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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청년예술인 (22) 시인 이재성

해양문학 밝힐 등대 향해! 험난한 파도 헤치고 항해!

기사입력 : 2023-10-13 08:07:41

고교 때부터 시인의 꿈 갖고 국문과 입학
해군 입대로 시작된 바다와의 인연이

시 주제가 되며 2011년 신춘문예 당선
7개월간 꽁치잡이 원양어선 경험 연작시로

해양문학상 대상 받고 첫 시집도 탄생
“작품집 발간·개성 있는 해양 시 쓰고 싶어”

“파도 위를 방랑하는 선원들은 마음의 등대를 찾고 있다” 이재성 시인(36)이 201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당선되었을 때 쓴, 당선 소감의 첫 문장이다. 이때 당선작은 ‘마드리드 호텔 602호’라는 시다. 이 시에서 “나는 이미 길을 잃은 한 척의 운명/ 해도를 펼쳐 북극성의 좌표를 찾는다.”라고 했다. 당시 그의 바다는 그의 삶의 메타포가 아니었을까 싶다. 대학교 복학생이 지닐 법한 방황과 허무, 미래에 대한 불안이 녹아 있다. 그러던 그가 12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이제는 ‘마음의 등대’를 찾은 듯하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명확한 좌표를 지니고 있다. 다만 창작, 연구, 교육, 학교 업무 등을 동시에 소화하며 사느라 그 등대를 향해 나아가는 속도가 늦어지는 것 같다.

귀항을 명령받고 본국으로 이동 중인 이재성 시인.
귀항을 명령받고 본국으로 이동 중인 이재성 시인.

카페에서 만난 시인 이재성은 긴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개성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눌 때 해양문학에 대한 애정과 그것을 향해 나아갈 자신감이 풍겨 나왔다. “해양문학은 대양과 항해를 요건으로 해양 경제의 토대 위에 있습니다. 어업과 상업의 선상 경험을 바탕으로 문학적 장치를 활용하면서 작품을 생산합니다”라고 말한다.

문학 분야에 경제적 요소까지 언급되는 것이 처음엔 의아했다. 그러다가 그 경제라는 것이 거시적으로는 대항해 시대로부터 이어진 근대화의 스토리이며, 미시적으로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배경을 지닌 선원들의 에피소드라는 대목에서 이해가 되었다. 결국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쓴 게 아니라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인 해양문학이라는 것이다.

북태평양 봉수망원양어선이 어획한꽁치를 선별 작업하고 있다.
북태평양 봉수망원양어선이 어획한 꽁치를 선별 작업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 중 재밌는 것은 커피숍에 관한 에피소드다. 처음에 커피숍은 대항해 시대의 보험회사 사무실이었단다. 해양을 통한 상업권에 투자한 사람들은 투자한 배에 대한 소식이 적힌 게시판을 보기 위해 보험사 사무실에 자주 머물곤 했다. 이때 사무실 한쪽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그것이 나중에 커피숍이 된 것이라 하니 흥미롭다.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의 로고도 세이렌이다. 선박을 위험으로 몰고 갈 만큼 매혹적인 세이렌의 노래처럼, 유혹적인 맛의 커피라는 의미다. 어쨌든 소재가 바다이면 모두 해양문학이라고 여기는 것에 비해, 그가 설명하는 해양문학은 훨씬 깊고 넓은 안목을 열어 보인다.

해질녘 북태평양 바다 위 모습.
해질녘 북태평양 바다 위 모습.

이재성 시인이 이렇게 바다와 만나게 된 계기는 해군 입대다. 친구가 함께 지원서를 내는 바람에 우연히 해군으로 복무를 하게 되었다. 거기서 레이더를 읽으며 분석하고 보고하는 전탐병 업무를 수행했다. 바다에 떠 있던 많은 배들이 그의 레이더 안에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당시 그는 바다 속 섬에 갇힌 듯한 기분이었고 바다가 싫었다고 한다. 그랬음에도 그의 문학은 바다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이재성 시인은 고교 시절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다. 국어 시간의 시 창작에서 재능을 보여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이후 시인의 꿈을 갖게 되었다. 오로지 그 꿈을 위해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지만 당시 박태일 교수의 연구년으로 인해 시 창작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물론 대학 시절 내내 시 쓰기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러다 전역 후 2009년에 교내 ‘10.18 문학상’에 응모해 당선되었고 그 외에 김달진 문학제 등 다양한 지역 문학 관련 백일장에 나가 입상권에 들곤 했다.

