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칼럼] 최초 통제영으로 인한 지역갈등, 해법은?- 김태규 경남도의원(국민의힘, 통영2)

기사입력 : 2025-02-11 19:25:22

통영의 한산도는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이다. 이 명확한 사실은 역사적 고증이 이미 오래전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전라좌수영이 있었던 여수가 최초의 통제영이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24년 10월 전라남도의회는‘최초 삼도수군통제영 여수의 역사 바로잡기 촉구 건의안’을 채택했다. 이후 11월에는 여수시의회가 같은 건의안을 채택했으며, 전라남도와 여수시의 후원으로 민간단체가 통제영과 관련한 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핵심은 실제 통제영을 설치했던 한산도를 전진기지로 치부하고, 여수의 전라좌수영이 최초 통제영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단순히 귀납적 논증으로만 본다면 ‘전라좌수영의 본영은 여수다.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사와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했다. 그러니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은 여수다’라는 주장이 성립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선조수정실록’이나 이순신 장군이 직접 기록한 ‘난중일기’ 등 충분한 역사적 사료가 남아있고, 이미 고증을 통해 한산도가 최초의 통제영이라 증명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미국의 철학자인 어빙 코피(Irving Copi)가 말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불과하다.

통영은 약 300년 동안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명실상부한 통제영의 도시이다. 도시의 명칭부터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여 통영이라 부른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통영시민들에게 통제영은 지역에 대한 자긍심이자 정체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여수는 왜 최초의 통제영이란 주장을 계속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전라좌수영을 삼도수군통제영으로 격상시켜 지역의 명예를 높이고,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사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남해안 전역에서 활동했다. 삼도수군통제영도 최초에는 한산도에 설치했지만, 임진왜란 이후 잠시 여수의 전라좌수영이 겸하다가, 다시 통영으로 옮겨왔기 때문에 통영과 여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실제로 통영시와 여수시는 1998년 9월부터 자매결연을 맺고 행정, 경제, 문화, 예술, 관광, 체육 등 각 분야에서 상호교류와 협력을 이어오고 있으며, 2024년 6월에는 제27회 영·호남 생활체육대회(통영-여수)를 통영에서 개최하여 배구, 배드민턴, 볼링, 족구, 축구, 테니스 등 13개 종목에 체육인 500여 명이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최초 통제영으로 인한 지역갈등의 해법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바로 정부가 역사·문화유산의 발굴과 보존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다.

통영에는 삼도수군통제사 사적비를 비롯해 긴급한 조사가 필요한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여수가 최초 통제영이라 주장하는 이유도 전라좌수영 등 복원사업에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삼도수군통제영은 왜적의 침입에 맞서 싸운 선조들의 사적으로서 이를 발굴하고 보존하는 것은 후손으로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역사적 숙명이다. 따라서 통제영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확대될 때, ‘최초 통제영’에 대한 논쟁도 자연스럽게 종식될 것이다.

김태규 경남도의원(국민의힘, 통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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