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ON- 도희주의 반차 내고 떠나는 Trip in 경남] (13) 진해 바다 70리길 나들이 코스
그 海 가장 아름다운 봄
경칩. 봄의 서막처럼 며칠 비가 내렸다. 꽃소식은 예년에 비해 더뎌도 곧 동시다발로 피어날 것이다. 사람들이 흘깃거리며 벚나무 가지 끝을 예사롭지 않게 쳐다본다. 이제 곧 그 ‘때’가 올 것이다. 아직은 나목이지만 귀를 대면 물관부의 수액 이동 소리가 분주할 것이다. 땅속의 자양분을 나무뿌리에서 기둥을 거쳐 수많은 잔가지로 바쁘게 전달하며 소리 없이 요란한 계절! 나무도 땅도 사람도 분주해지는 계절! 봄의 향연은 단연 벚꽃. 경남의 벚꽃 명소 진해를 미리 찾아간다.

초승달 모양의 선착장을 품고 있는 행암마을. 행암선착장 바로 옆은 기찻길이다. 진해선의 일부로 지금도 기차가 다니고 있다.

해안선 따라 해군상생길 달리자
잔잔한 수면 너머 ‘진해루’ 위용
애환 스민 ‘진해 경화역’ 부터
이국적 건물 ‘행암문예마루’까지
진해만 바라 보며 바다오감 만끽
◇진해루, 봄을 펴놓고 바다를 읽다= 진해 방면 안민터널(1810m)을 벗어나 진해역 방면 고가차도 우측 옆길로 접어든다. 통행량은 많지 않으나 지리적으로 속력을 낼 수 없다. 봄 햇살이 차를 데워 복사열로 승용차 내부가 훈훈해지더니 이내 슬슬 더워진다. 현재 바깥 기온 섭씨 15도.
태백사거리에서 ‘해군상생길’을 달린다. 이 길은 지역민의 교통 편의를 위해 해군부대를 관통하는 700여m의 거리에 폭 12m의 길로서 2018년에 개통했다. 우측은 시설 전담 부대이며 좌측은 해군교육사령부다. 길 끝이 진해만과 마주하는데 너른 품으로 오는 이들을 마중하고, 가는 이들을 배웅하는 듯하다.

진해 시내와 진해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진해루’.
좌회전이다. ‘진희로’를 주행하며 곁눈으로 바다를 읽는다. 잔잔한 수면 위로 윤슬에 눈이 부시다. 저만치 진해의 명작 ‘진해루’ 위용이 드러난다. 진해루는 2층 누각으로서 팔작지붕에, 지붕은 한식 기와를 사용했다. 근처 노상주차장에 주차한다. 바람에도 봄빛이 묻어온다. 그래서일까. ‘진해루’ 일대에 시민들의 모습이 다양하다. 혼자 걸으며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 삼삼오오 걷는 중년, 반려견과 함께 걷는 사람. 이어폰을 끼고 달리는 젊은이들의 경쾌한 움직임이 봄의 물관부를 분주하게 관통하는 중이다. 진해루 옆엔 거북선 모형의 미끄럼틀이 진해만을 응시하고 있다. 하필이면 내부공사로 진해루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던 게 아쉬웠다.
◇선착장과 철로, 그리고 행암문예마루= ‘진희로’를 지나 충장로를 달린다. 벚나무들은 아직 봄빛을 틔우지 않고 있다. 지난겨울 혹한으로 예년에 비해 개화 시기가 늦어진다고 한다. 잠시 후 풍호오거리. 편도 2차로. 파란 이정표 아래 노면엔 레일이 있다. 자동차와 보행자 구역엔 레일이 반질반질하다. 그러나 그 너머 좌우 철로는 붉게 녹슬어 바람만 달리고 있다. 철로의 소실점 끝을 실눈 뜨고 바라보니 금방이라도 기적을 울리며 역동적인 모습으로 기차가 달려올 것만 같다. 진해역과 진해 경화역은 폐역이 됐지만 진해는 물론이며 진주, 창원, 진영 등지를 오가면서 통학과 출퇴근을 비롯해 오일장을 찾아들었던 서민들의 애환. 비록 녹슬었으나 과거의 역사를 철로는 묵언으로 말해주고 있다.

