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포럼] 글쓰기 싫어하는 작가가 쓴 글쓰기 이야기- 천현우(작가)

기사입력 : 2025-01-20 19:38:29

내겐 남동생이 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고 지금도 게임 업계에서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다. 워낙 일을 잘해서 신입사원이 입사 1년 만에 팀장까지 달았다. 그 어렵다는 그림으로 밥벌이를 척척 해내는 원동력은 오롯이 동기에서 나온다.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리고 싶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가 동생을 움직인다. 펜 놀리는 일이 즐거우니 자리에 앉으면 기본 네 시간을 그린다. 잘 그리고 싶으니 퇴근해서는 공부한다. 인체, 색상, 구도, 디자인, 툴 사용법 같은 실무 서적뿐만 아니라 역사, 철학, 심리학 책까지 사놓고 본다. 좋은 창작자의 모범 사례로 둬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형이라는 놈은 정반대다. 명색이 작가인데도 글쓰기를 싫어한다. 더 잘 쓰기 위해 작법서를 찾아다니지도 않는다. 창작자로서 낙제점인 태도다.

난 대체 어쩌다가 한글 문서만 켜도 한숨부터 나오게 됐을까. 분명 처음부터 열정이 없진 않았다. 밤새 꼬박 글 쓰고 퍼지길 반복하며 마감 전날까지 공모전에 넣을 원고 붙잡던 시절이 있었다. 몇 안 되는 독자들을 위해 회사 퇴근하고 잠들 때까지 소설 카페에 올릴 글을 써대던 날들도 있었다. 그때가 즐거웠냐면 그냥 힘들기만 했다. 배움이 짧았고 짜다리 재능도 없는 내게 글판은 너무나 가혹했다. 도무지 노력 대비 성과가 안 나와서 남 몰래 펜을 꺾었다가 다시 잡기를 반복했었다. 보람보단 고통이 더 많았던 시기를 겪을수록 점차 글 쓰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아예 철저하게 수단으로만 사용하기로 마음먹고 나니 그제야 기회가 왔다. 운이 겹쳐 뉴미디어 회사에 에디터로 입사했고 책도 출판했다.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용접공이 글도 그럭저럭 쓴다는 독특한 정체성 덕이었다. 하청 공장 전전하는 삶을 안타깝게 생각한 사람들은 내가 앞으로 영영 현장을 떠나 전업 작가가 되리라 예상했다. 글쓰기를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제대로 고백하지 않아 생긴 오해였다.

글쓰기가 내 삶에 미친 영향은 분명 막대하다. 작가라는 직업을 얻었고 정기적으로 납품해야 할 콘텐츠가 생겼다. 내 또래들보다 더 많은 발언 기회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철저히 결과만 놓고 하는 이야기다. 글 쓰는 과정에서 통찰을 얻거나, 내면이 맑아졌다거나, 생각의 폭이 넓어진 경험은 없었다. 단지 내 머리가 받아들인 정보를 한글로 출력하는 능력만 늘었을 뿐. 지금도 글쓰기는 어디까지나 밥벌이 수단 중 하나로만 여기고 있다. 이렇듯 철저히 먹고 사는 관점으로만 보다 보니 글쓰기에 관한 글들, 마치 글쓰기가 아픈 마음의 만병통치약인 양 쓴 글을 볼 때면 온몸에 개미가 기어다니는 느낌을 받는다. 글쓰기가 삶을 긍정적으로 이끌었다는 주장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현실에서 안 쓰는 온갖 수사로 가득한 문장으로 글쓰기의 영향을 찬양하는 글을 보면 이게 실제로 겪은 경험인지, 단지 글쓰기를 팔기 위해 꾸며낸 말인지 구분이 안 된다. 내게 글쓰기는 그저 그림이나 영상처럼 단지 내면을 표출하는 기술일 뿐이다.

고 이외수 소설가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김훈 소설가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말을 전면 부정했다. 이외수의 소설은 전권 소장할 정도로 좋아하고, 읽어 본 김훈의 소설은 ‘칼의 노래’ 한 권이 전부이건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김훈의 생각에 더 공감하고 있다. 내 직업은 작가다. 돈을 받고 글을 쓴다. 좋은 글을 납품하기 위해 오늘도 타자를 두드린다. 글쓰기는 내게 닥친 현실이다. 괴롭고 싫은 작업이지만 해야 할 일이다. 최선을 다해서 임하겠지만 즐길 순 없다. 그저 직장인처럼 주어진 과제를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 노력한다. 글쓰기 싫어하는 작가의 글쓰기는 예술이 아니다. 고강도 노동이다.

천현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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