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첫 이승만 하야’ 외쳤는데… 기록조차 없는 기념관
[기획] 다시 3·15 ② 기념되지 않는 그날의 사실들
4월 24~25일 할아버지·할머니 시위
진실화해위 ‘3·15 3차 의거’ 결정
3·15의거발원지·국립3·15민주묘지
두 기념관 모두 1·2차 의거만 다뤄
기념관 “중요성 알지만 공간 부족”
4월 혁명 과정에서 전국 최초로 이승만 하야를 촉구했던 시위는 1960년 4월 24일 마산에서 일어난 할아버지 시위다. 이 시위는 지난 2023년 12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며 ‘3·15의거 3차 의거’라는 공식 역사가 됐다.
하지만 이후 1년이 지났지만 마산 어디서도 3차 의거를 기념하는 곳이 없다. 창원시와 국가보훈부가 진실화해위로부터 ‘3차 의거에 대한 공공자료 기록 수정’ 권고를 받았음에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0년 4월 24일 마산 시내에서 진행된 할아버지 시위 현장에서 시위대가 ‘책임지고 물러가라 가라치울 때는 왔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경남신문DB/
◇3차 의거 외면한 기념관= 지난 11일 오후 방문한 국립3·15민주묘지 기념관.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이곳은 제1·2 전시관에 각각 1차 의거(3월 15~16일)와 2차 의거(4월 11일~13일)가 상세히 소개돼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3차 의거에 대한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3·15의거의 흐름을 보여주는 연표에도 2차 의거가 있었던 4월 13일 이후는 없었다. 희생자를 기리는 공간에도 기존 12열사뿐이고 추가 확인된 4명의 희생자 이름은 없었다.
창원시가 운영하는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도 마찬가지였다. 기념관을 돌아보는 동안 3·15의거 전후 역사와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하지만 1960년 4월 24일부터 27일까지 마산에서 있었던 시위를 유추할 만한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2023년 12월 진실화해위는 ‘할아버지·할머니 시위’와 ‘부산시위대 마산 원정시위’ 등 3·15의거 3차 의거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국가보훈부와 창원시에 ‘기존 자료와 공공자료에 내용을 추가해 왜곡을 바로잡을 것’을 권고했다.
이와 관련, 두 기념관 운영 측은 공통되게 3차 의거의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공간 부족과 예산 문제 등으로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국립3·15민주묘지관리사무소 관계자는 “1, 2차 의거만큼 3차 의거도 중요하기에 동등하게 소개해야 한다”며 “하지만 전시 공간이 협소해 단순히 3차 의거 내용을 추가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3차 의거의 중요성을 관람객들이 알 수 있도록 전시 공간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은 있다”며 “예산 편성 등 내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원시 관계자는 “12열사 초상화를 16열사로 수정하는 방안은 검토 중이었지만, 3차 의거에 대해서는 공간적 한계 때문이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며 “지금으로서는 진실화해위 조사가 마무리되면 한 번에 수정하는 방향이 될 것 같다”고 답했다.

12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 전시실에 3·15의거 2차 항쟁까지만 기록물이 전시되고 있다./김승권 기자/
◇할아버지·할머니 시위는?= 3차 의거 중 4월 24~25일 진행된 할아버지·할머니 시위는 민주화 운동 역사 전체로 봐도 의의가 크다.
1960년 4월 24일 마산 애국노인회 소속 할아버지 70~200여명은 ‘책임지고 물러나라, 갈아치울 때는 왔다’ 등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마산 거리를 행진했다. 경찰 총격과 부정선거를 규탄하던 그동안의 시위 구호와 비교하면 한 단계 높은 수위의 문구였다.
다음 날인 25일에는 할머니 200~400여명이 ‘죽은 학생 책임지고 리 대통령 물러나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마산 거리를 행진했다. 두 시위는 마산 시민들이 합세해 수만 명의 대규모 시위로 확대됐다.
할아버지·할머니 시위는 이승만 대통령 하야를 직접적으로 주장한 최초의 시위다. 이 과정에서 하야 요구 목소리가 엘리트 계층이 아닌 노인층 기성세대에게서 시작됐다는 데에도 의의가 크다. 3차 의거로 완성된 마산 3·15의거는 정치계와 학생, 소시민에 이어 노인층 기성세대까지 모든 세대가 아우른 연대였다.
지난 1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3·15의거 제65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에서 토론자로 나선 권혁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3·15의거 참여자들은 오늘날로 따지면 사회적 소수자들”이라며 “분노와 슬픔에 공감해 이뤄진 연대는 3·15의거의 독자성을 한층 강화시킨다”고 평가했다.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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