행암선착장 옆 철로.
진해항 1부두의 높다란 벽이 끝나는 부분에 잠시 가려둔 진해만이 드러났다. 청록색과 파란색 사이의 빛깔이다. 진해 바다 70리 길 해안선을 따라가면 대부분 갓길에 주차선으로 그어 주차장으로 쓴다. 행암선착장.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스탠드에 잠시 앉으니 저만치 왼편 언덕배기에 외관이 독특한 건물이 보인다. 행암문예마루. 벽면에 기대듯 서 있는 나목과 건물의 계단이 이국적이다. 아마 타지에서도 보기 드문 디자인일 것이다. 행암문예마루는 행암전망대를 리모델링해 문화예술 창작 공간으로 조성했다. 명칭은 시민들의 공모로 선정됐으며 입주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데 일반인들도 출입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진해만을 바라보며 입주작가들의 작품 행간엔 바다의 오감이 짭조름하게 펄떡일 듯하다.

행암전망대를 리모델링해 문화예술창작공간으로 조성한 ‘행암문예마루’.
‘삼포로 가는 노래비 공원’ 가면
강은철이 부른 노래 감상 가능
조선시대 읍성지 ‘웅천읍성’
현재 동쪽 성벽만 온전히 남아
바깥쪽엔 이름 새긴 명문석도
◇웅천읍성 가는 길= 가로수의 수종은 동백나무·소나무·벚나무들로 혼재해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애기동백꽃이 소담스럽게 피어나고 있다. 그리고 아직 꿈길을 걷고 있을 벚나무 가지들이 공중에서 아치를 이루고 있다. 벚꽃이 피면 벚꽃 터널을 따라 사람들이 오갈 것이다. 벌써 가슴이 설렌다.
내비게이션에는 ‘웅천읍성’을 입력했다. 그리고 명제로를 서행하다가 우연히 우측의 ‘삼포로 가는 노래비 공원’을 발견했다. ‘삼포마을’ 표석엔 작년 1월에 제작한 표기와 함께 ‘길 가는 나그네도 발길을 멈추는 포근하고 아늑한 마을’이라며 발길을 잡아끈다. 그리고 작은 공원 안쪽으로 노래비 조형물이 소담하다. 설명대로 우측의 버튼을 눌렀다. 벤치에 앉아 전주곡과 함께 강은철 가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고개를 끄덕여가며 손뼉도 치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노래비 너머 작은 어촌이 삼포마을이다. 머잖아 벚꽃이 드리우면 삼포로 가는 발걸음도 들뜨지 않을까.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 공원’은 이혜민 작사·작곡가가 삼포를 배경으로 만든 노래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됐다.
삼포노래비 공원에서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600여m 지났을까. 우측에 상호가 특이한 음식점이 눈에 들어왔다. ‘거영수산in해녀의집’ 근처엔 주차한 차들로 문전성시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침, 중년의 해녀가 검은 잠수복 차림으로 음식점 앞을 오갔다. TV에서 본 잠수복 그대로다. 다음에 지인들과 꼭 와야겠다고 다짐하며 명제로에서 남문동 아파트 단지로 우회전한다. 웅천서로 접어들어 제덕교 아래를 지나 불과 500m 정도. 좌측에 성벽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한눈에 봐도 성벽이 이국적이다. 갑자기 중세 유럽에 뚝 떨어진 느낌.
◇안타까움과 위대함, 웅천읍성= 웅천읍성은 조선시대 웅천현(熊川縣)의 정치·경제·행정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성내 건물들은 사라지기도 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성벽 또한 온전치 못했다. 더군다나 남벽과 서벽은 후대의 민가나 학교 등의 건립으로 부분이 훼손되었고 북벽은 국도 개발 과정에 매몰되어 지표엔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나마 동벽은 양호해서 복원 과정을 거쳐 우리 역사의 문화유산으로 남았다.

