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석루] 글을 안다는 것은- 김영애(경남평생교육연구소장)

기사입력 : 2025-03-03 20:55:52

21세기 대한민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고학력 사회를 자랑하지만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필자가 글을 몰랐던 이들이 얼마나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지를 깨닫게 된 것은 한 사람의 학습자를 만나고부터다.

하얼빈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한 여성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나를 찾아왔다. 처음엔 호기심에서 비롯된 만남이었다. 그녀와 함께 한국어 공부에 관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갔다. 그 작은 만남의 시작은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한글 교실로, 다문화 여성들을 위한 한글 교실로 이어져 교육하게 됐다.

내가 만난 많은 학습자 가운데 유독 나의 가슴을 찡하게 만든 사람들이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같이 아버님이 오토바이로 등교시켜 주시던 칠십 대 어머님 학습자는 일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됐다. 그때, 두 분의 기쁨에 찬 선한 눈빛은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진동도서관에서 최초로 실시한 초등학력인정 과정을 졸업하신 60대 학습자는 방송통신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 사회복지과를 진학했다.

나는 비문해 학습자들에게 한 글자 한 글자를 배우는 기쁨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알게 되었으며 나 자신 또한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교육을 통해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에게 단순히 글만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길라잡이가 되고 싶었다. 또한 나는 학습자들이 글을 배우며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누리고 있는 글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값비싼 재산이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문자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힘이다. 글을 모르면 사람은 세상과 소통하는 폭이 좁아지고, 타인에게 의존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러나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면, 그 사람은 세상과 소통하며 자립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내가 만난 학습자들은 한 글자라도 배우고 나서 삶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세상과의 연결을 느끼며 더 이상 주눅 들지 않았다. 다시 한번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겨 본다.

김영애(경남평생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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