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끊긴 600년 역사 원도심… 젊은 감각 입혀 ‘맛과 멋의 거리’로
[창간79주년] ‘지역이 미래다’ 경남 리빌딩 (1) 창원 소리단길
한때 번성했던 경남의 도시들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산업의 쇠퇴, 인구 유출, 변화 없는 공간들. 하지만 이곳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이들이 있다. 바로 ‘로컬크리에이터’들이다.
그들은 지역의 정체성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며, 지역 경제의 자생력을 키워 가고 있다. 누군가는 버려진 공간을 감각적인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지역의 스토리를 콘텐츠로 풀어내며,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한다.
그들이 만드는 변화는 지역 자체를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로컬크리에이터들의 손끝에서 도시가 다시 살아난다. 낡아가는 경남을 되살리기 위한 그들의 분투기를 들여다본다.
민간 자본·창업가 주도로 탄생
강동완 디벨로펀 대표 공간기획 경험 바탕
고향 창원의 골목길 살리고 브랜드화 시도
한옥·빈 건물 400여평서 변화 시작
전통의 멋 살린 카페·식당 등 문 열며 활기
3년 만에 매출 2배·20대 방문객 256% 폭증
공공적 가치 위한 ‘협동조합’ 설립
‘브랜딩 스쿨’ 통해 청년 창업 특강·멘토링
소리단길 내 커뮤니티·협업공간 등 추진도
과거 창원의 원도심이었던 의창구 소답동 골목을 가리키는 이곳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잊힌 공간이었다. 한때 번성했던 동네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낙후된 동네였다. 그런데 지금 이곳은 달라졌다. 골목마다 독창적인 감각이 더해진 카페와 상점, 개성 있는 레스토랑이 들어서며 ‘소리단길’이라 불리는 활력 넘치는 공간이 됐다. 불과 3~4년 만에 지역의 낡은 골목이 젊은이들이 찾는 ‘핫플레이스’로 변신한 것이다. 이곳에서 청년들은 스스로의 공간을 만들면서 새로운 길을 가꿔나가고 있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관(官)이 아닌 민간 자본과 창업가들이 주도해 탄생한 거리라는 점이다. 600년 전 대도호부가 있던 유서 깊은 공간에 청년들의 감각과 창의력이 더해지면서,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맛과 멋의 거리’가 탄생했다.
소리단길에서는 새로운 기회가 탄생하며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감성이 가미된 공간이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매력을 선사한다. 그 중심에는 강동완 디벨로펀 대표가 있다.
그는 서울에서 일궈낸 공간기획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향 창원으로 돌아와 새로운 프로젝트들를 시작했다.
낡고 방치된 공간에서 옛 것의 멋을 발견하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새로운 문화와 가치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가 발견한 경남의 가치는 무엇일까.

강동완 디벨로펀 대표가 창원시 의창구 중동 골목길을 새롭게 조성한 ‘소리단길’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골목 하나를 브랜드로 만들고 싶었다”= “일반적으로 디벨로퍼(Developer)라고 하면 건물을 짓고 분양해서 수익을 내는 걸 떠올리잖아요. 하지만 일본 등 해외에서는 지역에 있는 가치를 잘 활용해서 지역을 ‘머물고 싶은 동네’로 만들고 개발하는 방식의 디벨로퍼가 많아요. 저도 그런 디벨로퍼가 되고 싶었어요. 나아가서 지역을 좀 재미있게 만들어 보고 싶었죠.”
디벨로펀(Develop+Fun). 강 대표가 2020년 창업한 회사 이름에는 그의 철학이 담겨 있다. 단순한 부동산 개발이 아닌, 지역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살리고 재밌게 만들어 가자는 것. 그는 백화점에 입사해 평범한 직장 생활을 했다. 이후 퇴사해 서울 이태원에서 와인바를, 익선동에서 만화방을 운영하며 사업에 첫발을 뗐다.
“왜 고향 창원에는 멋진 거리가 없을까?” 그렇게 2019년부터 창원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익선동, 성수동, 망원동처럼, 창원에도 감각적인 공간과 문화를 담은 거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익선동과 이태원에서 가게를 운영했던 경험을 토대로, 그는 고향 창원을 거리를 살려보고 싶었다.
◇“소리단길, 한옥과 빈 건물에서 시작된 변화= 그가 창원을 오가며 찾은 최적의 장소는 의창구 중동, 과거 39사단이 이전한 후 상권이 죽어버린 곳이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박말순 이태리식당’바뀌기 전후 모습./디벨로펀/

