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전통시장의 미래, 건축 혁신에서 찾다] (1) 경남 전통시장 건축의 현주소

어딜 가나 똑같은 아케이드, 비 가리려다 지역색도 가렸다

기사입력 : 2024-11-14 20:31:28

국내 전통시장은 대형마트 진출, 온라인 배송 시장 활성화 등으로 경쟁력이 뒤처지면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이에 정부는 전통시장 활성화의 한 방법으로 전통시장 시설 현대화에 꾸준히 투자·지원해왔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아케이드 설치, 간판 개선, 화장실 개축 등 단순히 시장의 기능적 개선에 머물면서 각 시장의 정체성 확립이나 특유의 개성을 살리는 데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경남에는 186개의 전통시장이 있다. 이번 기획을 통해 ‘건축’을 중심으로 경남 전통시장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건축 혁신을 통해 전통시장에 새 숨을 불어넣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산타 카테리나 시장과 엔칸츠 벼룩시장, 세비야 메트로폴 파라솔, 서울 해방촌 신흥시장 사례를 바탕으로 지역성, 차별성을 갖춘 경남만의 전통시장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본다.

경남 전통시장도 건축을 통한 활력이 필요하다. 답습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도내 전통시장 6곳 ‘아케이드’
노점 중간 덮는 천편일률 형태
통일성 있지만 지역성 못 살려
‘공간 기획 부재’ 일부 지적도

서울 3곳·경기 4곳 전통시장
‘혁신 디자인’ 적용해 변화 시도
“트렌드 맞춰 공간 바꾸는 등
정체성 살리는 건축 고민해야”

천편일률적인 도내 전통시장 아케이드. 왼쪽부터 창원 반송시장·가음정시장·도계부부시장, 마산 반월시장, 진주 중앙시장·자유시장.
천편일률적인 도내 전통시장 아케이드. 왼쪽부터 창원 반송시장·가음정시장·도계부부시장, 마산 반월시장, 진주 중앙시장·자유시장.

◇전통시장의 위기와 가치= 전통시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지역 도소매 유통의 중심 공간이자 지역·사회·경제·문화적인 활동과 교류가 이뤄지는 커뮤니티 장이었다.

전통시장을 한 지역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보고이자 삶의 터전이라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현재 국내 전통시장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 1996년 유통시장 전면 개방 이후 전통시장은 국내외 대형 자본이 주도하는 대형마트의 지역 진출과 온라인 쇼핑 등 급격한 유통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상권이 크게 위축됐다. 전통시장의 쇠퇴는 고객 감소와 매출 하락 등 전반적인 영업활동 위축과 경영 악화로 이어져 지역 상권 유지의 어려움을 가중시켰으며, 지역경제 위축으로 이어졌다. 전통시장의 가치를 살리고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는 시장 환경 개선이 매우 절실한 상황이다. 경남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경남지역 전통시장은 186개다. 창원시가 76개로 가장 많았으며 진주시 18개, 거제시 12개, 김해시·사천시 8개 순이다.

경남연구원이 2022년 발표한 ‘경남지역 전통시장 지원 정책 개선방안’ 보고서는 전통시장의 역할과 지원 필요성에 대해 “전통시장은 지역문화와 정서가 담긴 공공시설의 역할이 강하며, 지역민의 만남과 정보교류의 장소 등 정서순화적인 역할도 해왔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전통시장 형태?…시장 덮는 천편일률 ‘아케이드’ 일색= 정부는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2002년 ‘중소기업의 구조개선과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전통시장 지원에 대한 법적인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2004년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지역 내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현대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경남의 전통시장 시설현대화사업은 2001년 시작, 2020년부터 지방으로 이양되어 추진 중이다. 2001년부터 2021년까지 987개의 사업을 추진, 약 4079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이를 통해 도내 전통시장의 아케이드, 공중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전기·소방가스 시설을 개선했다.

2022년 기준(186개) 도내 전통시장 부대시설 현황을 살펴보면, 아케이드 76곳, 주차장 125곳, 화장실 163곳아 마련돼 있다.

아케이드가 설치된 경남 도내 전통시장을 둘러보면 노점 중간을 아케이드로 덮는 천편일률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아케이드와 더불어 시장 측면도 덮여 있어 비바람에도 시장에 올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동시에 폐쇄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바람이 통하지 않다 보니 환기나 더위에도 취약한 구조다. 시장 2층 이상은 시장으로 활용되지 않거나 활성화되지 않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많은 시장이 동일한 아케이드 구조와 함께 조명·간판의 통일성을 고려하다 보니, 깔끔해 보이지만 각 시장이 지닌 지역적 특성과 역사성을 살리지 못하는 한계도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커뮤니티 역할을 통한 공공성을 띤 시장 보다는 단순히 사고 파는 시장의 기능만 채워져 있는 곳이 많아 일부는 변화가 필요하다.

박진석 경남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전국 전통시장을 다녀 보면 사실 대동소이하게 생겼다. 공간 기획에 대한 부재에서 비롯된다”며 “공식처럼 나와있는 천편일률적인 아케이드 설치의 경우 아케이드를 덮기 전에는 외부에서 밖이라도 보였는데 덮으면 보이지 않으니 2층과 3층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과 경기…건축 통한 전통시장 경쟁력 구축 시도= 이 가운데 최근 서울과 경기에서는 노점 중간을 아케이드로 덮는 천편일률적인 전통시장에서 벗어나 건축 디자인으로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중구 신중앙시장,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 등에 혁신적인 건축을 적용해 이들 시장을 탈바꿈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의 ‘디자인 혁신 전통시장 조성사업’은 전통시장의 낙후된 시설을 보수해 위생과 기능을 현대화하는 기존 지원사업의 방식을 넘어 전통시장의 지역성·역사성·특수성을 살린 독창적인 외관에 예술적인 실내 디자인을 접목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추진된다. 또한 올해는 서울 대표 전통시장인 남대문시장에 커뮤니티 공간을 창출하는 공간적 혁신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올해 경기도는 전통시장 상권을 네덜란드 마켓홀과 알버트 카이프 마켓, 프랑스 앙팡루주 시장, 생 캉탱 시장 등 유럽형 건축 디자인으로 리모델링해 도시의 랜드마크로 조성하는 ‘전통시장 혁신모델 구축사업’을 공모, 수원 남문시장 일대 상권 등 4곳을 선정했다.

전문가들은 경남에서도 전통시장 활성화에 있어 건축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신대곤 대한건축사협회 경남건축사회 부회장은 “백화점도 4년 정도마다 부분적으로 리노베이션을 한다. 지어놓고 끝이 아니라 트렌드에 맞춰 공간을 바꾸는 것이다”며 “전통시장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전통시장 역시 발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자본이 있는 곳으로 흘러가게 두는 게 아니라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 지역에서도 전통시장 건축에 대한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한유진 기자 jinny@knnews.co.kr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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