조선 초기 수군절제사영(水軍節制使營)으로 구축한 석성인 ‘웅천읍성’.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사진은 동문 성벽 위.
동문 앞에서 숨이 멎는 듯했다. 주변은 오래된 주택가다. 우체국 건물 벽에 바짝 붙어 골목 사이 가까스로 동문의 앵글을 잡는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길게 이어진 성벽을 주시하며 뜻밖의 풍경에 말문이 막혔다. 지금껏 봐왔던 성벽이 아니다. 커다란 바위 하나하나가 어긋남이 없다. 게다가 어느 하나 똑같지 않다. 네모반듯한 돌·넓적한 돌·사다리꼴 돌·역삼각형의 돌·옴팍한 돌. 그 틈새엔 제각각의 돌멩이로 빼곡하게 메워놓았다. 그리고 돌 하나하나의 색도 천차만별이다. 희끗희끗하고 거무스름하고 누르스름하거나 암갈색으로 똑같은 색은 보이지 않는다. 단단한 바위로 빚어낸 조각품 같다. 벽 따라 조명 장치가 이어져 있다. 야경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웅천읍성은 옹성(甕城)이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다른 성벽을 둘러쌓은 이중 형태의 성벽이다. 이는 성 내부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역할을 했다. 성벽 바깥쪽에 ‘명문석(銘文石)’ 팻말과 안내판이 있다. 명문석은 읍성을 쌓은 사람들의 이름·출신·고을 이름을 함께 새긴 돌이다. 구간마다 책임자의 이름을 기록하여 읍성을 지은 뒤 발생하는 문제 등을 관리하기 위한 용도였다. 웅천읍성에서 5개의 명문석이 발견됐는데 당시 진주·창녕·청도·합천 고을로 경상도 전역의 백성들이 동원됐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웅천읍성 성벽 바깥쪽에 위치한 명문석. 읍성을 쌓은 사람들의 이름, 출신, 고을 이름이 새겨져 있다.
철제계단을 올라 동문루와 주변을 둘러본다. 동문 안으로 둥근 형태의 성벽은 예술품이다. 성벽 앞을 흐르는 하천은 방어 시스템의 하나인 해자(垓子: 성이나 고분 주위를 감싼 도랑)다. 해자를 잇는 조교(弔橋: 양쪽 언덕이나 강가에 줄이나 쇠사슬로 매달아 놓은 다리)도 볼 수 있다.
2022년부터 웅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웅천읍성한마당축제는 지난해 3회째를 맞이했다. 590여년의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전통성 가치를 알리며 하마비 행차, 조선수군 행렬, 웅천막사발 행렬, 웅천초 사물놀이, 초등부 읍성 그림그리기 등으로 지역민과 함께하는 행사였다고 한다.

웅천읍성 동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보이는 풍경.
성벽을 따라 걷고 다시 해자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하늘을 가리고 있는 먹구름이 조금씩 밀려가고 있다. 이 성의 완전체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무분별한 개발로 나머지 부분을 복구하지 못한 게 아쉽다. 반면,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가 끊임없는 개발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어낸 현실을 감안하고 우리가 수용해야 할 부분 같다. 물론 진한 아쉬움은 남겠지만.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며 내 안의 낡은 풍경을 끄집어내어 비교하고 미래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오늘은 오래된 풍경에서 새로움을 만났다. 그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운 하루였다.
〈여행 팁〉

진해루
1) 진해루=창원시 진해구 진희로 142에 소재. 연면적 477㎡에 가로 28.4m, 세로 16.8m, 높이 15.2m로서 비교적 규모가 큰 누각이다. 해안가 따라 산책하기 좋다. 시내와 진해만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주요 문화행사 장소로도 활용된다.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
2)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 공원=이혜민 작사·작곡가는 고교 시절 자전거로 전국을 여행하던 중 진해 삼포에서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삼포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 1983년에 발표된 이 곡은 한국적인 서정성과 아름다운 선율로 7080세대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삼포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텔링이 담긴 이 노래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 바로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 공원’이다.

웅동읍성 동문
3)웅천읍성=창원시 진해구 성내동·남문동·서중동에 걸쳐 있는 조선시대 웅천현의 읍성 터. 조선 세종 21년(1439년)에 만들어졌으며 문종 5년(1451년)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동·서·북에 수로를 만들어 성 일부를 확장했다. 현재는 읍성의 동문 벽과 동문 터만 남았는데 동문 터의 너비는 4m에 이른다.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5호로 지정(2021년 문화재 지정 번호는 폐지되면서 기념물로 재지정)됐다.
도희주(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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