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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청년예술인 (25) 한국무용가 김완수

변화무쌍한 한국춤 변화 이끌며 전통춤 계보 잇다

기사입력 : 2023-11-03 08:00:11

중학교 때 농악 접하며 한국춤 매력에 빠져
동아무용콩쿠르 금상 받으며 무용계 샛별로
우리춤 세계에 더 알리려 체계적 연구·공부
전통춤을 한국적으로 창작하는 데도 노력
춤의 고장 경남서 ‘세계춤축제’ 열리길 기대

“한국춤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스러운 선의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흐르다가도 휘몰아치고, 다시 공허한 세계로 나아가는 그 변화무쌍한 움직임이 저를 춤의 세계로 끌어당겼지요. 그 매력에 빠지고부터 잠시도 춤에서 떠날 수 없었습니다.”

중학교 때 우연한 계기로 동네 선배를 통해 농악을 접한 것이 인연이 되어 국악예고를 거쳐 대학원까지 오직 한 길 춤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김완수 씨. 올해 서른다섯인 그는 현재 양산에 거주하면서 전국을 무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어엿한 프리랜서 한국무용가이다.

살풀이춤을 추고 있는 젊은 춤꾼 김완수씨. 그는 천천히 흐르다가도 휘몰아치고, 다시 공허한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춤의 변화무쌍한 매력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고 싶다고 말한다.
살풀이춤을 추고 있는 젊은 춤꾼 김완수씨. 그는 천천히 흐르다가도 휘몰아치고, 다시 공허한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춤의 변화무쌍한 매력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대학을 민속무용과로 진학하면서 뒷바라지에 고생한 부모님에 대한 보답은 춤에 진심을 다하고, 실력으로 이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춤 연습에 몰두했다. 그리고 대학 2학년 때 실력검증 차원에서 부담 없이 나갔던 무용계의 최고 권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일약 한국무용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그는 이후 전국전통예술경연대회와 전국국악대전 등 유수의 대회에서 최고상을 휩쓸며 춤 실력을 인정받았고, 급기야 졸업 후에는 부산국립국악원 준무용단원으로 뽑히면서 선후배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안정적인 직업무용수 자리를 박차고 대학원 진학으로 진로를 확 바꿨던 것이다.

“그땐 춤을 좀 더 잘 추고 싶었고, 춤을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기량을 닦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의 다른 춤과 비교해서 한국춤의 매력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그것을 제 것으로 완전히 익혀서 다시 세계에 알리고 싶었던 거지요. 사실 우리춤의 매력에 비해 총체적인 마케팅의 부족으로 세계가 덜 알아주는 것 같아 늘 아쉬웠거든요.”

김완수씨의 한량무.
김완수씨의 한량무.

K-POP 댄스에 비해 한국춤이 과소평가되는 것을 못내 안타깝게 여긴 그는 잠시 방황 끝에 대학원까지 진학해 한국춤을 더 체계적으로 깊이 있게 공부하기로 결심했던 것. 그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자칫 사라질 뻔한 우리춤을 집대성하여 민속무용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한국 근대춤의 대표적 인물 한성준 선생의 춤과 삶을 연구하는 것을 시작으로 삼았다. 춤 연습도 좀 더 전문적이고 세심하게 다가갔고, 춤을 둘러싼 예술과 기술들, 이를 테면 노래와 음악, 연출과 음향 등에 대해서도 폭넓게 공부했다. 더불어 전통춤 공연에 못지않게 창작춤 작업에도 열정을 태웠다. 2015년엔 ‘김완수의 춤’ 개인 발표회를 가졌고,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내리 3년은 ‘춤으로 만나는 아시아’ 행사를 지도하고 출연까지 했다.

그의 춤은 한국춤의 대가로 알려진 고 한영숙 선생의 계보를 이어받았다.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였던 고 정재만 선생과 김미숙 교수(경상국립대)로부터 승무와 살풀이춤, 태평무를 비롯해 한국춤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사사받았다. 한영숙 선생은 앞서 언급한 한성준의 손녀로 태평무, 승무, 살풀이춤, 비연무 등의 전판을 구사한 당대의 춤꾼으로 한영숙류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면면이 이어오고 있다.

“저는 춤은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호흡이 가장 중요한데, 이 호흡을 통해 부드러움과 단단함을 조화롭게 조절합니다. 상황과 시간에 따라 미묘하게 변하는 감정과 동작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절대 출 수 없는 것이 춤이니까요. 저는 춤을 통해 제 삶을 돌아보고 용기를 얻습니다. 오랫동안 춤과 함께 살아왔지만 춤만큼 편안한 것도 없고, 춤만큼 무서운 것도 없더라구요. 춤한테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못해요.”

김완수씨의 선비춤.
김완수씨의 선비춤.

그의 춤을 본 윤중강 무용평론가는 그를 일러“큰 줄기와 본 가락을 알았으니 일찍이 춤의 순리를 터득했다”며 ‘통(統)을 아는 춤꾼’이라 평가한다. 그는 장차 어떤 춤꾼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물음에 “전통춤을 가장 한국적으로 창작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춤꾼”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한국 무용계에 부는 변화의 바람과 기술의 발달이 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그는 젊은 예술인답게 열린 태도를 보여준다.

“오케스트라와 한국춤의 협업도 좋고, 미디어아트를 춤에 적용하거나 무용과 인공지능을 결합하는 공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지난해 국립부산국악원과 한국문화재재단의 공연에 출연하고 총기획도 맡아본 경험을 살려, 시대와 소통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한국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게 요즈음 과제라고 말한다.

김완수씨의 승무.
김완수씨의 승무.

안정적인 수입이 없어 힘들긴 하지만 공연과 강의를 통해 보통의 생활은 꾸려가고 있다는 그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춤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라고 힘주어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소규모 공연과 연습을 할 수 있는 다목적홀이 좀 더 많았으면 한다는 것과 ‘춤의 고장’으로 불리는 경남에서, 동서고금 아니 세상의 모든 춤을 불러오는 ‘세계춤축제’ 같은 행사를 개최해 보면 어떨까 하는 희망 섞인 제안도 해본다. 인터뷰를 마치고, 안무와 무대연출을 좀 더 배워야겠다며 독일행 비행기에 선뜻 몸을 싣는 그를 보며 춤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춤의 매력에 빠져 일찍이 한국춤의 순리를 터득하고, 그 계보를 이을 춤꾼으로 우뚝 선 김완수씨. 그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김우태(시인)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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