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비정규직 노동자의 못다 쓴 계약서- 김태형(사회부)

비정규직 경비 노동자 김호동(57)씨가 지난 1일 자신이 근무하던 창원컨벤션센터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의 유서엔 고용승계 과정에서 겪은 부당함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가 숨진 창원컨벤션센터는 경남도와 창원시가 국비 및 지방비를 들여 2005년 개관했다. 이후 2023년까지 경남도가 위탁을 맡긴 서울 소재 ‘코엑스’가 센터를 운영해 왔다. 숨진 김씨의 소속은 경남도였을까, 코엑스였을까.
둘 다 아니다. 코엑스는 용역업체에 돈을 주고 센터의 건물 시설 관리 업무를 맡겼고, 용역업체는 노동자 고용부터 건물 시설 관리까지 도맡았다. 김씨는 2018년 9월 당시 코엑스가 용역을 맡긴 업체 소속으로 입사해 센터 경비 업무를 맡았다. 김씨는 입사 이후 2023년까지 5년여간 2곳의 용역업체와 10건의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2020년까진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다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2021년부터 2023년까진 3개월에서 6개월 단위의 ‘초단기’ 근로계약을 맺었다.
어떻게 이 같은 초단기 계약이 가능했을까. 한국 사회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은 직후 1998년 파견법이 제정되면서 비정규직이 본격화했다. 김씨와 같은 경비 노동자들은 원청이 용역을 맡긴 용역업체와 근로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근무를 이어왔다. 원청이 용역업체와 단기로 용역 계약을 맺다 보니 경비 노동자의 근로 기간도 짧아졌다. 용역업체가 바뀌면 고용승계를 걱정하고, 바뀌지 않더라도 계약 연장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고용불안은 숙명이었다.
고용 불안은 갑질 문제로 연결됐다. 부당한 대우나 불합리한 업무 지시가 있더라도 재계약과 고용승계를 위해선 참고 지내야 했다. 김씨도 마찬가지였다. 김씨를 비롯해 일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3~6개월 초단기 근로계약을 맺었던 2021년 6월부터 2023년 7월까지 2년 동안 당시 용역업체의 한 관리소장에게 수차례 폭언 등 갑질에 시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경남도가 공익성 강화를 위해 2024년부터 경남관광재단에 센터 위탁 운영을 맡기면서 김씨는 재단이 용역을 맡긴 용역업체 소속으로 고용승계가 됐다. 근로계약 기간도 1년 단위로 맺게 됐다. 11번째 계약이었다.
2024년 12월 말, 김씨는 늘 그랬듯이 새로 바뀌는 용역업체와 고용승계를 할 수 있을까 염려했을 것이다. 1월 1일 그가 숨진 자리에선 ‘겨우 3개월의 시한부 고용승계는 되었지만 무력감을 느낀다’고 적힌 유서가 발견됐다. 유족들은 1인 시위를 하며 원청인 재단과 용역업체에 책임을 묻고 있다. 오늘 도와 재단, 용역업체, 유족이 모두 모이는 첫 번째 자리가 마련된다고 한다. 부디 유족의 억울함이 없도록 책임 있는 자세를 기대한다.
김태형(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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