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대형 산불] “하동까지 덮칠 줄이야” 날아든 불길에 공포
옥종초·중·고 임시대피소 추가
인원 800명대로 급증 ‘첫날 8배’
“대나무 타는 소리에 전쟁 난 줄”
“친구들이 산청 산불 얘기 듣고 (걱정하는 마음에) 전화할 때는 나는 괜찮다고 했지. 근데 순식간에 큰불이 우리(하동) 쪽까지 덮칠 줄은 몰랐어.”
24일 하동군 병천리 옥천관 임시 대피소. 이곳에서 만난 옥종면 두방마을 주민 김문성(여·63)씨는 지난 22일 자택 앞까지 화마가 들이닥쳤던 순간을 회상하면 여전히 심장이 쿵쾅거린다고 말했다.
김씨를 포함한 두방마을 주민 31명은 마을에 불이 옮겨붙은 22일 오후 1시 전후부터 5.5㎞ 떨어진 곳에 마련된 옥천관 대피소로 이동해 이틀 밤을 보냈다.
김씨는 “당시 바람 때문에 불씨가 날려 집 뒤편 이곳저곳에서 도깨비불이 일기 시작했다”며 “하동 일대에는 숲마다 대나무 군락이 많은데, 대나무가 불에 타 터지는 소리가 꼭 전쟁에서 화약 터지는 소리 같았다”고 손을 떨었다.

하동군 옥천면 옥천관 임시대피소에서 대피한 주민들에게 봉사자들이 식사를 나눠주고 있다./장유진 수습기자/
경남도와 하동군에 따르면 24일 오후 3시 기준 주민 대피 인원은 1143명이다. 산불 발생 첫날인 160명보다 8배가량 늘었다. 23일부터는 산불이 하동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하동군민들의 대피 인원이 급증했다. 23일 100여명이던 하동 지역 대피 인원은 하루만에 852명으로 급증했다. 대피소 또한 23일 옥종초등학교와 옥종중, 옥종고가 추가돼 각 100여명의 주민이 머물고 있다.
김씨가 거주하는 두방마을과 산불 최초 발생지인 산청 시천면은 7.4㎞ 떨어져 있다. 김씨의 남편 황말연(65)씨도 이틀 전 낮 산 능선을 넘어 온 불길에서 난생 처음 공포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황씨는 “산청 산불이 우리 마을까지 올 줄은 전혀 몰랐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공포였다”며 “짐이다 뭐다 챙길 정신도 없었다. 강아지를 혼자 둘 순 없어서 아내와 함께 반려견과 몸만 챙겨 피신했다”고 전했다.
두방마을에서 염소농장을 하는 조정순(64)씨에게도 이번 산불은 예상 못 한 재난이었다.
조씨는 “아무 대비가 안 돼 있었기에 마을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염소 걱정밖에 안 됐다”며 “지난해 1000만원을 들여 새 축사까지 지었는데, 하루아침에 생계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첫날에는 잠도 못 잤다”고 말했다.
지난해 두방마을로 귀촌해 새로운 집터를 꾸리려 했던 남춘희(62)씨도 “이런 불은 살며 처음 겪는다. 정착한 마을이 너무 좋아서 잘 꾸며 나가려는 마음뿐이었는데, 1년 만에 집 바로 앞까지 불이 났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전혀 몰라서 충격이 크다”며 놀란 마음을 드러냈다.
두방마을 주민들은 급작스레 피신했으나 귀가 일정은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옥천관에 마련된 재난현장통합지원본부 관계자는 “마을 인근에 일었던 불길은 잡은 상황이나 산불의 특성상 완전히 진화되지 않고서는 바람에 불씨가 날릴 위험이 있어 당장 귀가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병문 기자·장유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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