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9주년 특집] 창원 다호리 역사로 향하는 길 (下) ‘다호리 사람들’ 뿌리를 찾아서
다호리 무덤 주인이 거주한 ‘집락’서 역사 단서 찾아야
‘고분군 정비’ 20년 만에 첫발
시, 2006년 역사공원 조성 발표
토지 보상에만 13년이나 걸려
최근 시굴조사·자료 확보 나서
전시관 보호구역 지정 등 과제
‘다호리 정체성’ 찾으려면
고분군 보존 나선 마을주민들
콘텐츠·유물 복제품 등 제작
전문가 “집락에 공방 등 존재
조사 위해 ‘소유주 동의’ 필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사적으로 지정된 지 40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창원 다호리 고분군. 고분군을 정비하는 종합사업은 이제 첫발을 내딛는 반면 20년간 목표로 삼아 왔던 다호리 유물 전시관의 건립은 오리무중이다. 창원 문명의 역사를 정확히 정립하기 위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다호리 마을 김주관 이장이 마을 학습체험관 2층에 전시된 유물 복원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적 지정 40년, 방치된 고분군 유적=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다호리 237-3 일대 1만4676㎡. 삼한시대의 완성도 높은 철기와 붓 등이 함께 출토된 무덤으로 유명한 ‘다호리고분군’이 자리한 곳이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옆에 위치한 이 고분군은 ‘다호리고분군’이라고 적힌 작은 현판이 아니었다면 그저 방치된 유휴부지로 보일 만큼 관리가 미흡하다.
고분군 부지에는 길게 자란 마른 풀들이 빽빽이 들어서거나, 땅 위로 흙더미가 여기저기 쌓여 있어 얼핏 봐서는 역사적 가치가 드러나지 않는다. 동면봉곡저수지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면 높이 1m를 약간 넘는 네 개의 안내판이 눈에 띈다. 한글·영문·일문으로 된 고분군 설명과 유적의 의의, 통나무관·칼·거울 등 출토 유물 사진 등이 담긴 패널이다. 사적으로 지정된 이곳을 알려주는 표시는 사실상 이것뿐이다. 1988년 사적으로 지정된 이래 40년 가까이 별다른 변화가 없는 셈이라 ‘방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굴 성과를 소개하는 특별전을 개최한 이후, 전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의 교수·고고학자·학생·예술인 등이 고분군을 찾았지만 별다른 정비나 전시 시설이 없어 “볼 것이 없다”는 실망 섞인 평가를 남기기 일쑤였다.

다호리 마을 주민들이 조성한 유물전시관.
◇ 마을 주민이 나서 ‘고분군 알리기’= 창원시의 고분군 관련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다호리 마을 주민들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허락을 받아 다호리 유물 복제품을 제작하고, 마을 한편에 유물전시관을 마련했다. 아이들이 다호리 유적을 인식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기획했다. 마을 주민들은 단체 방문객을 직접 안내하며 고분군의 의미와 역사를 설명하고, 아이들이 복제 유물을 ‘발굴’해보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발굴 체험에서 아이들이 수집하는 복제 유물은 인간문화재인 박병택 토우 명인의 작품이다.
이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있는 다호리마을 김주관 이장은 “다호리 고분군은 마을을 넘어 창원의 소중한 역사 자원이다. 우리가 먼저 나서서 ‘다호리의 자부심’을 알리고 싶었다”며 “지금까지는 시의 지원이 따로 없어서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해 왔는데, 앞으로는 다호리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우리 마을과 시가 함께 프로그램을 키워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제 시작’ 고분군 정비사업, 전시관은 ‘안갯속’= 창원시는 지난 2006년, 다호리 고분군 일대를 역사공원으로 조성하고 지상 2층 규모의 전시관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토지 매입에 긴 시간이 소요되는 등 20년 가까이 사업이 지연되면서 시가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오랜 지연 끝에 ‘창원 다호리 고분군 종합정비사업’은 최근에야 첫걸음을 뗐다. 창원시가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 사업을 위탁해 국가유산청으로부터 매장유산 발굴 허가를 받고, 지난해 10월부터 13차 발굴조사를 위한 시굴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토지 보상만 13년이 걸렸고, 2019년부터 정비계획을 수립해 최근에서야 정비사업에 필요한 기초 학술자료 확보에 나섰다.
시는 종합정비를 통해 유적지에 식생을 심고 원형을 복원하는 등 정비 작업을 진행하고, 유적 탐방로와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구축해 관광객과 주민들이 다호리 고분군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총사업 기간은 2040년까지로 잡혀 있다.
문제는 고분군 전시관 추진 여부다. 시 문화유산육성과에 따르면 당초 정비사업 계획에는 전시관 건립도 포함돼 있었지만, 대상 필지 매입이 불가능해지면서 현재는 재검토 단계다. 관계자는 “전시관 건립을 위해서는 문화유산 보호구역 지정이 필수인데, 필지 소유주와 주민들이 강하게 반대해 지정이 어려웠다”며 “보호구역 지정과 토지 매입이 불가해 자체 심의를 거쳐 재검토 사항으로 남아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1988년 사적으로 지정된 다호리 고분군. 표지판이 아니었다면 그저 방치된 유휴부지로 보일 만큼 관리가 미흡한 상태다.
◇ ‘다호리 사람들’을 찾는 길= 다호리 고분군은 삼한시대 ‘다호리 사람들’의 무덤이 발견됨으로써 그들의 삶을 일부나마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 그러나 무덤만으로는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완전히 복원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실제 무덤의 주인인 ‘다호리 사람들’이 거주하던 집락(集落)을 확인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988년 시작된 다호리 고분군 발굴에 직접 참여한 임학종 전 국립김해박물관장은 8차 발굴조사에서는 책임자로, 9차 발굴조사에 발굴단장으로도 참여했다. 임 전 관장은 “유적으로 지정된 곳은 무덤일 뿐, 정작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풀기 위해서는 집락을 찾아야 한다”며 “다호리 집단은 일반 마을보다는 컸지만, 도성 수준보다는 작은 규모의 집락을 이루었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 창원동중학교와 다호리마을 사이에 남북으로 이어진 구릉 일대가 ‘다호리 사람들’의 집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구역에서는 마을 외곽을 둘러싼 울타리나 방어용 해자(垓子), 주거지의 파편 등 일부 흔적이 발견됐다. 다호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볼 때, 이 집락에는 사람이 살던 집뿐 아니라 철기 공방, 칠기를 만들기 위한 옻나무 농장, 토기 공방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한시대에는 창원분지 일대가 바다로 차 있었을 가능성도 있어 집락에 선착장이 있었을 것으로도 보고 있다. 그러나 정밀 조사가 진행되지 않는 한 모두 가정에 머무를 뿐이다.
창원시는 이런 집락 조사 및 확인이 향후 과제라는 데는 공감하지만 구체적 계획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시 문화유산육성과 관계자는 “집락지로 추정되는 구역은 대부분 사유지인 데다 토지 소유주의 동의가 필수이므로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간이 지나 부지가 개발되면 역사적 흔적은 훼손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과거를 찾고 보존하는 일이 중요할까. 임 전 관장은 역사를 알면 정체성을 찾을 수 있고, 이는 미래로 나아갈 동력이 된다고 얘기한다.
“개인을 예로 들어봅시다. 내가 어디서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모른다면, 내 정체성을 잃게 됩니다. 과거를 알아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다호리 사람들은 우리 문명의 뿌리입니다. 그 뿌리를 찾아 내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입니다.”
글·사진=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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