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대형 산불] “불기둥 솟다가 순식간에 밀려와” 그을리고 주저앉은 삶의 터전

화마 덮친 지역 가보니

기사입력 : 2025-03-23 19:34:57

중태마을 입구부터 참혹한 흔적
슬레이트 지붕 검게 타고 무너져
곳곳 잿더미 짙은 회색 연기 자욱
폐허 변한 외공마을 전쟁터 방불
주민 “집 다 태워 당장 생계 막막”


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 사흘째인 23일 찾은 산청군 시천면 중태리 중태마을. 뿌연 연무를 뚫고 들어선 마을 입구부터 화마의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을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불에 탄 퇴비 특유의 악취가 마을에 가득했다. 슬레이트 지붕은 새까맣게 타 내려 앉아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철근과 철판은 녹아내린 듯 일그러져 나 뒹굴고 있었다. 아직 채 식지 않은 잿더미는 바람결에 흩날리고 곳곳에선 짙은 회색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산청군 산불 발생 사흘째인 23일 오후 시천면 외공마을 주택들이 불에 타 무너져 있다./김승권 기자/
산청군 산불 발생 사흘째인 23일 오후 시천면 외공마을 주택들이 불에 타 무너져 있다./김승권 기자/

전날 산불 소식을 듣고 창원에서 달려왔다는 최순철(61·창원시 마산회원구)씨는 허물어진 어머니의 집터를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씨는 “어제 오후 3시쯤 요양보호사가 밭에 계시던 어머니를 찾아 단성중학교로 피신시켰다”며 “너무 급해 옷가지 하나 못 챙겨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오늘 새벽 6시까지도 불을 끄더니 결국 집이며 창고며 전부 잿더미가 됐다”고 고개를 떨궜다. 발걸음을 옮겨 확인한 최씨의 창고에는 곶감 건조기부터 경운기까지 각종 농기구와 농기계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주민 신진환(62)씨도 전날 악몽을 떠올렸다. 신씨는 “고사리 밭에서 풀 베다가 물 마시러 집에 왔는데, 양쪽 산에서 불길이 밀려오는 게 보였다”며 “허겁지겁 뛰쳐나왔다가 오늘 아침 일찍 와보니 집은 물론 조상 묘 10개도 모두 타버렸다”고 참담함을 토로했다. 그는 “당장 생계도 막막하다”며 “정부가 신속하게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중태마을 이장 손경모(68)씨는 “어제 인근 마을 새마을지도자가 전화로 ‘지금 당장 대피해야 한다’고 하자마자 도깨비불처럼 불꽃이 이쪽저쪽 번쩍이더니 한 시간도 안 돼 마을 전체를 덮쳤다”면서 “주택 13가구가 전소됐다”고 급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손씨는 “소방차는 먼저 불이 난 다른 마을에 다 가 있었다”며 “신고를 해도 우리 마을에는 오지 않았다. 빨리 왔더라면 주택만이라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중태마을에서 약 7㎞ 떨어진 외공마을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마을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소방차와 경찰차가 왕복 2차로를 분주히 오갔다.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폐허와 그 사이로 피어오르는 연기는 참혹했던 전날 상황을 보여주는 듯했다. 불씨가 살아나자 소방대원이 급히 호스를 들고 진화하기도 했다.

산청군 산불 발생 사흘째인 23일 오후 시천면 외공마을 주택들이 불에 타 무너져 있다./김승권 기자/
산청군 산불 발생 사흘째인 23일 오후 시천면 외공마을 주택들이 불에 타 무너져 있다./김승권 기자/

외공마을은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간간이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물을 퍼나르는 헬기의 소음만이 들렸다.

서진백(58)씨는 “뉴스에서 보던 산불은 천천히 번지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며 “불기둥이 솟구치더니 한순간에 산을 타고 마을까지 휩쓸었다”고 당시 목격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처음엔 불꽃이 번쩍 하고 튀더니 사방에 불이 붙었다”며 휴대전화로 직접 찍은 영상을 보여줬다.

맞은편 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던 안성모(57)씨는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진화율이 70%라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돌풍이 불면서 불덩어리가 폭탄처럼 날아와 우리 마을을 덮쳤다”며 “지금도 바람이 부니까 또다시 불이 번지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고 걱정했다.

김태형 기자 th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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