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79주년- 골목에서 희망을 만나다] 구석구석 아기자기 MZ 취향저격… 남해 바다만큼 핫한 명소
자영업자 살리는 골목상권 (상) 남해 삼동면 지족 구거리
국내 자영업자들은 끝이 없는 터널에 있다. 도심 주요 상권에도 높은 공실률을 보이고 있으며, 자영업자 폐업은 속출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소규모 지역 상권인 ‘골목상권’이 대안이 될지 관심을 끈다.
손상철 국립창원대 겸임교수는 “골목 상권은 이웃 사람들 간의 만남의 기회를 증가시키고, 골목 상권에서 사람을 마주치거나 인사하는 경험과 정겨운 이야기 속에서 서로 연결하고 커뮤니티를 구축한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이 즐겨 찾는 작은 점포들이 모인 골목 상권은 단순 소비 공간이 아닌, 지역 경제와 공동체 문화를 지탱하고 있다. 본지는 창간 79주년을 맞아 성공 사례를 보며, 골목상권을 살릴 방안을 모색해 본다.
경남 2023년 골목 특성화 지원사업 추진
카페·식당·책방·소품숍 등 속속 들어서
젊은 관광객 필수 여행 코스로 자리 잡아
50년 터줏대감 멸치쌈밥집도 빈자리 없어
청년 창업과 원주민 노포 상생으로 활기

23일 남해군 삼동면 지족 구거리에 위치한 한 멸치쌈밥집에 손님들이 가득 차 있다./김승권 기자/
◇여행 필수코스인 어촌 마을= 지난달 23일 찾은 남해군 삼동면 지족 구거리. 2월은 일 년 중 가장 관광객이 적은 남해의 비수기이다. 평소만큼은 아니지만, 젊은 MZ세대들과 가족 단위 관광객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SNS 유명 맛집을 찾아다니고, 길거리 곳곳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간직했다.
마치 80~90년대 모습이 담긴 영화 세트장에 온 것만 같았다. 사진관, 약방 등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가게들이 있었던 반면, 책방, 소품숍 같은 젊은 세대를 겨냥한 곳도 많았다.
사실 이곳은 관광지와는 거리가 멀었던 곳이다. 바다와 죽방렴이 근처에 있어 죽방멸치, 멸치 쌈밥이 유명했다. 골목상권 특성화 사업 등을 통해 다양한 먹거리와 소품숍, 감성 책방, 공동작업장 등이 문을 열면서 남해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멸치쌈밥./김승권 기자/

멸치회무침./김승권 기자/
지난해 기준 28곳의 카페와 식당, 소품숍이 생겼다. 대다수가 새로 생긴 가게들이다. 최근에는 프렌차이즈 빵집, 대형 카페, 편의점도 생기며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남해군 삼동면 지족 구거리의 한 소품가게./김승권 기자/
한 멸치쌈밥 집에는 비수기라는 말이 믿기지 않게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이 식당은 이곳에서 50년 넘게 장사한 터줏대감이지만, 새로운 창업자도 동반자라고 생각해 공존하려고 노력 중이다. 류원찬 대표는 “골목상권 활성화 후 골목에 책방, 카페 등 새로운 가게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렇다 보니 젊은이들도 우리 가게에 많이 찾는다”며 “얼마 전에는 주차장도 별도로 만들었다. 우리 가게를 찾는 손님 말고도 관광객이면 주차할 수 있게끔 했다. 상권을 살리기 위해선 기존에 장사하던 사람들이 나서서 새로운 이들을 반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주민뿐만 아니라 새로 남해에 둥지를 튼 이들도 골목상권을 통해 지역 공동체 강화에 나선다. 2년 전 문을 연 밝은달빛 책방에 들어서자, 책방지기는 “차 한잔하실래요?”라고 권하며 취재진을 맞이했다. 책방지기인 손동원씨는 전시회와 음악회를 열며 원주민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그는 “남해란 장소가 좋아 서울에서 내려왔다. 이곳에서 지역에 계신 분들을 찾아내서 알리고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올해는 마을 이장님들의 사진을 찍어 그림으로 만들어 전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지족 구거리를 찾은 시민들이 밝은달빛 책방으로 들어가고 있다./김승권 기자/

밝은달빛 책방 내 전시공간./김승권 기자/

밝은달빛 책방 내부./김승권 기자/
상권이 형성되고 젊은 인구도 늘어났다. 타지에서 온 이들은 기존 지족 구거리에서는 찾기 힘든 소품숍, 책방 등을 운영해 젊은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소품숍을 하는 황성우씨는 부산에서 직장을 다니다 이곳에 온 지 10년이 됐다. 그는 “침체한 적도 있었지만, 골목상권 활성화 사업으로 간판, 표지판 등이 바뀌어 길거리가 깔끔하게 정리됐다”며 “뚜렷한 관광지가 아닌데도 사람이 모이고 있다. 청년들도 창업을 많이 하기에 기존에 남해에서 볼 수 없었던 가게들도 많이 생기는 중이다”라고 했다.

지족 구거리를 찾은 시민들이 옛 지족 구거리 풍경 사진이 걸린 뉴스타사진관 앞을 지나가고 있다./김승권 기자/

남해 지족 구거리 안내도 〈2024년 기준〉
◇골목에서 희망을 찾다= 지난 2023년 경남도에서 추진하는 골목상권 활성화 지원 사업에 선정된 남해군은 삼동면 지족구거리에 관련 사업들을 시작했다. 남해군은 주변 자연환경과 청년 창업가들과 연계해 바닷가 옆 골목길 벽화 조성, 시가지 보도·조경 정비, 특색 있는 거리 사인물 안내판과 공유형 커뮤니티 센터 설치 등을 통해 누구나 오고 싶고 머물고 싶은 마을로 꾸몄다.
이상일 남해군 삼동면장은 “이곳에서 나고 자라 한평생 여기서 살았다. 1990년대부터 쇠퇴하기 시작해 가게도 많이 없어지고 인구도 줄었다”며 “최근 상권이 형성되면서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골목상권은 단순히 매출이 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새로 남해에 정착한 이들은 사회봉사를 적극적으로 하고, 원주민들은 배려와 노하우를 전수해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경남도는 2023년 상권이 주도하고 주민, 지자체가 참여해 특색 있는 골목상권의 조성을 목표로 남해를 포함해 4곳을 선정했다. 남해 지족 구거리, 양산 목화로 상가, 진주 성북지구 가로수길, 김해 장유 율하 카페길 등 4곳이다. 선정된 곳에는 상권 내 시설환경정비(특화거리 포토존, 간판 정비), 안전 시스템 구축(스마트 가로등 설치, 안전보행로 조성), 공동이익창출 공간 조성(공연장, 공동작업장 설치) 등을 지원한다. 지난해에는 김해 인제대 오래뜰 거리, 양산 오봉청룡로·웅상상가 1번지, 하동 횡천 불이와 슬기의 빛거리, 남해 역사문화거리가 선정됐다.
박준혁 기자 pjhn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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