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간이역] 졸음 - 김재순
기사입력 : 2025-02-20 08:05:45

책 펴자마자
살금살금 다가오더니
눈 크게 뜨고 노려봐도
놀라는 척도 하지 않고
헛기침을 해 봐도
물러서질 않더니
목소리 가다듬고 소리내어 책 읽으니
짐짓 놀라는 눈치
살짝 물러서는 몸짓
더 큰 소리 내야 물러서려나
죽비 대령하기 전에
넌, 좀 물렀거라
나, 숙제 좀 하자
☞숙제하려고 책을 펼치니 슬금슬금 잠이 온다. 눈을 크게 뜨고 헛기침을 해봐도 소용이 없다.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꾸벅 졸고, 연필을 쥔 손이 공책 위에 미끄러진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스님이 참선 중에 쓰는 죽비로 졸음을 협박하는 호기로운 아이. 숙제 좀 하게 물러나라고 호령하며 졸음을 이기려는 의지가 사랑스럽다.
책만 펴면 잠이 온다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책을 읽고 이해하려면 뇌의 후두엽, 측두엽, 전두엽을 모두 사용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가 많아 졸음이 온다고 한다. 독서를 하면 머리를 쓰게 되니 책을 많이 읽을수록 똑똑해질 것이다, 졸음만 극복하면!
억지로 숙제할 때는 잠이 오지만 재미있는 책은 밤을 새워 읽기도 한다. 내 책을 읽은 독자가 죽비를 대령하고 호통치지 않을까 생각하니 졸음이 싹 달아난다. 정친 차리고 재미있는 글을 써야겠다.
김문주(아동문학가)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