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돌아왔다, 귀향시대] (4) 함양에 살어리랏다

고립 대신 연대… ‘청년 공동체’에서 찾은 지역의 지속 가능성

기사입력 : 2024-11-11 21:42:21

“소멸해 가는 지역, 뭘 해도 안 되는 지역, 발전이 없는 지역….”

문화예술을 좋아하던 청년은 자신의 고향인 함양을 이렇게 회상했다.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영화 한 편을 보려면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이 넘는 거리인 진주로 가야 했다. 요금은 5300원이었다.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물리적인 거리가 멀었기에 청년의 영화티켓 가격은 버스비만큼 더 비쌌다. 어렵사리 영화를 보고 집으로 귀가할 때면 문화적 결핍은 더욱 커졌다. 돌아온 거리만큼 문화생활과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과 취미를 갖는 게 욕심으로 치부되는 함양에 더는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청년 최학수(28)는 스무 살이 되던 해 고향을 떠났다.


꿈 찾아 고향 떠났지만…

미술·역사 관심 많아 경주로 대학 진학
‘새로운 경험’ 갈증 커 대외활동 열심
군 제대 후 제주행… 다양한 사람 만나

지역언론인이자 청년활동가인 최학수씨가 주간함양 사무실에서 PPT를 만들고 있다./성승건 기자/
지역언론인이자 청년활동가인 최학수씨가 주간함양 사무실에서 PPT를 만들고 있다./성승건 기자/

◇진로 결정만큼 중요했던 경험= 미술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학수씨는 2015년 겨울 함양을 떠나 고고미술사학에 특화된 경주의 모 대학에 입학했다. 해방감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캠퍼스를 거니는 것부터 수업까지 모든 게 흥미롭고 즐거웠다. 우연히 접하게 된 시나리오 수업을 계기로 영상 제작 동아리 활동을 하며 단편영화제에 출품을 하기도 하고, 취미 삼아 시작한 국궁의 매력에 빠져 나중에는 동아리 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바삐 지냈다. 대학 진학의 목표는 전공을 살려 박물관 학예사가 되는 것이었지만, 그가 그만큼 집중했던 것은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증 해소였다.

“나와 비슷한 사람과 비슷한 취미를 갖는 게 욕심인 시골에서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함양에서는 문화와 먹거리 등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적이다 보니까 경험하는 것에 대한 결핍이 너무 컸거든요. 그래서 대학에 진학하면서 대외활동을 많이 하려고 했어요. 경주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도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도 자주 가며 함양에서 채울 수 없었던 경험들을 채워나갔죠.”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이 탈이었을까. 박물관 학예사가 되고 싶었던 학수씨의 꿈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상 제작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전공이 뒷전이 될 만큼 영상 만드는 일에 푹 빠져버린 것. 문화적 결핍을 채우려 새로운 경험들을 좇다 보니 어느새 그의 직업 선택지에는 영상을 제작하는 일이 추가됐다. 순수학문으로 분류되는 고고미술사학 전공을 살리려면 대학원 진학이 필수였고, 영상 쪽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서울로 가야 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건 대학원 진학도, 서울도 아닌 논산훈련소였다.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민이 많았어요. 전공을 살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영상 일도 해보고 싶었거든요. 현실적인 문제를 비롯해 여러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진로 결정을 미루고 군입대를 선택했죠.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지역언론인이자 청년활동가인 최학수씨./성승건 기자/
지역언론인이자 청년활동가인 최학수씨./성승건 기자/

군대에 다녀오니 어느덧 나이가 스물여섯이었다. 더 이상 진로 결정을 유예할 수 없다는 부담감이 학수씨의 어깨를 짓눌렀지만, 군대에서 넣은 적금을 깨고, 곧장 제주도로 떠났다. 새로운 경험들이 당장에 돈을 버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하는 조건으로 방을 하나 얻어 생활했던 그는 매일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게 낙이었다. 다만, 마땅한 벌이가 없다 보니 제주살이를 길게 지속할 순 없었다. 수중에 돈이 모두 떨어진 그는 다시 찾아온 선택의 기로에서 함양행을 결정하게 된다.


다시 돌아온 고향서 찾은 ‘가능성’

지역신문 구인공고에 흥미 느껴 입사
다양한 청년 취재하며 지역 장점 깨달아
네트워크 ‘이소’ 만들어 청년층 연결
언론인·청년 활동가로 지역발전 꿈꿔


◇스스로 이방인 자처했던 그, 지역 청년으로 거듭나다= 스무 살에 떠난 고향을 스무 번의 계절이 바뀌고 나서야 다시 찾았지만, 학수씨에게 함양은 여전히 종착지가 아니라 정거장일 뿐이었다. 돌아온 이유는 단지 도시로 나갈 수 있는 보증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적당히 돈을 벌어 떠날 계획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그럴듯한 일자리가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구인구직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신문사인 주간함양 공고를 보게 됐고, 그 길로 지역신문 기자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대학 시절 신입생들에게 글쓰기 멘토링을 해줄 정도로 글재주가 있었는 데다 사진과 영상 촬영도 곧잘 했던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는 직업을 단순히 경제적인 가치로만 판단하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매력과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지속할 수 있다고 봐요. 이런 측면에서 함양은 기회가 없는 곳이라고만 생각했었죠. 그런데 주간함양 공고를 보고, 지역에서 제가 흥미를 갖는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에 많이 놀랐어요. 아무런 기대가 없는 함양에서 조금의 가능성을 발견한 순간이었죠.”

