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다르다” 강요받는 보통 사람의 평범한 삶

[책] 당신도 증명 가능한가요?

뇌병변 장애 지닌 정영민 작가 에세이 출간

장애인으로 사는 경험·생각 진솔하게 담아

기사입력 : 2025-02-26 08:07:28

‘당신도 증명 가능한가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무어라 답할까. 백이면 백 ‘무엇을?’이라 되묻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조금 더 친절하게 물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당신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냐고.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그것이 이 책을 고른 이유,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생각해야 할 뚱딴지 같은 현실이다.

이 책은 언어장애를 동반한 뇌병변 장애인 정영민이 써내려간 보통 사람의 아주 평범한 이야기. 당신과 같이 일상을 꾸려나가는 보통 사람, 대단히 다를 것 없는 사람에게 ‘넌 다르다’를 강요하면서 스스로 다름을 증명하라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 장애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5%다. 정말 5%냐고 하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닌 장애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높을 것으로 본다. 선택의 문제로 보자면 그렇지도 않다. 장애 판정 기준이 엄격하고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많아 그런 상황으로 내몰리는 현실이다.

‘마치 쇼를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내 걸음걸이가, 손동작과 언어 능력이 남들보다 좀 더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내게는 익숙한 불편이다. 하지만 병원에 방문한 나는 내가 무척이나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음을 계속 과장되게 보여주어야 했다.’ - 41쪽

‘증명 불가능한 장애를 증명해내라는 것도 문제지만 비용 문제도 크다. (…) 장애 판정 관련 검사는 대부분 비급여 항목에 때론 일정 기간의 진료기록을 요구하기도 해서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 43쪽

한편으론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의사소견서만으로 장애인 등록이 가능했던 때 허위진단서를 이용해 장애인으로 등록하고 부정수급을 받아온 일당이 적발됐고, 이런 일이 반복되며 2011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됐다.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는 문제에 증명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증명과정이 복잡하고 당사자에게 절실한 삶의 문제는 드러나지도 않으며, 배제되는 사각지대가 많아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는 높은 문턱으로 적용한다는 것도 맞다. 실제로 2020년 서울 방배동에서 기초수급자였던 한 여성의 시신이 사망한 지 다섯 달이 지나서야 발견된 일이 있었다. 그의 아들은 시신 방치 혐의를 받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발달장애가 있었으며, 장애인 등록을 할 여건이 안돼 그마저 방치됐던 사연이었다.

다른 경우지만, 우리 사회가 참 너무하다 생각한 적이 있다. 성폭력 범죄 사실을 증명하는 현실에 대한 것이었다. ‘미국의 성폭력 재판에서는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성관계 동의를 구하지 않은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강간 피해자가 협박과 폭행을 받았는지 증명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머릿속 가득히 물음표를 그리다 느낌표를 띄웠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대체로 약자가 스스로 약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하나로 귀결된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삶에서 장애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저자의 말이 와닿는다.

‘장애가 불편에 가까운 말일 수는 없을까? 누구든 팔이나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면 일상생활이 불편하다. 꼭 다쳐야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면 걸음은 현저히 느려지고 기억력도 흐려진다. (…) 장애도 그렇게 생각하며 함께 살아갈 수 없을까?’ - 22쪽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는, 장애인을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사람으로만 여기는 게 내포돼 있다. 하지만 장애인도 꿈이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형편껏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는 그냥 보통 사람이다. 어릴 적 컴퓨터 타자를 정식으로 배우지 못해 여전히 버벅대는 나에 비하면 ‘지금도 양손 모두를 사용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중’이라는 작가가 오히려 더 뛰어난지도 모른다.

‘도구를 익히고 배워서 사용하듯, 몸도 그런 거라면 누구든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몸을 배운다. 애초에 같은 몸은 없다.’ - 26쪽

저자 정영민, 출판 남해의봄날, 183쪽, 가격 1만7000원

김현미 기자 hm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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