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며] 수오지심(羞惡之心)- 이준희(정치부장)

기사입력 : 2025-02-26 19:22:16

부끄러움을 모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치판의 작태를 보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모두 내가 잘났다고 아우성이다. 내 말, 내 주장만 옳고 다른 사람의 말은 전부 거짓말이다. 국민은 이런 정치 현실에 진저리를 낸다.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후회할 줄 알아야 한다. 적어도 그런 양심은 있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짐승과 다르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 측은 11차까지 가진 탄핵심판 변론에서 ‘의원 아닌 요원을 끌어내라 했다’, ‘국회 투입 군 병력은 봉쇄나 침투가 아닌 질서 유지 차원이었다’, ‘언론사 단전 단수 쪽지는 멀리서 봤지만 지시받거나 지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등 여러 가지 검찰 진술을 뒤집는 말을 했다.

또 정치인 등 체포자 명단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 측은 홍장원 전 국가 정보원 1차장의 증언에 대한 신뢰성을 문제 삼으며 그 자체를 부정했다. 자신을 향한 혐의 발언에 대해서는 ‘호수 위에 뜬 달그림자’, ‘뒷다리 잡는 이야기’라고 하며 폄훼했지만, 자신을 옹호하는 증언자에겐 “영어의 몸이 될 게 아니라 칭찬받아야 할 사람”이라며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적어도 그 발언이 진실인지 억지인지 정도는 안다. 지시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지시받은 사람이 부지기수다. 아무리 감추고 부인하려 해도 진실은 가려지지 않는다.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모든 것은 헌법재판소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탄핵정국으로 진영 간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극단적 대립에 국민은 더 분열됐다. ‘윤석열도 싫고, 이재명도 싫다’. 이것이 민심이다. 정치권은 이 말의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정치권을 혐오하는 발언들이 쏟아진다.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힌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역겹다, 정치권에서 안 봤으면 한다’고 강한 적대감을 표출했다. 갈수록 심화하는 정치적 양극화와 불신에 국민의 시름은 깊어진다. 기대보다 실망이 크기에 대한민국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슬기롭게, 지혜롭게 이 위기를 잘 극복해 내리라 의심치 않지만 불안하다.

정치인은 국가와 국민을 위할 때 진정한 정치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판은 어떠한가? 부끄러움을 모른다. 자신의 치부는 놓고 남의 부끄러움을 힐난한다. 어느 것이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인지 모르는 것 같다. 국민은 아는데 정치인은 왜 모를까? 자기부터 살려고 하니 국민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아닐까?

맹자(孟子)는 ‘공손추편(公孫丑篇)’에서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거론하며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도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수오지심은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의 사단(四端)인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의 하나다. 맹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원로 한학자 한송 성백효 선생은 신년 초 경남신문과의 특별 인터뷰에서 “정치란 올바르게 한다는 뜻(政者正也)으로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불의를 미워하는 ‘수오지심’을 지녀야 한다. 지금 우리가 가장 강조해야 할 것은 양심이며, 탄핵정국 수오지심’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이준희(정치부장)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준희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


  • -----test_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