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돌아왔다, 귀향시대] (9) 창녕에 살어리랏다
고향 땅서 일구는 여유로운 삶… 행복은 기본, 재미는 덤
대학 다니다 육군 입대, 직업군인 근무
생산직 등 12년 일하다 회의감 들어
부모님 하시던 농사 매력 느끼고 귀농
아버지와 함께 마늘·양파·쌀 등 재배
40세 이하 청년단체 ‘요즘것들’ 리더로
농산물 프리마켓·기부·플로깅 등 진행
“수확 실패하거나 아이 아플 땐 힘들지만
가족들과 보내는 여유 시간 많아 행복
지역농산물 홍보·청년농부 보탬될 것”
“오랜만에 돌아온다는 느낌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 왔구나.”
12년간 직업군인과 회사 생활을 마무리한 뒤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는 이정윤(40)씨의 말이다. 창녕군 남지읍 드넓은 대지의 마늘밭에서 이씨를 만날 수 있었다. 한겨울 입에서 김이 나는 날씨에도 그는 평화롭다며 웃어 보였다. 이씨는 이곳에서 아버지와 함께 마늘과 양파, 쌀농사 등을 짓고 있다.
“제가 조금 게으른 편이거든요. 어불성설일 수도 있는데, 조금 게을러서 저에게 농사가 낫다 싶어요. 6월부터 8월까지 마늘을 수확하고 모를 심고 농번기에 새벽부터 밤까지 쉬는 시간도 없이 일을 하고 나면, 지금 이 시기에는 좀 여유로운 편이거든요.”

이정윤씨가 창녕군 남지읍 마늘밭에서 한파로 동결된 스프링클러를 살펴보고 있다./성승건 기자/
그는 남지읍에 있는 남지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 생활을 하다 39사단 육군에 입대한 뒤 부사관으로 장기복무했다. 군대 생활 6년, 기업 생산직에 근무하며 6년. 직장 생활을 하며 타지에서 생활하는 기간이 길었다.
그는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까지 “재밌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며 군대나 직장에서 상사와 관계나 불합리한 상황들을 많이 겪다 보니 사람들에게 회의감을 갖게 됐다. 군대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일반 직장도 마찬가지였다”며 “부모님이 하시는 농업을 생각하게 되었고 농업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라서 지금의 나에게 딱 맞는 일 같다는 생각을 갖고 귀농을 결정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어 “2018년 회사생활을 할 때 결혼을 해 2020년에 아들을 낳아 지금은 5살이다. 농사라는 직업을 택하고 시골에 산다고 하니 아내도 머뭇거리고 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지금은 더 좋아한다”라며 “제가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아내 얼굴 볼 시간 없이 밤에 일하고 낮에 잠을 잘 때도 있었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휴일도 거의 없었다. 아내도 어서 농사를 많이 돕고 싶어 한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적응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물음에 그는 “직장생활을 하며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틀에 갇혀서 지내고 자유의지를 펼칠 수 없는 환경에서 많이 지내다 보니, 귀향 후 지금은 농사를 지으며 지내는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마음이 편한 나날이었다”고 덧붙였다.
“돌이켜 보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과 여행을 가면 시간에 돈에 쫓기는 여행이었습니다. 모두가 정해진 시기에 가야 하다 보니 극성수기라 가격에 한 번 놀라고 여행지에서도 사람이 많아 여유를 즐기지 못한 시간이었다면, 현재는 농한기 시즌이 오면 여유롭게 다닐 수 있어서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타자고 아이와 얘기했는데 귀농 이후에는 어디 가까운 곳이라도 여유 있게 다닐 수 있어서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 느끼고 있습니다.”

