 내게 됐다. 글이 쉽게 쓰인 데다 농사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일도 적혀 있어 책을 내게 된 것 같다”라고 했다. 그는 책에서 ‘농산물값이 얼마인지도 모른 채 날이면 날마다 묵묵히 논밭에 나가 일하는 농민들이 존경스럽다는 것, 그리고 모든 생산비가 오른 상황인데도 헐값에 농작물을 출하해야 하는 농민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이제는 감히 말할 수 있게 됐다’며 이 땅의 모든 농민에게 존경을 표했다.
아울러 그는 지역 청년들과 모임에도 참여하며 삶을 즐기는 중이다.
“산청에 ‘있다’라는 청년 모임이 활성화가 돼 있거든요. 청년 모임을 하다 보면 또래끼리 아무래도 어려움이나 고민을 나눌 수 있어요.”
그는 귀향을 망설이는 청년들에게 조언한다.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 가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힘들다고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고향으로 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를 하거든요.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더라도 만족하면서 살아가면 되니까,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정신적으로 풍요롭다고요.”
카페 운영 7년차 박진상씨
유학준비 중 풍경에 반해 정착
맛있는 빵·커피 제공 위해
새벽부터 한정수량만 만들어
“먹거리 많고 기회 많은 고향
자영업도 다방면 지원해주길”
◇카페를 차린 박진상씨= 산청 귀향 청년 중에는 ‘거울같이 물이 맑다’고 해 이름 붙여진 경호강을 풍경 삼아 카페를 차린 이도 있다. 바로 박진상(37)씨다. 박씨는 아내 박은영(31)씨와 카페를 운영 중이다. 그는 독특한 적벽색 외벽 건물에 공간의 따스함을 담아 내부를 인테리어하고, 빈티지 스피커에 음악이 흐르는 ‘리버노트’라는 카페를 운영한다.
“리버노트는 강을 기록하다는 뜻을 담았어요. 또 많은 추상적 의미도 담고 있어요. 추억도 있고, 계절이나 향기 같은 것도 있고요. 카페는 편안함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해서 주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서로 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카페에 대한 박씨의 설명이다.

산청군 단성면에서 경호강을 풍경 삼아 카페 영업 중인 박진상씨.
어린 시절 산청 원지마을에서 자란 박씨는 20대에 꿈을 좇아 무작정 서울로 향했던 적이 있었다.
“30만원 들고 서울에 올라가서, 살 때가 없어서 기숙사가 있는 곳에서 일을 많이 했어요. 대형마트 주차 관리, 술집 종업원 등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제가 살던 곳과는 너무 달랐죠. 아침에 눈을 떠서 지하철역에만 가도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다들 너무 치열하게 산다고 생각했죠. 4년 정도 서울 생활을 했어요.”
그는 미래를 고민하다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이후 한국국제대학교 외식조리학과를 졸업하게 됐는데, 그때 요리를 하던 것이 계기가 돼 진주 사람인 아내와는 한 식당에서 일을 할 때 만나 인연을 맺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카페를 창업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이씨는 적지 않은 나이에 요리 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을 계획하던 중 경호강 앞을 찾았다가 그 풍경에 반해 유학을 포기하고 지난 2017년 개인 카페를 열었다.
“옛날 허름한 미닫이 문의 노포 식당이었는데, 식당을 하신 분이 노쇠하셔서 나가시면서 공실이었던 것 같아요. 밖에 보이는 풍경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여기에서 카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시작점이 이 정도면 괜찮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는 30세가 돼 첫 카페인 커피블라썸을 차렸고, 올해 3월부터 바로 옆자리에 건물을 새로 지어 지상 3층 규모의 카페인 리버노트를 운영 중이다.
그는 지방소멸 위기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산청군 단성면에서 박진상씨가 운영중인 카페.
“우리가 30~40년 뒤에 일어날 일을 지금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현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없어서 장사를 못한 거야’라는 핑계를 하고 싶지 않아요. 이 카페에 가치가 있으면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또, 여기서 내가 특별하게 뭔가 테크닉을 발휘해서 더 맛있게 한다면 좋겠지만, 너무 모나지 않고 모든 사람이 먹었을 때 편안하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커피를 선호합니다. 저는 빵을 아침 6시, 7시에 일어나서 직접 만들고 당일만 판매해요. 운이 좋게도 빵을 다 판매하고 있는데, 저만의 기준선 밑으로 음식이나 음료의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분명히 손님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박씨 역시 귀향을 결심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고향에 먹거리가 무궁무진하다고 자신하며 귀향을 망설이는 청년들에게 용기를 내보라고 조언하고,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 달라며 당부도 빠뜨리지 않았다. “고향은 둥지 안에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산청에 돌아온 뒤로 아침에 일어나거나 일과를 보낸 뒤에도 막막함이나 답답함 이런 것은 느껴보지 못 했어요.“
그는 “사람은 나서 서울로 가야 한다고, 기회가 있다고 말하지만 충분히 촌에도 기회가 있고, 자신을 믿는다면 믿음의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저는 산청이 좋습니다. 아직 기회의 열매라고 하나, 따먹을 게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요. 도시에서 바라보는 귀촌, 귀향의 방법은 흔히 농사밖에 없다고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농사에 뜻이 있는 사람만 귀를 기울여 보고 듣고 찾아보고 행하겠지만, 다른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 모두 해당하지는 않아요. 사람 사는 곳은 얼마든 할 수 있는 것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는 않아 이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봐요. 농사를 짓거나 할 땐 혜택이나 교육, 융자가 되게 잘 되어 있는 것 같지만, 어떤 자영업을 할 때도 청년들이 잘 꾸려나갈 수 있도록 많은 방면에서 도움을 받게 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산청군 청년정책= 산청군은 청년 인구를 늘리기 위해 농업 외 일자리나 자녀 등의 교육 문제, 거주 환경 문제 등의 해소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청년4-H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청년농업인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방소멸대응기금사업을 통해 청년학습센터 구축 등 로컬대안학교를 운영한다.
또 청년층의 주거·생활 안정을 위해 △금서 워라벨-UP 근로자기숙사 건립 사업 △산엔청 청년 베이스캠프 조성사업 △청년 대중교통비 지원사업 △청년 월세 지원사업 △청년 주거자금 대출이자 지원사업 △신혼부부 주택구입 대출이자 지원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군 인구정책담당 관계자는 “자녀의 교육 문제로 유출되는 인구를 막기 위해 산청군향토장학회를 통해 특기·적성교육 지원 등 다양한 장학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결혼장려금, 출산장려금, 청년 주거자금 대출이자 지원사업, 신혼부부 주택구입 대출이자 지원 사업 등 지원 사업도 계속해서 실시해 청년에게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재경 기자 j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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