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세계 4대 미항의 꿈, 마산의 미래를 다시 그리다- 강창열(전 창원시 마산합포구청장)

기사입력 : 2025-02-24 19:17:42

마산은 아주 오래전부터 바다와 깊은 인연을 맺어 왔다. 신라 말의 학자 최치원은 마산 바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월영대를 쌓고, 합포별서를 지어 3년을 머물렀다.

고려시대에는 여몽연합군이 지금의 마산박물관이 있는 환주산에 정동행성을 두고, 합포를 통해 일본 정벌을 위한 출발지로 삼았다. 조선시대에는 영남 지방의 곡물을 조운선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지금의 마산 창동에 조창을 설치하기도 했다.

1899년 5월 1일, 마산포 개항을 기점으로 마산은 근대도시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 이후로 마산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도시로 성장해왔다.

개항 이후 마산은 어떻게 변했을까? 1908년 일본인 스와 부츠코의 ‘마산번창기 마산의 대관’ 편을 보면 마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잘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마산의 항구를 호주의 시드니항과 북아메리카의 샌프란시스코항에 이은 세계 세 번째 미항으로 빗대며, 그 미려한 풍경을 찬양한다.

개항 전후에는 ‘얼지 않는 천혜의 항만’인 마산항을 차지하려는 열강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일본과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마산항을 확보하려 했고, 1910년, 러일전쟁 직전에는 일본이 마산항을 통해 무기를 수송하기 위해 월포해수욕장을 폐쇄하고 철도를 깔았다.

이로 인해 마산의 해안선은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의 무분별한 매립공사로 마산의 자연경관은 점차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산은 여전히 아름다운 도시로 남아 있었다. 필자의 어린 시절, 1970년대 산복도로 위 산동네에서도 마산 바다는 훤히 보였고, 그 푸른 물결은 ‘가고파’의 한 구절처럼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며 마산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한때 마산은 ‘전국 7대 도시’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지만, 환경오염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점차 병들어갔고, 1990년대 마산만은 ‘죽음의 바다’로 불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마산이 가진 가장 큰 자원은 바로 바다이며, 바다를 통해 마산이 재부흥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제 마산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2025년 1월 21일, 홍남표 시장은 마산합포구의 300여명의 시민들 앞에서 마산만 바닷가 가치 회복을 선언했다. 홍 시장은 시민 친수공간을 조성하고, 바다와 도시를 입체적으로 연결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마산을 세계적인 항만도시로 성장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비전으로, 물의 도시 마산을 복원하고,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이러한 비전 발표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수변공원, 해양신도시, 돝섬을 잇는 멋진 바닷길, 현대화된 어시장과 도심 하천의 재탄생 등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비전을 실행에 옮기는 일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홍 시장의 원대한 구상이 하루빨리 현실로 이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세계 4대 미항, 마산’의 르네상스가 다가오고 있다.

강창열(전 창원시 마산합포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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