창녕군 남지읍에서 마늘 농사를 짓는 이정윤씨가 트랙터를 정비하고 있다.
지난 2021년 이씨가 귀향한 이후 농사를 지으며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중 하나는 마늘밭 근처 하우스에 재배하는 샤인머스캣 농사를 완전히 망친 일이다.
“2023년 6월 저에겐 가장 힘든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해 샤인머스캣 수확을 앞둔 시기였죠. 그날 저녁 비가 너무 많이 왔고 천둥과 번개가 많이 쳐서 집에 가기 전까지도 하우스가 걱정이 되어서 확인하고 또 하고를 반복한 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았고 전 안심하고 모심기를 하기 위해서 새벽 5시부터 일을 하고 있었어요. 일을 빨리 마무리한 후 오전 10시에 하우스를 방문했더니 하우스 근처에 번개를 맞아 전기가 모두 나가버렸고, 측창이 올라가지 않은 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우스 안 온도가 50도까지 올라가서 그해 수확해야 할 포도 8000송이가 타버린 겁니다. 그 자리에 앉아서 아무것도 못한 채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같이 아픈 경험이 있어 그는 ‘농사는 하늘에 맡긴다’는 말을 실감한다고 했다.
“비가 오지 않아 땅이 좀 말랐는데, 오늘 같은 날은 물을 주려 해도 수도가 얼어붙었어요. 저 멀리 수도가 가까이 없는 땅도 있는데, 비가 안 오면 할 수 있는 게 없죠.”
귀향 생활이 이처럼 다 뜻대로만 되지는 않았다. 그는 “하우스에 새싹삼을 재배하려고 준비해서 정부의 청년 후계농 대출 지원사업에 선정됐지만, 정부에서 자금이 없어 지원이 늦어지는 바람에 하우스를 놀리고 있다”고도 했다.
“아이가 어릴 땐 맞아야 할 접종도 많고 감기나 작은 병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가장 가까운 어린이 병원이 창원이나 대구 쪽에 있어 시간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어릴 때와 비교해 보면 지역에 그래도 작은 영화관이라고 해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좋습니다.”
창녕에서 찾은 재미 중 하나는 40세 이하 청년들로 구성된 단체인 ‘요즘것들’에 소속된 일이다.
회원 중에는 농민도 있고, 농업 관련해 종사하는 이들도 있다. 현재 28명이 활동 중이다. 이 단체는 2020년 생태귀농학교를 수료한 이들 중 가입을 희망한 인원 15명으로 처음 시작해 이듬해에는 영농조합법인으로 등록했다. 이씨가 처음 리더는 아니었고, 지난 2024년부터 두 번째 리더를 맡고 있다.
이씨는 “단체 활동 중에는 화왕산 등산로 입구에 판매장을 운영하거나 프리마켓과 기부 마켓 행사에 꾸준히 참여하고, 주요 농산물인 마늘, 양파, 고추와 화왕산과 따오기를 캐릭터화해 우리만의 굿즈를 개발하고, 관광지를 돌아가며 플로깅을 진행하기도 했다. 소식지 ‘매거진 요즘’도 제작해 귀농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말이 통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유일한 탈출구라고 할 수도 있다”며 “서로 모여 대화 상대가 되고 같이 밥 먹을 친구도 되고 친목에 목적이 큰 단체”라고 덧붙였다.
이씨의 창고에는 단체에서 만든 상자들이 가득 있었다. 상자에는 ‘요즘것들’이라고 인쇄되어 있었으며 ‘청년농부들의 마음을 가득 담아 넣었습니다. 청년농부가 여러분께 제철의 향을 선사합니다’라고 설명이 붙어 있었다. 또 이보다 작게 ‘요즘 나오는 신선한 것들’이 적힌 상자도 있었다. 그는 “지금은 회원 각자 ‘요즘것들’에서 만든 상자에 자신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담아 판매하고 있는데, 앞으로 청년 농민들이 만든 농산물을 모아 꾸러미로 제대로 판매해보려고 한다”고 부연했다.

이정윤씨(오른쪽 두 번째)가 이끄는 창녕 청년단체 ‘요즘것들’이 유채축제장에서 활동하고 있다./본인 제공/
‘요즘것들’이 계획하고 있는 재밌는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지역에서 청년 농부라고 하면 ‘요즘것들’을 먼저 떠올려주시는 것 같아요. 그동안 군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관광지를 알리는 데 힘써왔습니다. 지난해는 다들 바쁘게 달려온 것 같아 휴식기처럼 보냈는데요. 올해와 내년에는 지역에서 축제 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넘어 창원이나 경북 청도군 등 타지도 찾아 즐겨볼 생각입니다. 또 단체에선 팜파티라고 해서 귀농귀촌 희망 청년을 초대해 우리의 농산물로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고 귀농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기도 했었는데요. 반응이 좋아서 올해 한번 더 열어볼까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활동하는 모습을 보시거나 SNS 혹은 귀농귀촌 강의, 군을 통해서 가입을 희망하시는 분들로부터 연락을 받곤 하는데요. 미래 청년 농부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으니 문의도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창녕군 청년정책
문화·주거·일자리 등 특화사업 추진
관외 거주 청년 맞춤형 사업 등 펼쳐
여가 활성화·숙박비 지원 등 노력도
◇창녕군 청년정책= 창녕군은 청년들의 문화와 주거·복지, 농업, 일자리 등 측면에서 다양한 특화 사업을 추진한다. 특히 창녕군에 생활근거지가 있고 창녕 청년이 되기를 희망하는 관외 거주 청년을 위한 맞춤형 사업들도 펼치고 있다.
군 미래전략추진단 관계자는 “올해 지역의 청년들을 위한 청년문화공간인 창녕 청년센터의 개관을 앞두고 있다. 기존 추진 중인 청년 동아리 활동 및 거리 공연(버스킹) 지원 등과 연계해 청년들의 소통과 교류의 중심이 되길 기대한다”며 “아울러 청년이 넘치는 창녕을 만들기 위해 생활 인구 증가를 위한 ‘나도창청인(나도 창녕 청년)’ 모집과 함께 여가 활성화 지원과 청년층 숙박비 지원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경 기자 jkkim@kn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