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포럼] 아주 특별한 연주회- 윤재환(의령예술촌장)

저세상으로 먼저 가신 아버지는 동네 풍물패에서 꽹과리를 아주 잘 치는 상쇠였다. 그리고 지신밟기를 할 때면 앞소리도 참 잘했다. 그렇게 신나는 기운을 가진 아버지를 따라 어머니도 젊었을 때 마을 여성 풍물패의 리더로서 신나는 역할을 했다. 꽹과리를 치며 상쇠를 했는데 마을 앞 하천에서 면민 화합의 잔치인 체육대회와 더불어 열린 줄다리기를 할 때는 그 수많은 관중 속에서 신나게 꽹과리를 치며 온 시선을 사로잡고 승리의 흥을 극치로 끌어올렸다. 어느덧 긴 시간이 지나고 올해 구순이 된 어머니는 겨우 걸음을 떼면서 봄날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다.
공직에서 퇴직한 나는 나보다 6개월 뒤에 금융기관에서 퇴직한 동생과 교대로 어머니를 보살피며 고향집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따뜻한 햇살이 봄으로 안내하는 어느 날, 공직 은퇴 후 고향의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는 빈자리음악단의 동료인 김용수 선배와 시골 중국집에서 국물이 개운하고 깔끔하면서도 담백한 짬뽕 한 그릇을 먹고 시골집으로 동행했다.
새로 지은 아래채 방문 앞에 어머니와 나란히 앉았다. 주로 방안에서 생활하는 어머니에게 봄으로 가는 따뜻한 햇살을 쪼여드리기 위해 외출을 한 셈이다. 그리운 고향의 향수를 담아서 커피를 직접 내려서 마신 후 선배는 팬플루트로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동요인 ‘섬집아기’를 연주했다. 모성애가 담긴 가사처럼 또 곡의 선율처럼 애절했다.
어머니는 봄으로 가는 따뜻한 햇살을 쪼이며 때아닌 귀호강을 했다. 평범한 대화가 조금 어려울 정도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음악의 선율은 제대로 느끼는 듯했다.
유일하면서도 특별한 관객인 어머니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의 맑은 햇살만큼 환한 미소를 띠며 연신 박수를 쳤다. 연이어 김정호의 ‘하얀나비’와 어니언스의 ‘작은새’를 감성 가득 연주하고, 특별히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가슴 에도록 연주했다.
내가 받아서 연주를 이어갔다. 나도 클래식기타로 ‘섬집아기’를 연주했다. 같은 듯 다른 느낌의 모성애가 느껴졌다. 또 시를 쓰는 내가 즐겨 연주하는 캐나다 작곡가 프랭크 밀스의 ‘시인과 나’를 들려드렸다. 한 많은 세상을 살다 가신 아버지께서 힘들 때마다 즐겨 부르던 ‘희망가’도 연주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 아는, 그리고 민족의 애국가라 할 수 있는 ‘아리랑’을 팬플루트와 클래식기타로 구성지게 즉석 협연을 이어갔다. 사실이지 이 협연은 처음으로 시도를 해 봤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선배의 팬플루트와 나의 클래식기타 연주는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어머니는 곡이 끝날 때마다 웃음 가득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어머니는 9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음악회나 연주장에 가본 적이 없다. 그리고 악기 이름도 모른다. 그러니 그 악기 소리도 처음 들어보는 거다.
나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툴기는 해도 여러 곳에서 연주해 왔지만 정작 어머니 앞에서는 연주해보지 못했다. 오늘 어머니에게 연주하기 위해서 선배를 만나고 초대한 것은 아닌데, 따뜻한 햇살 쪼이러 나온 어머니 앞에서 커피를 마시다 자연스럽게 연주회로 이루어졌다. 어떤 격식과 꾸밈도 없이 그냥 편안하고 자유롭게 연주했다. 아마도 어머니에게는 이 연주가 생애 가장 특별하고 가장 고귀한 연주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여전히 햇살은 맑고 볕살은 따뜻하다. 그 봄으로 가는 시간 즈음에 햇살 쪼이러 외출 나온 어머니는 선배와 내가 연주한 음악을 감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누렸다. 일상의 소소한 시간 속에서 소박하게 나눈 연주가 생전에 누려보지 못한 아름답고 행복한 소풍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회색빛 주름 가득한 어머니의 얼굴 위에 아흔 번째 봄날이 찾아왔다.
윤재환(의령예술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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