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1068) 방뇨유관(放尿儒冠)
- 선비의 갓에다 오줌을 누다

항우(項羽)와 7년 전쟁 끝에 승리하여 한(漢)나라를 세운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평민 출신이다. 선비를 특별히 싫어하여 갓을 쓴 선비를 보면, 갓을 벗겨 거기다 오줌을 누었다. 선비들에게 모욕을 주는 것을 즐겼다.
그때 숙손통(叔孫通)이란 선비가 있었는데, 진(秦)나라에서 박사(博士) 벼슬하다가 탈출하여 유방을 따랐다. 드디어 유방이 황제에 즉위하였다. 공신들 가운데 상당수가 유방의 시골 친구, 놈팽이, 주정뱅이 등등이 많았다. 조정회의를 하면 질서가 없고, 서로 자기 공훈 자랑하고 술 마시고 싸움했다. 심지어 칼을 뽑아 대궐의 기둥을 치는 자도 있었다. 유방이 황제에 즉위했지만, 권위가 서지 않았고, 골치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별 존재감이 없던 숙손통이 고조에게 “유교의 예법에 따라 조정의 법도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건의했다. 유교를 비웃던 고조는 “유교가 나라 세우는 데 무슨 도움이 되었다고?”라고 말했다. 숙손통은 “폐하!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지만,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고조는 “시험 삼아 만들어 봐! 다만 나도 알게 쉽게 만들라고.”
숙손통은 몇 달 걸려 조정에 필요한 여러 법도를 만들었다.
한 고조 7(기원전 200)년 마침 장락궁(長樂宮)이 준공되어 군신들이 모두 모여 축하연을 하게 되었다. 이때 숙손통이 정한 법도를 처음으로 시행했다. 황제는 중앙에, 문관은 동쪽에, 무관은 서쪽에 각자 자신의 계급 서열에 따라 정렬하여 섰다. 한 걸음 옮기는 데도 다 정해진 법도에 따라야 하니, 방자하던 공신들이 조심조심했다. 한 고조가 “이제야 황제가 존귀하다는 것을 알겠구나!”라고 하며, 유교의 가치를 인정하였다.
유교란 학문은 크게 보면 자신을 관리하여[修己]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治人] 학문이다. 개인의 존귀함을 인정하되, 각자가 해야 할 역할을 달리 부여하고 있다.
교향악단의 악기가 다 같은 소리를 내면 음악이 안 된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평등만을 강조하다 보니, 모든 악기가 같은 소리를 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민주주의가 만능인 줄 알았는데, 지금 세계 곳곳에서 문제점이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평등만 강조하다 문제가 생긴 민주주의를 다른 사상이나 종교의 우수한 점으로 보완을 해야만 민주주의가 지속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통령, 입법부, 사법부, 헌법재판소 등 거의 모든 기관이 비정상적인 국면에 접어들어, 이대로 계속 가면 나라가 운영될 수가 없다. 국민은 국민대로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꼭 유교뿐만이 아니라 사상이나 종교의 좋은 점을 잘 활용하여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과감하게 개선해 나가야 하겠다.
* 放 : 놓을 방. * 尿 : 오줌 뇨.
* 儒 : 선비 유. * 冠 : 갓 관.
허권수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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