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시론] 지방 이전 공공기관 금고 선정에 대한 단상- 김정훈(한국은행 경남본부장)

기사입력 : 2025-03-11 19:25:12

지난해 경남도의회는 공공기관의 금고 자금 중 일정 부분을 지역 금융기관에게 배정할 필요가 있다는 ‘공공기관 금고의 지역 금융기관 지정 촉진 대정부 건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건의안은 공공기관이 보유한 자금을 관리하는 주거래 금융기관을 선정할 때 지역 금융기관을 이용하도록 하고, 이로 인한 이익이 지역사회로 환원되도록 공공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간 경남지역으로 본사를 옮긴 공공기관 중 주거래 금융기관으로 지역 금융기관을 선정한 사례가 드물었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에 적잖은 주목을 끌었다.

공공기관의 금고 선정 시 지역 금융기관에게 일종의 인센티브를 주는 제안은 오래된 논의 사항이다. 그동안 감독당국 등 여러 기관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을 보면 결론 내리기 어려운 주제라 할 수 있다. 이는 어느 쪽으로 정해지더라도 사회에서 공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라는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역 금융기관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에 보다 부합하는 것일까? 2000년대 한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미국 철학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에서는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으로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 시장주의 관점과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공공선(common good) 제고 관점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 논리에 따라 우선 시장주의 관점에서 보면, 지역 금융기관에 대한 인센티브는 금융기관 간 경쟁을 제한하거나 공공기관의 자율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금고를 선정할 때 금융기관은 공공기관이 필요로 하는 금융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해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한 요소이지, 지역 소재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자금의 안정적 운용, 높은 금리 및 각종 편의 등을 제공해 수 있는 금융기관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시장주의 논리로는 지역 금융기관에 대한 인센티브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제를 공공선 제고 관점에서 보면, 공공기관의 사회적 역할 강화와 더불어 지방소멸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현재 지역에서 가장 큰 문제는 지방소멸이다. 경남의 경우 청년층 등 인구 유출과 함께 소득 등 자본도 꾸준히 유출되고 있다. 지역 금융기관에 대한 인센티브는 자본의 지역 환류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역 금융기관으로 유입된 금고 자금이 지역 내 기업 등에 대출로 운용되고, 이로 인한 수익은 다시 지역 금융기관의 종사자 임금, 시설투자, 지역사회 공헌 등을 통해 지역사회로 환류되어 지역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인센티브는 공공기관의 금고 선정 과정에서 지역 금융기관이 조금이나마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게임룰로 작용할 수 있다. 지역 금융기관은 자본, 조달비용 등 주요 지표에서 이미 경쟁 상대인 시중은행에 비해 열위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 금융기관에 무조건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역차별 논란이나 금고 자금의 부실 우려 등으로 이어져 오히려 공공선을 저해할 수도 있다. 이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제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금고 선정 기준에 지역사회 공헌도 항목을 추가하거나 인센티브로 얻은 이익의 일부를 지역에 공헌하도록 하거나 주거래 금융기관 자격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지방 공공기관의 금고 선정 시 지역 금융기관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가 옳은지에 대해 시장주의 또는 공공선의 관점 등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정답은 없다. 그러나 지방소멸 현상이 그동안 많은 대책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부터라도 공공부문에서 할 수 있는 대책 중 하나로 이 주제가 사회 각계에서 활발히 논의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정훈(한국은행 경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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