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돌아왔다, 귀향시대] (5) 남해에 살어리랏다

요리에 바다를, 앵글에 사람을… 기회의 땅 ‘보물섬’서 펼치는 꿈

기사입력 : 2024-11-25 20:47:08

남해도립대학 졸업 후 서울서 레스토랑 근무
해외 대사관서 5년간 일하다 향수병 생겨 귀향
지역 새 먹거리 만들고 싶어 한식당 열고 정착

문화생활 등 한정적이지만 즐길거리 많아
사람 마음 치유해주는 레스토랑 운영 목표
척박하지만 기회 많은 고향서 도전해보길

“관광지역과 요리는 항상 붙어 있는 분야라 생각합니다. 남해는 관광지역으로 발전 가능성이 큰 곳이라 제가 요리사로서 남해 생활도 계속해서 발전될 거라 믿기에 매일 설레고 재밌습니다.”

남해군 미조면에서 한식당 ‘힙한식’을 운영하는 이정서씨가 요리 준비를 하고 있다.
남해군 미조면에서 한식당 ‘힙한식’을 운영하는 이정서씨가 요리 준비를 하고 있다.

◇남해 ‘힙한 요리사’ 이정서씨= 이달 남해군 최남단, 절경을 자랑하는 미조면에서 가장 힙하다(Hip·유행에 밝고 신선하다)는 한식당 ‘힙한식’을 운영하는 이정서(30)씨를 만났다. 그는 귀향을 만족하느냐는 물음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겨울 날씨가 찾아왔지만,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는 여전히 많은 손님들이 줄을 선다. 이 식당에서는 남해 식재료들로 정갈한 한식을 차리며 ‘힙한식 전복솥밥’, ‘남해돌문어 고추장 삼겹구이’, ‘바삭 해물파전’을 내어놓는데, 지역 어르신과 관광객 등 입맛을 사로잡으며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그는 “어르신들이나 손님들이 식당 이름의 뜻이 생소해서 잘 모르셨다가 뜻을 알게 되고 음식을 드시고는 ‘청춘이 느껴진다’, ‘정말 힙하네’ 이런 말씀을 하실 때 맛있게 드셨구나 생각이 든다”고 했다.

남해 한식당 ‘힙한식’의 메뉴. /남해 힙한식/
남해 한식당 ‘힙한식’의 메뉴. /남해 힙한식/

그는 경남도립남해대학 출신으로 호텔조리제빵학과로 진학해 졸업을 앞뒀을 시기에 유명하고 실력 있는 셰프들이 많은 서울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서울로 떠났다.

이씨는 “2015년부터 서울 CJ그룹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근무를 했고, 그 후 해외로 포르투갈에 나가 한식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대사관 관저요리사로 근무했다. 약 5년간 타지생활을 하다 남해로 돌아오게 됐다”고 했다. 2020년쯤 그가 남해로 돌아오게 이끈 것은 향수병, 주변의 권유가 컸다.

남해군 미조면에서 한식당 ‘힙한식’을 운영하는 이정서씨가 밑반찬을 준비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남해군 미조면에서 한식당 ‘힙한식’을 운영하는 이정서씨가 밑반찬을 준비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남해군 미조면에서 한식당 ‘힙한식’을 운영하는 이정서씨가 밑반찬을 준비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남해군 미조면에서 한식당 ‘힙한식’을 운영하는 이정서씨가 밑반찬을 준비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해외에서 근무를 하다가 향수병이 생겨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어요. 또 부모님께서 남해의 한정적인 먹거리에 대해 항상 고민이 많으셨고 식당을 열어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도 있었어요. 저도 새로운 남해 먹거리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죠.”

그는 남해에 돌아온 이후로 식당을 차렸고, 타지 생활을 할 때부터 만나오며 서로 의지해오던 심재민(33)씨와 결혼해 지금은 부부 요리사로서 함께 남해에 정착해 가는 중이다.

남해군 미조면 ‘힙한식’./성승건 기자/
남해군 미조면 ‘힙한식’./성승건 기자/

“낯선 사람들이 많은 도시에 있다가 지인들이 많은 고향으로 오니 여러 가지로 식당을 여는 데 도움을 많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가까이 가족도 옆에 있고 남편과 서로 격려해 가며 같이 식당을 운영하며 살다 보니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의 남해는 유년 시절 기억하는 남해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기도 했다.

“남해는 즐길 곳이 없다고 생각해 쇼핑이나 영화를 보러 친구들과 시외버스를 타고 옆 도시 진주로 많이 놀러 다녔어요. 지금 남해는 저에게 드라이브, 캠핑, 카페 투어, 맛집 투어 등 즐길거리가 많아졌죠. 아파서 큰 병원을 가거나 전시회 같은 문화생활을 즐길 곳이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편이라 가끔 옆도시로 나가는 길이 힐링도 되고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않습니다.”

남해군 미조면에서 한식당 ‘힙한식’을 운영하는 이정서씨./성승건 기자/
남해군 미조면에서 한식당 ‘힙한식’을 운영하는 이정서씨./성승건 기자/

이어 남해의 매력에 대해 “남해는 제주도처럼 한적하고 멋진 자연경관이 제일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저 또한 바쁜 하루를 끝내고 퇴근길에 빨갛게 물든 노을과 바다를 보면 힘들었던 하루가 다 잊힐 정도”라며 “언젠가 바쁜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멋진 공간을 만들어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치유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은 꿈을 꾼다”고 부연했다.