최학수(오른쪽 아래)씨가 제주살이 당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본인 제공/
최학수(오른쪽 아래)씨가 제주살이 당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본인 제공/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결집된 신문사에 입사해 일을 하면서도 이곳에서 정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렇게 매일 지역의 행사들만 취재하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중 청년들에게 지역살이를 제공하는 서하다움 청년레지던스 플랫폼 취재 현장에서 그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함양의 작은 시골마을인 서하면에서 진행하는 청년 시골살이 취재를 갔었어요. 프로그램에 참가한 타 도시 청년들 인터뷰를 하는데, 제가 다른 지역을 동경하는 것처럼 그들도 함양을 동경하고 있더라고요. 함양은 그저 그런 시골인 줄만 알았는데, 기자 일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밀착해서 함양을 바라보니까 장점이 많은 곳이었던 거죠. 지역 구석구석을 취재하다 보니 지역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사랑할 수 있었어요. 이때부터 제가 지역의 청년으로서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함양 이소문화센터에서 진행된 북토크에서 최학수씨가 진행을 하고 있다./본인 제공/
함양 이소문화센터에서 진행된 북토크에서 최학수씨가 진행을 하고 있다./본인 제공/

학수씨가 지역에 애정을 갖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지역을 떠나는 것이 아닌,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함양에 귀촌한 연고 없는 청년들이 귀촌 우울증을 겪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청년들이 불행하면 그 어떤 좋은 정책이 있어도 지역을 찾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그는 재작년 청년 네트워크 ‘이소’를 만들었다. 평범한 취미를 갖는 게 욕심인 시골에서 이소는 지역 청년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 같은 존재다.

“취재를 다니면서 청년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 귀촌 우울증이 온다는 거였어요. 자신과 비슷한 또래를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는지도 모르고, 정말 힘든 일이 있을 때 맥주 한잔 같이 마실 사람이 없으니까 우울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는 거죠. 아무리 문화 시설이 잘 되어 있다고 해도 연대할 수 있는 공동체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이소는 이러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함양을 찾는 청년들이 지역사회에서 치이고, 고립되지 않을 수 있도록 이소는 항상 건강한 공동체의 위치를 지킬 생각입니다.”

지역언론인이자 청년활동가인 최학수씨가 앞으로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성승건 기자/
지역언론인이자 청년활동가인 최학수씨가 앞으로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성승건 기자/

지역 청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은 학수씨는 언론인과 청년 활동가로서의 정체성도 더욱 뚜렷해졌다. 이 모든 정체성은 함양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더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려는 똑같은 방향으로 이어진다. 다만 그만큼 일도 늘어났다. 야근하는 날이 익숙해지면서 몸과 마음이 지치기도 하지만, 힘듦보다 보람이 크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 귀향청년 최학수의 선한 영향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청년 정착 돕는 정책들

군, 창업·결혼 등 4개 분야 26개 사업
‘서하다움’서 다양한 지역살이 프로그램
‘공유주거’ 내년 준공, 세대 통합 사업도


◇함양군 청년정책= 함양군은 지역 청년들의 안정적인 정착과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청년 주거시설 및 창직·창작 활동 공간 조성 △청년 일자리 및 창업 지원 △청년농업인 육성 △청년네트워크 활성화 등 4개 분야 26개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 사업으로는 군에 거주하고 있는 청년의 주거비 부담 완화와 안정적인 정착을 위한 신혼부부 결혼자금과 주택보금자리, 청년 월세 주거 지원, 청년사업자 임차료, 모다드림 청년통장, 청년농업인 스마트영농, 청년후계농 영농정착 등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내년 준공 예정인 ‘청년마을 공유주거’는 숙소 12실과 공유 커뮤니티 공간을 결합한 청년 공간으로 청년의 주거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줄여 청년 간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오는 2026년 준공 예정인 누이센터 내에 ‘청년 꿈 제작소’를 조성해 공유오피스, 공유주방, 동아리 활동실 등 창업·취업, 교육·문화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지역 청년 누구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또한 군은 청년인구 유입과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LH, 경남사회혁신가네트워크와 협력해 단기 체류 시설인 ‘서하다움 청년레지던스플랫폼’을 통해 한주살이, 로컬 삶기술 워크숍, 시골집 리모델링 등 다양한 지역살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난 2022년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에 선정된 ㈜숲속언니들 ‘고마워, 할매’는 타 지역 청년들에게 지역살이 제공을 통해 시골밥상, 할매의 레시피 등 청년과 노인을 연결하는 세대 통합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함양군 미래발전담당관은 “함양군은 무한한 성장 가능성과 기회가 있는 곳으로, 고향에서의 삶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수 있는 곳”이라며 “귀향과 귀촌을 고민 중인 청년들의 새로운 도전으로 개인에게는 물론 지역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영현 기자 kimgija@knnews.co.kr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영현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


  • -----test_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