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전통시장의 미래, 건축 혁신에서 찾다] (2) 서울 해방촌 신흥시장

햇빛·바람 드나드는 ‘구름 아케이드’… 죽어가던 시장 살아났다

기사입력 : 2024-11-18 21:36:11

니트 봉제공장 운영된 일터이자
먹거리·생필품 팔던 ‘신흥시장’
니트산업 쇠퇴하며 명맥만 유지

서울시, 2017년 환경개선 추진
낡은 철제 슬레이트 지붕 걷어내고
창의적 구조 담은 아케이드 설치
기둥은 보행 고려해 섬세하게 설계

낡고 어두운 공간 밝아지자
빈 점포 줄고 유동인구 늘면서
MZ세대 문화 공간으로 변모


오랜 시간 쇠락하던 서울 해방촌 신흥시장이 최근 사람들로 가득한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특히 전통시장과는 멀어져 있던 젊은 세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신흥시장을 ‘서울 속 숨은 명소’로 소개할 만큼 매력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바로 아케이드 ‘건축’의 힘이다. 기존의 낡고 어두운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 내고, 빛과 바람이 통하는 투명한 아케이드를 높게 띄웠다. 그러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클라우드(CLOUD)’라는 이름처럼 구름 형태의 새로운 아케이드는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을 부흥시키면서 해방촌 신흥시장의 신(新)해방일지를 써내려가고 있다.

서울 해방촌 신흥시장 과거 모습. 과거 신흥시장의 2·3층은 주거 공간이면서 니트 봉제공장을 운영하던 곳이었다./유아이에이건축사사무소/
서울 해방촌 신흥시장 과거 모습. 과거 신흥시장의 2·3층은 주거 공간이면서 니트 봉제공장을 운영하던 곳이었다./유아이에이건축사사무소/

◇과거 신흥시장 전성기와 쇠퇴= 서울 용산구 해방촌은 1950년대 해방 직후 북쪽에서 남하한 주민들이 판잣집을 지어 생활하면서 형성된 지역으로, 서민들의 애환과 삶의 자취를 간직한 곳이다.

이 지역에 개설된 해방촌 신흥시장은 과거 1970~1980년대 니트산업이 활발할 당시 해방촌 상권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며 번성했다. 과거 신흥시장의 2층과 3층은 주거 공간이면서 작은 니트 봉제공장을 운영해 생필품을 생산하고 남대문과 동대문 시장에 판매하던 일터였다. 1층에서는 미군 기지에서 가져온 물품뿐만 아니라 이북식 국수 등 다양한 먹거리와 생필품을 판매했다.

신흥시장 과거 사진./유아이에이건축사사무소 /
신흥시장 과거 사진./유아이에이건축사사무소 /
신흥시장 과거 사진./유아이에이건축사사무소 /
신흥시장 과거 사진./유아이에이건축사사무소 /

그러다 1990년대 이후 니트산업이 쇠퇴하자 생산공장의 해외이전과 경기침체, 시설물 노후화 등으로 급격히 슬럼화되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한 전통시장으로 전락하게 됐다.

빈 점포가 늘어나고, 낡고 철제 슬레이트 지붕 아래 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시장 환경은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해방촌은 남산 고도 제한으로 개발 높이가 제한돼 있다. 신흥시장은 건폐율이 100% 넘어 재개발에 들어가면 개발 이익이 낮아 개발이 어려운 상태였다.

◇투명하고 가벼운 아케이드로 되찾은 시장 활력= 이에 서울시는 해방촌 도시재생사업 중 하나로 신흥시장 환경개선사업을 추진, 2017년 창의적 디자인을 적용한 아케이드를 설치해 다른 전통시장과 차별화된 모습을 구현하기 위한 설계공모를 진행했다.

그 결과 위진복 유아이에이건축사사무소 대표와 홍석규 큐엔파트너스건축사사무소 대표가 공동 설계한 ‘클라우드(CLOUD)’가 당선됐다. 위 대표에 따르면 2017년 당시 석면 슬레이트로 되어있던 기존 신흥시장 아케이드는 2층 내민 슬라브에 올려져 1층과 그 위층을 단절하고 있었으며 채광, 환기도 어려운 구조였다.

그는 “1층뿐 아니라 2층과 3층, 옥상까지 다양한 용도가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설계 당시를 회상했다. 이에 두 대표는 시장을 따라 둥근 형태의 아케이드를 건물 위로 높이 올린 설계로 시장의 위층 공간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아케이드 소재는 옥상 너머로 지붕을 들어 올리면서도 비는 막고, 햇빛과 바람은 얻을 수 있도록 투명한 ETFE(에틸렌-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를 채택했다. 그 결과 자연 환기도 되고 자연광이 잘 들어오면서 전체 시장이 밝아졌다.

신흥시장 현재 모습. 2017년 신흥시장 환경개선사업 설계 공모를 통해 다른 전통시장과 차별화된 모습으로 바뀌면서 현재 젊은 세대들의 발길을 이끄는 명소가 됐다.
신흥시장 현재 모습. 2017년 신흥시장 환경개선사업 설계 공모를 통해 다른 전통시장과 차별화된 모습으로 바뀌면서 현재 젊은 세대들의 발길을 이끄는 명소가 됐다.
서울 해방촌 신흥시장
서울 해방촌 신흥시장

ETFE는 일종의 비닐 신소재로 매우 가볍고, 유연하고, 내구성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재를 활용한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워터큐브’라 잘 알려진 베이징 올림픽 수영 경기장이 있다. 신흥시장에 적용된 방식은 ETFE를 두 개의 막으로 만들고 그 사이에 공기를 불어 넣은 공기 충전식 구조다.

아케이드가 가벼워지자 최종적으로 시장 골목길에 설치하는 기둥 두께도 16.5㎝로 줄면서 섬세한 디자인을 가지고 갈 수 있었다. 위 대표는 “명함을 샤프심이 받치고 있는 것과 같은 비율이다”며 “엔지니어링 디자인을 통해 실제 구름처럼 떠있는 아케이드가 됐다”고 설명했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총 48개의 얇고 굴곡진 기둥들은 시장 상인의 의견과 보행 편의를 고려해 세심하게 설치돼 있다.

기둥은 4개 묶음으로 12 다발 기둥이 마치 나뭇가지처럼 전체 구조를 지지해주는 형태다. 이를 위해 주민들과 기둥 위치 관련 협의를 반복하고, 우·오수관 문제로 위치를 재선정하는 등 설계에만 4년이 걸리면서 2022년 9월 사업 6년 만에 완공할 수 있었다.

서울 해방촌 신흥시장.
서울 해방촌 신흥시장.

기존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여 있어 낮고 답답했던 신흥시장은 골목 중간중간 들어선 테이블에 앉아 간단한 식사나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밝고 활기찬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시장 안에는 음식과 문화, 공간을 향유하기 위한 MZ 세대들로 가득하다.

해방촌 신흥시장에 들어온 지 15년 정도 됐다는 정헌주 노가리공장 대표는 “환경개선사업 전에는 철제 슬레이트로 되어 있어 시장에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웠다. 한마디로 이곳에 들어오고 싶지 않은 우범지역 같은 곳이었는데, 지금 이곳은 포토존이 됐다”며 “그만큼 유동인구가 엄청 늘었다. 젊은 친구들이 많이지면서 전반적으로 활력 넘치는 곳으로 변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한 해방촌 신흥시장 클라우드는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4 서울특별시 건축상 대상, 2023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국무총리상, 2022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글·사진= 한유진 기자 jinny@knnews.co.kr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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