또 귀향 청년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요즘 브랜드를 더 키워나가고 싶지만 같이 운영해 나갈 젊은 친구들을 찾기가 힘든 점도 고민이다”며 “젊은 친구들이 많이 귀향을 해 자신들의 꿈을 이루려면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주거 공간이 필수다. 청년들이 거주할 주거공간을 임대해주는 시설이 많이 늘었으면 좋겠고 좋은 조건의 대출 지원도 많이 확대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귀향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면 고향을 떠나 보다 넓은 곳에서 성실하게 열심히 역량을 쌓고 충분히 배우시길 바란다. 충분히 배우고 쌓으셨다면 고향으로 돌아와 조금은 척박할 수 있지만 기회의 땅에서 도전하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하고싶은 일 찾다 친구에게 산 카메라에 재미 느껴
서울서 3년간 회사 다녔지만 사진 찍고파 귀향
희소병 이겨낸 후 사진관 열고 예비 아내와 정착 꿈꿔

지역서 살아가는 이웃들 기록하는 프로젝트 진행
어르신·장애인 등 800여명 촬영하고 액자 선물
기회 무궁무진한 고향,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남해군 남해읍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양희수씨가 귀향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남해군 남해읍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양희수씨가 귀향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희귀난치병 극복’ 사진가 양희수씨= “꽃밭 또는 보물섬이라 불린 아름다운 섬에서 나고 자라 남해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해에는 줄어드는 인구를 사진으로 남겨 기록하는 사진가가 있다. 바로 마파람 사진관 양희수씨다.

남해군 인구는 지난달 말 기준 3만9939명으로, 이제는 인구가 4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2014년 4만6638명에서 지난해 4만780명으로 10년 새 5858명이 줄었으니, 연평균 585명이 줄어든 셈이다.

그는 스스로 줄어드는 인구수를 세어보며, 남해에서 터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기록하는 ‘남해사람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찍은 남해 사람은 대략 800명에 달할 정도다.

남해군 남해읍 마파람사진관./성승건 기자/
남해군 남해읍 마파람사진관./성승건 기자/

이 프로젝트는 사진관을 찾아오기 힘든 어르신들과 장애인, 다문화가정이 살고 있는 마을로 찾아가 촬영 후 액자에 담아 선물해 드리는 일이다. 촬영을 할 때는 그들의 웃음 가득한 모습을 보며 사진값으로 대신했다. 남해읍에 위치한 자그마한 그의 사진관에는 환히 웃는 이웃들의 사진들이 벽면 가득 걸려 있었다.

“여기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는 너무 멋지셔서 사진을 찍었는데, 따로 주소를 알려주시지 않으셔서 전달을 못하고 있었어요. 우연찮게 가족이 사진을 보고는 연락이 와 전해 드리게 됐어요. 바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이었어요. 영정사진으로 전해드리게 됐죠. 그 이후로 누군가를 보고 사진을 찍을지 말지 고민이 될 때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꼭 찍어 남겨두고 있어요.”

양씨는 카메라를 들게 된 순간을 “유치원부터 함께 자란 친구의 어머니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는 사건을 겪었다. 지금도 딱 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그때부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찾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쓰지 않는 카메라가 있다기에 30만원에 구매해 무작정 사진을 찍었다”라며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찍고 SNS에 업로드를 하자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 기분이 좋았다. 카메라를 든 나는 재미있는 놀이를 시작한 아이 같았다. 매일 학교를 갈 때도, 학교를 빼먹으면서도 사진만 찍었다. 밤을 새워 사진을 보정했고, 별을 찍고 싶어 어두운 곳을 찾아 공동묘지에 찾아가고, 남해에서 하동까지 걸어가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남해군 남해읍 마파람 사진관.
남해군 남해읍 마파람 사진관.

그는 “산악인 엄홍길 국토대장정을 함께하며 15박 16일 대한민국 최전방에서 사진기를 들고 동해에서 서해까지 약 350㎞의 DMZ를 걸으며 사진을 찍었는데, 인생에서 손꼽는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그때 인연을 맺은 분들이 자신의 회사에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하셔서 서울로 가게 됐지만, 3년 정도 회사 생활을 하다 다시 사진이 찍고 싶어 회사를 그만둔 적도 있었다”고 했다.

이후 큰 시련도 겪었다. 그는 “직업병 정도라 생각했던 통증이 디스크 검사를 받던 중 국내에선 생소한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이라는 희소난치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오른팔이 아픈 건 이 때문이었고 점점 신체 오른쪽의 감각이 무뎌지고 머리가 터질 듯 아팠다”며 “다행히 수술이 잘되어 몸이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반년에 한 번 가던 병원도 이제 2년에 한 번 간다. 큰 수술을 하고 돌아오니 살아있음에 감사했고, 사진을 계속 찍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예전에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사진으로 기록했지만 지금은 사진으로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사진관 마을에 신혼집을 마련해 아내가 될 김진아(34)씨와 함께 정착하려고 한다.

“저는 서울에서 살았을 때는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거든요. 나고 자란 지역에서 사는 게 맞는데 고향에 내려오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거든요.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도 남해에서 하고 싶은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해요. 청년들 누구나 여기 와서도 충분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남해군 남해읍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양희수씨./성승건 기자/
남해군 남해읍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양희수씨./성승건 기자/

◇남해군 청년정책= 특화 청년 정책 중에는 청년센터를 조성해 청년들과 커뮤니티 형성 및 교육과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청년네트워크 활동으로 도시청년과 교류, 정책 제안 및 문제점 토론 등을 통해 군정에 반영하고 있다. 또 ‘젊은농부 477 프로젝트’를 추진해 30~40대 7명이 7일간 다양한 농촌 체험과 영농기술 교육 등에 참가할 수 있다.

서면 서상리에 워케이션 센터를 운영하며 어느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며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근무하는 청년이나 프리랜서, 활동가 등 청년들에게 일과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김재경 기자 j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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