귀항 후 제305 창진호 원양어선 전경.
귀항 후 제305 창진호 원양어선 전경.

2010년, 경남대학교에서 ‘청년작가 아카데미’를 개설해 1기로 수강했다. 여기서 정일근 교수(시인)로부터 자신의 글이 대부분 바다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이재성 시인에게는 운명적 만남이 시작된 셈이다. 정 교수는 ‘대한민국 해양영토대장정’이라는 프로그램을 추천하였고, 청년 이재성은 그의 추천을 받아들였다. 백령도-마라도-독도를 잇는 뱃길과 육로를 14박 15일 동안 승선 혹은 도보를 하면서 해양 경험을 갖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경험과 스무 살의 꿈, 허무 등을 엮어서 쓴 시가 신춘문예 당선작이 된 것이다.

망원경을 통해 바라본 바다. 배 한 척이 지나가고 있다.
망원경을 통해 바라본 바다. 배 한 척이 지나가고 있다.

이후 정일근 교수는 그에게 꽁치잡이 원양어선을 타라고 권했다. 이윤길 시인이 선장으로 있는 어선으로, 일반 원양어선보다 작았으며 힘든 조업을 해야 했다.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지만 이재성 시인은 무조건 따랐다. 정일근 시인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었는지, 해양 시를 향한 운명적인 끌림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 이 둘의 합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북태평양 한가운데서 단 한 번도 정박하지 못한 채 7개월간 혹독한 생활을 했다.

거기서 그는 조업과 함께 항해일지 쓰기를 담당했는데, 자신만의 항해일지도 따로 써 나갔다. 놓치기 싫은 장면이나 시상이 떠오를 땐 갑판의 파도 속에서 작업 중에도 기록하곤 했다. 일은 힘들었고 위험하였다. 함께 일하던 항해사가 조업 중 팔이 절단되어 사망하기도 했다. 조업을 마치고 육지에 도착할 때까지 시신을 곁에 두고 살았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연작시가 제6회 해양문학상 대상을 받았고, 첫 시집 〈누군가 스물다섯 살의 바다를 묻는다면〉으로 탄생한다.

이재성 시인.
이재성 시인.

그는 해양문학에 대해 상사병을 앓는 것 같아 보인다. 카페에서 나눈 이야기 대부분이 해양문학에 관한 것이다. 해양문학을 주제로 서사 시집을 포함한 작품집 두세 권을 발간할 계획이며, 현재는 해양문학 관련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해양문학 연구를 지도하는 은사는 한국해양대학교 구모룡 교수이고, 시 창작을 지도하는 은사는 정일근 교수다. 그의 연구 주제는 우리나라의 1960년대와 70년대에 쓰인 해양문학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조사하여, 나름의 해석을 하고 범주를 설정하는 작업인 듯하다.

시 창작에 대해서는 미학적 장치를 통한 개성 있는 해양 시를 쓰는 것이 목표라 한다. 정일근 시인의 시에 대해 “쉽게 읽히면서도 서정적이고 격조 있는 시”라고 하며, 정 시인의 문학 스타일을 따르는 듯하다. 아마 그가 말하는 미학적 장치라는 것에는 이런 요소들이 포함됐을 것이다.

이재성 시인.
이재성 시인.

앞으로 그는 시 창작과 연구를 통해 해양문학에 대해 더 깊이 천착하게 될 것 같다. 결혼하여 아내와 아이와 함께 살고 있으며, 대학의 강의와 기획(?) 업무로 매일 출근해 시간적 여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너는 양의 눈을 본 적이 있는가”라는 구절을 읽다가 새벽 첫차를 타고 대관령 양떼 목장을 찾아간 시인이다. 문학과 삶의 진실에 대해 애정과 추진력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그의 해양문학에 대한 강렬한 애정도 자신의 목표를 향해 직진하게 만들고, 조만간 그 좌표 지점에 도착하게 할 것이다. 이재성 시인을 통한 해양문학의 한 걸음 발전이 기대된다.

이주언 시인
이주언 시인

이주언 시인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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