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석루] 이순신 장군이 남긴 경남의 지명들- 이봉수(이순신전략연구소장)

이순신 장군이 남긴 경남의 지명 중에 재미있는 곳이 많다. 1592년 음력 5월 7일 합포해전에서 승리한 조선수군은 창원땅 남포(藍浦) 앞바다에 도착하여 밤을 새웠다. 남포는 현재 지명으로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난포(卵浦)다. 난포는 약 30여 년 전만 해도 마을 이름이 이순신 장군의 기록과 일치하는 ‘남포’였다. 그러나 대구가 알(卵)을 낳으러 오는 동네라 하여 주민들이 앞장서서 마을 이름을 ‘난포’로 바꾸어버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난포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구산면 끝자락에 원전마을이 있고 바로 앞에 실리도라는 섬이 있다. 이 섬을 이순신 장군은 시루 ‘증(甑)’ 자를 써서 ‘증도(甑島)’라고 했다. 섬의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치 콩나물시루 위에 독을 올려놓은 것처럼 생겼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이 섬을 경상도 사투리로 ‘시리섬’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시리섬’이 ‘실리도’가 되어버렸다. 애통한 일이다.
이순신 장군은 지명을 언급할 때 관할 행정구역을 밝혔다. 예를 들면 남포의 경우는 창원땅(昌原地)이라고 했다. 특이하게도 증도의 경우에는 임진장초 당포파왜병장에서 하루 차이를 두고 첫날은 웅천땅이라고 했다가 다음날에는 창원땅이라고 했다. 그런데 엄격하게 말하면 남포나 증도 일대는 그 당시 창원땅도 아니고 웅천땅도 아닌 칠원땅이었다. 구산반도 일대는 칠원현의 월경지 속현인 구산현 소속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사천해전에서 승리한 날 모자랑포에서 하룻밤 자고 갔다. 이곳은 사천땅이지만 고성땅 경계와 가까운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모자랑포를 사천땅이라고 했다가 이후 일기에서 고성땅이라고 한 적도 있다. 개전 초기에 전라도 여수에서 경상도 해역으로 출동한 지휘관으로서 접경지의 경우 관할구역 파악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합포해전의 경우에도 이순신 장군은 해전이 있었던 장소를 ‘웅천땅 합포 앞바다’라고 했으나, 합포 앞바다는 창원땅과 웅천땅 사이에 있는 접경지라 웅천땅 또는 창원땅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해역이다. 중요한 것은 합포가 어디인지를 밝히는 일인데, 신라 경덕왕 이래 오늘날까지 합포라는 지명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마산뿐이다.
이봉수(이순신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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