이탈리안 레스토랑 ‘박말순 이태리식당’바뀌기 전후 모습./디벨로펀/
“처음에는 쉽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서울에서 사기꾼이 내려와서 장사하러 다닌다고 할 정도였죠.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고, 신고도 소송도 많이 당했어요.”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강 대표의 진정성을 알아준 주민들은 마음을 열었고, 한옥과 빈 건물 등 400여평을 매입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잊힌 공간’들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2021년 3월부터 베이커리 카페 오우가, 이탈리안 레스토랑 박말순 등 가게 문을 열었다. 오래된 창고가 카페가 되고 박말순 할머니가 60년 넘게 살던 한옥이 레스토랑이 됐다. 이후 다양한 감성의 카페와 상점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점점 사람들이 소리단길을 찾기 시작했다.
결과는 숫자로 증명됐다. 2019년 23억원이었던 소리단길 일대 소비 매출은 2022년 43억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20대 방문객 수는 256% 늘었다.
“소리단길이 성공했던 것 중 하나도 저희 가게홍보 대신 거리 전체에 대한 홍보를 계속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많은 분들이 진정성을 알아봐주셔서 저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열렬하게 지지해주고 계십니다.”
그는 가게 보다 ‘소리단길’이라는 거리 자체를 홍보하는 데 집중했다. 사람들이 특정 가게가 아니라 골목 자체를 찾도록 만든 것이다.
“처음 창원에 왔을 때는 ‘창원에도 전국 어디 내놔도 손색 없는 골목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제가 창원에 내려올 당시만 해도 로컬크리에이터라는 명칭이 없었거든요. 로컬크리에이터라는 단어가 생기고 관련 지원 사업에도 지원해 선정되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로컬크리에이터로 불리는 구나’라고 자연스레 인식하게 됐어요.”
2023년 그는 지역 향토기업인 몽고간장과 컬레버레이션하게 되면서 지역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로컬크리에이터로서 한발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이 밖에도 소리단길 골목 투어, 세모로페스타 등을 진행하면서 지역과의 연결은 더욱 촘촘해졌다.

카페 ‘오우가’의 바뀌기 전후 모습./디벨로펀/

카페 ‘오우가’의 바뀌기 전후 모습./디벨로펀/
◇지역 활성화를 위한 협동조합 설립= “협동조합 형태로 공동 사업을 수행하면, 보다 투명한 구조에서 지역 활성화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디벨로펀은 민간 개발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업이지만, 공공적인 가치도 중요하다고 꼽는다. 하지만 사기업이 공공사업을 추진하면 ‘이익 추구’라는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에 강 대표는 협동조합 형태로 이런 공동 사업들을 수행해 나가기 위해 세모로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세모로협동조합은 ‘세모로 브랜딩 스쿨’ 을 운영하며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브랜딩 특강, 멘토링, F&B(식음료) 해커톤 대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행정안전부 주관 ‘슬기로운 동네생활-내동내살 프로젝트’ 를 수행하며, 소리단길 내 로컬크리에이터 창업 및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소리단길 내 로컬크리에이터 코워킹스페이스를 개소할 예정이다. 강 대표와 함께 소리단길의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그는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소리단길을 넘어 창원, 경남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고 있다.
인터뷰- 로컬크리에이터 강동완 디벨로펀 대표
“경남, 청년에 기회의 땅, 창업 지원·교육 확대를”

강동완 디벨로펀 대표./김승권 기자/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바라본 경남의 가치는?
경남은 기회의 땅이다. 서울에서는 창업 경쟁이 치열하고, 이미 포화 상태다. 하지만 경남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공간이 많고, 도시재생이 필요한 곳도 전국에서 많은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오히려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특히 창원은 제조업 중심 도시라 문화·예술 쪽이 상대적으로 덜 발전했다. 하지만 청년들이 떠나는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구도심, 낮은 임대료, 개발 여지가 풍부한 지역이 창원에 많다. 젊은 창업가들이 도전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경남 로컬크리에이터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청년들이 도전할 수 있도록 창업 지원과 교육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경남은 주력산업인 제조업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도시재생, 문화적인 측면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왔다. 이제 유리병에 자갈을 채웠으면 모래를 채워서 밀도를 높여야 되는 상황이다.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게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균형이 맞지 않으면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로컬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한마디 건넨다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청년 창업은 단순한 ‘취업 대안’이 아니다. 자신만의 개성과 가치를 담아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일이다. 개인의 개성을 살리는 시대. 이게 시대 흐름이다.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포부와 목표가 있다면?
지금까지는 저희가 중심이 돼서 소리단길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앞으로는 로컬크리에이터나 청년 창업가들이 중심이 되고 저는 옆에서 조력자가 되어 상권을 계속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목표다. 소리단길을 넘어 창원 전역도 더 나아가고 이후에는 경남까지도 프로젝트를 확장해 나가고 싶다.
한유진 기자 jinny@knnews.co.kr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