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전통시장의 미래, 건축 혁신에서 찾다] (3) 스페인 바르셀로나 산타 카테리나 시장
色다른 실내시장… 67가지 빛깔 거대한 지붕이 물결친다
방화로 불탄 수도원에 터 잡고
착공 4년 만인 1848년 문 열어
스페인 내전·세계대전 거치면서
식료품 공급 중심지로 자리매김
백화점·대형마트 들어서며 쇠락
시, 1997년 리노베이션 결정
역사·맥락·구조물 특성 살리고
창의적인 형태의 아이디어 접목
매대 줄이는 대신 공공 공간 도입
시장 내 수도원 유적 박물관 지어
주민·관광객 머무는 공간으로
‘죽기 전 봐야할 세계 건축’ 꼽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는 40개의 시장이 있다. 각 시장들은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저마다의 다른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오색 빛깔 거대한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지붕이 눈길을 사로잡는 건축물이 있다.
바로 ‘산타 카테리나 시장’이다. 마치 도시에 오색 빛깔 식탁보를 펼쳐 놓은 것만 같다. 다채롭고 거대한 지붕 아래 지역주민, 관광객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들은 이곳에서 음식을 먹거나 음료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채소, 생선 등을 파는 상점들도 인파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지만 산타 카테리나 시장이 처음부터 이렇게 활기를 띤 것은 아니었다. 1848년 처음 문을 산타 카테리나 시장 역시 다른 전통시장들과 마찬가지로 침체기가 있었다. 그랬던 시장에 혁신적인 건축이 더해지면서 시장도 살아나고, 나아가 주변 지역에도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수도원에서 바르셀로나 최초 실내 시장= 산타 카테리나 시장이 위치한 이곳에는 과거 13세기 때 지어진 수도원이 있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최초의 고딕 양식 수도원이자,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또한 한때는 바르셀로나 지방 의회의 모임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다 1835년 스페인 전역에서 발생한 수도원 방화사건으로 수도원은 파괴되면서 바르셀로나 시는 이곳에 시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리노베이션 전의 산타 카테리나 시장. 방화로 불탄 수도원 자리에 터를 잡고 1848년 문을 열었다.
1844년 공사를 시작, 1848년 철제 지붕과 주변 벽을 갖춘 바르셀로나 최초의 실내 시장이 문을 열었다. 당시 공식 명칭은 ‘이사벨 2세 광장 시장’으로 지정됐지만, 시민들은 수도원의 이름을 따 ‘산타 카테리나 시장’으로 불렀다.
20세기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대전 등을 거치면서 산타 카테리나 시장은 바르셀로나와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식료품을 공급하는 주요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특히 산트 아드리아, 바달로나, 산타 콜로마, 마타로 등 주변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 시장을 이용하면서 이곳은 지역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 그렇게 150여년 넘게 시민들에게 각종 식료품과 생필품을 공급하며 전통시장의 전통을 유지해왔다.

리노베이션 전의 산타 카테리나 시장. 방화로 불탄 수도원 자리에 터를 잡고 1848년 문을 열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역시 도시가 발전하고 인근에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산타 카테리나 시장도 침체를 겪게 된다. 현대화는 실패하면서 시설은 낡아갔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20세기 후반에는 사실상 시장으로서의 기능이 무의미한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에 바르셀로나 시는 시장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1997년 리노베이션을 결정하고 설계 공모를 열었다.
스페인 건축가 엔릭 미라예스의 EMBT는 동네의 모든 활동을 통합하는 공공 공간을 조성해 해당 지역의 복잡한 주변 환경을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를 제안하며 공모에 선정됐다.
◇시장 건축이 불어넣은 활력…사람들이 모여든다= 산타 카테리나 시장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는 낙후된 시장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방식이 아닌, 해당 부지의 역사와 맥락을 가져가고 기존 구조물의 특성은 유지하면서 필요한 시설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거기에 새롭고 창의적인 형태의 건축 아이디어들이 접목됐다.

리노베이션 후의 산타 카테리나 시장.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물결치는 듯 펼쳐져 있는 다채로운 색감의 지붕이다. 파도치는 모습의 굴곡진 지붕은 지중해를 낀 바르셀로나를 품고 있다. 5500㎡의 지붕은 67가지 색상의 32만5000개의 육각형 형태 타일로 구성돼 있다. 다채로운 색상은 시장에 진열된 과일과 채소 등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든다. 공간을 좌우로 가로지르는 두 개의 콘크리트 보로 죄이고 지지되는 세 개의 금속 아치는 거대한 지붕을 지탱하고 있다. 동시에 삼각형 단면 보와 콘크리트 및 강철 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지붕선을 만든 목재는 내부에 노출되게 만들어 수공예적 감성을 드러낸다. 시장 근처를 지나가거나 인근 언덕을 내려오는 사람들은 빼곡히 들어선 건물들 사이 산타 카테리나 시장의 지붕을 바라보면서 지역 특유의 색채와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공공 공간이 늘어났다. 시장 매대를 줄이고 레스토랑을 도입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먹고 마시고 혹은 쉬면서 시장에 오래 머물게 됐다. 시장 발전을 위한 마트도 시장 내 입점해 있다.

물결치는 듯한 굴곡진 지붕과 과일·채소를 연상시키는 67가지의 다채로운 색감이 특징이다.

물결치는 듯한 굴곡진 지붕과 과일·채소를 연상시키는 67가지의 다채로운 색감이 특징이다.
단 이곳에서는 공산품만 판매할 수 있게 해 시장과의 상생을 도모한다. 노인을 위한 공공 주택도 건설됐다. 창고 및 물품 적재·하역을 위한 공간과 기존 주차장에 더해 주차장도 추가로 만들어지면서 상인, 고객들의 편리성을 더했다. 시장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과거 수도원 유적이 발견되면서 시장 내 박물관도 마련돼 있다. 리노베이션을 거쳐 2001년 개장할 예정이었던 시장이 2005년이 되어서야 열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확장되고 다채로워진 산타 카테리나 시장은 지붕 아래에서 지역주민들과 관광객들이 함께 교류하며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됐다.
공공 공간의 면적을 늘리기 위해 시장 매대는 줄었지만 사람들이 모여드는 시장이 되면서 상업적 밀도는 보다 촘촘해졌다. 그렇게 산타 카테리나 시장은 현대적이면서도 역사적인 매력을 지닌 공간으로 재탄생하며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 꼽히기도 했다.
글·사진= 한유진 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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