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포럼] 섬집아재- 이장원(쌀롱드피랑 대표·지역문화활동가)

기사입력 : 2025-02-03 19:29:44

어느새 필자의 섬 생활도 1년이 훌쩍 넘어가면서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는지 조금씩 섬집아재(?)가 되어 간다. 언제 봐도 가슴 설레는 아름다운 사량섬은 상도, 하도 2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두 개의 섬 사이로 푸른 뱀처럼 구불구불 흐르는 바닷물은 잔잔하고 편안한 풍경을 선사하기에 사량섬 주민들은 이곳을 ‘동강’이라고 부른다. 이 동강에서 온종일 반짝이는 윤슬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꼭 동화 속의 한 장면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필자가 사량섬에 오고 나서 종종 찾아서 듣는 노래가 있는데, 바로 ‘섬집아기’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개인적으로 언제 들어도 참 좋은 노래이다. 이쁜 그림책 같은 짧은 노래이지만, 뭔가 가슴이 따스하면서도 애잔하다. 필자도 가끔 혼자 몰입해서 듣다 보면 2절에서 바닷가에서 굴을 캐던 엄마가 갈매기 울음소리에 집에 혼자 있는 아기가 눈에 밟혀서 굴을 캐다 말고 바구니를 다 못 채운 채 달려오는 장면에서 왠지 눈물이 맺힌다. 아마도 어느새 동심으로 돌아가 애달픈 엄마의 사랑에 공감되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솔직히 섬에서의 생활에 불편한 점도 많지만, 역으로 섬이라서 좋은 점들도 많은 것 같다. 다만, 필자는 멀미가 심해서 배를 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다행히 ‘가오치항-사량섬’ 구간은 잔잔한 안쪽바다라서 출퇴근에 배를 타고 편하게 누워서 오다가 보면 어느새 도착한다는 것은 참 좋다.(아주 가끔은 풍랑으로 꿀렁거리기는 해도 그런대로 견딜만하고, 겨울엔 바닥이 따스해서 찜질방에 온 것 같아서 더 좋아라 한다.) 물론, 섬이다 보니 도시처럼 모든 편의시설이 다 있지는 않아도 면사무소와 보건소도 있고 마트, 편의점, 중국집, 치킨집, 커피숍, 분식집, 식당, 철물점 등 다양한 가게들도 있어서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다. 다만, 나름 다양하지만 조금은 한정된 먹거리의 종류는 늘 아쉽기는 하다.

그래도 늘 이렇게 멋진 풍경 속에 있으니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조금 익숙해지니 사량섬에 정다운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좋다. 게다가 지리산에 오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데 정말 북적이는 시기에는 배만 들어오면 바글바글 사람 구경하는 것도 참 좋다.

사량섬 하면 지리산 산행과 낚시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상도일주로와 고동산둘레길도 있어서 간단한 기분전환을 위한 드라이브나, 둘레길 트레킹만으로도 정말 많은 힐링이 된다는 것은 안비밀이다. 고동산둘레길은 사량도여객선터미널이 있는 진촌마을과 대항공설해수욕장이 있는 대항마을을 연결하는 오작교다. 편안한 치유숲길을 천천히 걷노라면 들려오는 산새소리와 숲 내음, 그리고 사이사이 보이는 바다풍경에 가슴이 탁 트여서 정말 자랑하고 싶은 둘레길이다.

필자가 섬집아재가 되어가면서 가끔은 바다를, 산을, 사람들을 구경하는 소소한 즐거움도 생겼다. 섬주민들과 정도 나누며, 바다와 함께 치유숲을 걷고, 해변에서 맨발로 어씽도 하고, 사량대교에서 야간산책도 한다. 그렇게 나와 만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마음의 여유도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어쩌면 오롯이 쉼이란 이렇게 문명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남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사량섬으로 간헐적 유배(?)도 와보시기를 권장하며, 새해에는 모두 행복한 미소 짓는 일들만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이장원(쌀롱드피랑 대표·지역문화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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