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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청년예술인 (27) 조각가 백초희

힘든 삶의 상처, 예술로 보듬고 껴안다

기사입력 : 2023-11-17 09:11:02

3년간 공장서 일하며 부모님 병원비·빚 갚고

입시학원 다니며 대학 입학…그림·조각 몰두

2019년 러시아 국제대회서 회화로 ‘전체 1등’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는 예술의 역할 생각

꿈에 대한 동기·진심·위로 전하는 작가되고파”


백초희 작가가 ‘국화향을 따라 흘러든 기억’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가을비가 포슬포슬 내렸다. 백초희(29세) 작가를 만나기 위해 아트경남 호텔아트쇼가 열리는 창원의 한 호텔 전시장을 찾았다. 환한 얼굴의 백 작가는 성숙하면서도 겸손한 표정으로 손님을 맞았다.

출입문의 오른쪽으로 내면의 호수를 상징하는 듯한 욕조가 보이고 그 위로는 풀과 나무가 장식되어 있다. 욕조의 물은 노란색을 띤다. 물 색깔은 매일 변한다고 한다. 맞은편 창가 아래에는 그림이 몇 점 전시되었고, 창밖에는 하천을 사이에 두고 집들과 불빛이 옹기종기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 속에 삶의 얘기들이 세상을 밝히는 달빛처럼 제각각 피어나는 것 같다. 창가에 올려진 작품에는 호수와 숲과 새가 보인다.

백초희 작가는 원래 호수였다. 강물 밑의 땅이 위로 올라오면서 바닥이 드러났고 중심에서 흘러나온 물이 고여 호수가 되었다. 홀의 왼쪽에 전시된 그림은 꽃그림이다. 물망초, 나팔꽃, 산당화, 백합이 숲으로 둘러싸였는데 꽃들이 모여 숲이 되길 바란다고 한다. 새는 되고 싶은 존재를 상징하는 메시지로 인간의 어두움을 훌훌 털고 저 너머로 날아가길 바라는 소망이다. 즉 초월할 수 있는 존재를 말한다.


백초희 作 ‘발현’.

그녀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하면서 4년 동안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입양도 잠깐 맡겨졌다. 그러나 어머니와 다시 재회했고,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어머니와 새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그러나 다시 갑작스러운 이별이 찾아왔다. 2014년과 2015년에 어머니와 새아버지가 8개월 간격으로 세상의 별이 되셨다. 물론 새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좋은 기억이 없다. 그러나 백초희는 마지막에 간경화로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한때 ‘정말 난 아빠 운이 없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아빠를 싫어했어요. 하지만 투병하며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면서 뭐라 표현할 수 없이 마음이 젖어 들었어요. 그래도 다음 생에는 나의 아버지로 태어나달라’고 말하고 있더군요.”

백초희는 그렇게 3년 동안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며 부모님의 병원비와 빚을 모두 갚았다. 또한 콜센터를 다니면서 입시학원도 다녔다. 그리고 대학에 합격했다. 정말 기뻤다. 돌아보면 정말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간 시간이었다. 기쁨도 잠시, 학교에 오면 새내기 동기 친구들이 매주 주말마다 본가로 갔다가 평일에 돌아왔다. 잠시지만 친구들이 떠나고 난 자리는 허전했다. 그리고 막막했다.

“그게 얼마나 슬프고 힘들었는지 몰라요. 저는 돌아갈 곳이 없었으니까요. 자신에 대한 위로가 필요했는데 너무 내색하지 못해서 당연히 극복할 줄도 몰랐던 거 같아요. 그땐 동기들이 3살이나 어렸는데도 불구하고 전 어리광을 피웠던 거 같아요.”

그녀는 작품에 매달렸고 조각과 그림에 몰두하며 학사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백초희 作 ‘태백시에서’.

백초희는 창원대 조소과 재학 중이던 당시 회화작품으로 2019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미술 대회에서 부문 전체 1등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관람객들은 그녀의 작품에 대해 인간 내면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날카로움과 외롭고 쓸쓸한 인간성을 서로 보듬어 주는 따스함이 공존한다고 평했다.

이후 백 작가는 2022창원 성산아트홀에서 백초희 개인전 ‘숲’, 아트랩 와산 제주에서, ‘남겨진 이들에게’, 2023 루트갤러리 부산에서 백초희 개인전 ‘Soaring’ 등 다수의 전시회를 열었다.


백초희 作 ‘나를 데려가줘’

“놀라운 건 열심히 준비한 전시에 모르는 다섯 명의 관객이 제 작품을 한참 들여다보고는 울고 간 거죠. 방명록에는 ‘자신의 슬픔과 상처를 드러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어요” ‘그림을 전시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요’라는 편지도 여러 통 받았다.

“제 작품이 더 이상 저의 단점이 아니었고 장점으로 변화하는 순간이었어요. 저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당신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었고, 그런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그게 너무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저는 예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이 저의 터닝포인트가 된 거 같아요.”

그림 수업에 관해 묻자, 그녀는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고 한다. 백초희 작가는 특성화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때 동아리로 조소과가 있었는데 손가락으로 흙을 주물러서 원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 내용을 체계화하여 2018년도에 ‘지두화’라는 수업을 진행하여 많은 연령층으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백초희 作 ‘사람은 가까이, 새야’.

감정에 관한 이미지 표현 방법으로 백 작가는 선행작가 3인을 말한다. 케테 콜비츠. 그는 슬픔을 아들을 껴안고 짐승처럼 운다. 감정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반대로 이중섭 화가는 지독한 가난으로 짧은 생애를 마감했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고통 속에서도 해학적이고 유쾌한 희망을 그린 화가다. 백초희는 그 중간을 찾는다. 새로운 것들로 어떻게 따스함을 채우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채움의 방식’을 모토로 하는 장욱진 작가가 있는데, 삶과 작품이 일치하는 분으로 백초희가 존경하는 미술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모토는 따스함에 대한 것들로 가족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룬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 언제나 자신을 비우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아끼고 존중한다. 그 작가는 아이에 대해 많이 얘기하셨다. 그는 아이가 어렸을 때 잃었고 그 점은 백초희와 닮았다.


백초희 作 ‘나의 유일한 호수’.

백초희에게는 20대에 슬픔이 있었고 그 안에 유년도 숨어 있었다. 비 온 뒤의 땅이 더 단단하다. 그녀의 바람을 묻자 “나쁜 환경으로 인해 사람들이 슬픔이나 상처가 너무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가 병들지 않기를, 세상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방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설사 그런 곳에 머물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햇볕이 비추는 세상을 신비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꿈에 대한 동기를 제시해주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저의 따스한 진심이 세상 곳곳에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했다.

백초희 작가는 30대에 접어들었고 그녀는 이제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엄마의 빈자리를 잘 정리해서 말할 수 있다. 그녀는 웃으며 말한다. “모든 이에겐 슬픔을 뛰어넘어야 하는 시기가 옵니다. 사람마다 더디고 다를 뿐 상처보다 더 많은 사랑이 쌓여 언젠가는 새처럼 저 너머의 삶으로 넘어가기를 바랍니다.” 백초희 작가는 내년에도 개인전과 다수의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다.

홍혜문(소설가)
홍혜문(소설가)

홍혜문(소설가)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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