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칼럼] 소설가들의 통영 여행- 노현수(소설가)

기사입력 : 2025-02-27 22:00:06

여든이 넘은 선생님을 모시고 제자들이 겨울 여행을 떠났다. 선생님의 젊은 한 시절이 묻어있는 통영이었다. 더구나 선생님의 장편소설 ‘해명(海鳴)’의 공간이기도 했다. 2박3일의 여정이었다. 아침에 서울역에 모여 창원역에서 내렸다. 렌트카 두 대에 나눠 타고 마산에서 아구찜을 먹고 통영 강구안에 도착했다. 우슬우슬 비가 내렸다. 소설의 제목처럼 천둥과 같은 소리가 먼 바다에서 들려올 듯했다.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박경리 기념관을 보고 묘지에 가서 절을 했다. 하동의 평사리 최참판댁과 원주 토지문화관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통영 앞바다를 바라보면서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고 말하는 소설가의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메아리처럼 다른 말도 귓가에 울렸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작가에게 큰 충격을 준다. 통영은 예술가를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곳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기념관을 내려왔다.

윤이상 기념관에서 한국의 정서와 소리를 서양 악기로 구현했다는 해설사의 말을 들었다. 직접 작곡한 음악도 감상할 수 있었다. ‘그 잔잔한 바다, 그 푸른 물색, 파도소리는 나에게 음악으로 들렸고 초목을 스쳐가는 바람도 나에겐 음악으로 들렸습니다.’라는 작곡가의 말씀 때문인지 음악에서도 통영의 바다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전혁림 미술관에서 본 그림은 바다의 화가답게 온통 통영이었다. 파란 바다 위에 섬들과 배가 떠있고 그 밑으로 물고기와 조개들이 춤을 추며 놀고 있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를 전혁림 화가가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광복하던 해인 1945년 9월에 통영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만들었다는 통영문화협회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30대 후반의 유치환, 20대 후반의 윤이상, 전혁림, 20대 초반의 김춘수, 그 젊은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을 상상하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박경리 소설가는 이때 갓 스무 살로 다음 통영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이런 예술가들을 품고 있었던 통영이 새삼 위대해 보였다. 그래서 이중섭 화가도, 백석 시인도 통영을 스쳐 지나간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뭉클했다.

서울로 돌아가기 전날, 달아 공원에서 석양을 바라보았다. 바다 위의 섬들이 노을빛을 받아 발갛게 물들어갔다. 우연히 소설의 캐릭터가 화제가 되었다. 하나의 캐릭터가 한 편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고 서브 컬처로 또 다른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서 둘째 용빈은 막내 용혜를 데리고 서울로 가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2025년의 대한민국에서 그 용빈과 용혜를 주인공으로 다른 자매들이 누리지 못한 최고의 행복을 느끼게 한다면 통영의 바다는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싶은 상상을 했다. 또한 게임의 설정을 소설의 구조로 치환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다. 게임의 캐릭터는 미션을 실패하면 죽지만 다시 살아나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소설 ‘토지’의 월선이와 용이를 살려내고 싶었다. 가상의 현실에서 부부로 맺어 그들의 아이를 낳아 기를 때까지 계속 게임을 하고 싶었다.

통영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선생님께서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통영중앙시장에 있는 복국 집이었다. 국물이 맑으면서도 진했다. 속이 확 풀렸다. 거장들의 도시에서 느끼는 선생님의 사랑, 통영의 맛이었다.

노현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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